물론 친정엄마도 사랑합니다만-
나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친정엔 편하고 익숙한 엄마가 붙고, 시댁엔 어렵고 조심스러운 어머니란 단어가 붙는다. 아무리 시어머니와 친해도 엄마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가끔 친구들이 왜 시어머니가 내 엄마냐고 열받아하며 묻기도 하는 걸 보면 둘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내포한 의미와 분위기는 천지차이다.
친정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친정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편하고 넉넉한 풍경이 그려진다. 딸자식이자 며느리인 나도 두 발 쫙 뻗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에 과일을 냠냠 거리는 공간. 눈치 안 보고 설거지대 앞에 서지 않아도 되는 곳, 가끔 애 좀 봐달라는 부탁도 하며 올 땐 반찬 두둑이 싸 오는 곳이 친정 아니겠는가? 나에게도 그런 친정이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난 가끔 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가 더 좋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성향이 다른 두 엄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머님은 전형적인 한국인 어머니 상이라면, 엄마는 커리어 우먼 스타일이다. 실제로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교직에 북귀하셔서 얼마 전 정년퇴직까지 근무하신 워킹맘이셨다. 엄마의 하루는 일 말고도 바쁜 것들로 가득 차이었었다. 젊은 선생님들과 IT화 되는 학습법을 따라가고자 공부도 해야 했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러 화실도 다니셨다. 가끔 전시회도 여시고, 탁구나 테니스 같은 운동도 배우셨다. 워낙 사교적인 데다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모임도, 만남도 많았다.
어머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주부로 사셨는데 내가 보기엔 늘 가족이 1순위셨던 것 같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항상 깨끗한 살림살이와, 베란다에 가득한 잘 자란 초록초록 식물들, 그리고 항상 성당을 오가시며 봉사하시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가정주부로 사셨다 해도 어머님은 정말 지혜로운 분이다. 난 어머님의 살림이나 인간관계에서 그 지혜를 엿볼 때가 많다. 게다가 주변에 어머님을 좋아하는 친구분들이 늘 많으시다. 시끄럽고 화려한 스타일이 아니시지만 정말 성당에서든 집에서든 소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커리어우먼 엄마랑 몇십 년을 살았던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상 어머님을 만나고 그 따뜻함에 완.전 반.해.버.렸.다. 내 친구들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온 나희도(김태리)엄마를 보면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했었다. 윤여정 배우를 보고도 엄마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비슷한 이미지다! ㅋㅋ 친정엄마는 프로였고, 언제나 당당하고 논리적이다. 사교적인 유머가 있으셨지만, 그저 내 자식이라 다 이쁘지~라는 고슴도치 엄마 같은 제 새끼는 함함하다 느낌은 아니었다. 난 엄마에게 친구처럼 내 고민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다. 혼날까 봐... 한데 어머님은 달랐다. 그저 내 며느리라서, 내 아들과 결혼했단 이유로 자식 대하듯 해주시는데 난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고민부터 생활 속에서 느꼈던 작은 감동도 쉽게 나눌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는 내 딸이 울고, 웃고, 말하고, 걷고, 뛰는 순간을 모두 함께 나누고 기뻐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외식을 하면 어머님은 항상 우리들 접시와 수저에 젤 맛있는 고기, 생선을 올려준다고 바쁘시다. "엄마 우리가 알아서 먹을게. 그만하고 엄마 좀 먹어"라는 아들의 타박에도 눈치를 보시며 "많이 먹었어. 어서 먹어"하며 챙겨주신다. 우리가 시댁에 찾아갈 때면 늘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으시다. 대체 언제부터 나와서 기다리신 것인지... 출발 전화를 받고 나와서 그저 한참을 서서 우리 차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전에 어머님의 어머님, 할머니가 그렇게 동구밭에 나와서 기다려주셨다고 하셨다. 모전여전인가 정말...
그럼 본격적으로 '나'에게만 잘해주는, 어머님이 더 좋은 이유를 써볼까. 어머님은 늘 말이라도 내편이라고 말해주신다. 내가 남편과 싸우거나 속상해하면 늘 내게 조용히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아들 때문에 너 속상하고 힘들면 나에게 말해"라고 말해주신다. 난 어머님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아들에 대한 사랑의 일부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저 말은 너무 듣기 좋다. 하루는 남편과 싸우고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차에 타서 돌아가는데 열린 창문으로 손을 쑥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신다. 그리고 눈으로 다 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시는 느낌.
내가 워킹맘으로 살 수 있게 우리 딸을 하원을 도와 퇴근할 때까지 애지중지 봐주시는 것도 어머님이다. 어머님은 항상 손녀와 헤어질 때 "오늘도 할머니랑 잘 놀아줘서 고마워"라고 말씀하신다. 70세가 되셔서 3살 딸을 감당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실 텐데 온 힘을 다해 육아해 주시고 고맙다고 말해주시는 우리 어머님. 내가 이렇게 아이를 낳고도 일할 수 있는 건 신랑도, 친정 엄마의 도움도 아니다. 바로 우리 어머님 때문이다. 아이가 아파 휴가를 내거나, 회식에 빠져도 날 젤 걱정해 주는 사람은 어머님뿐이다. 그렇게 휴가를 내도 괜찮냐, 다음엔 내가 봐줄 테니 꼭 회식 가서 사람들과 친해지라고 말해주시는 분. 아기 잘 때 눈 좀 붙여라. 내가 아기 봐줄게 영화 관람이라도 하고 오라고 자유시간을 주시는 분. 어찌 내가 어머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맡기고 급히 출근하는 나에게 차에서 먹으라며 찐 고구마와, 데운 가래떡을 챙겨주시는 어머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두셨다 임신 기간 내내 진미채 반찬과 불고기를 정말 많이도 해주셨다. 아기를 낳고도 내 몸을 젤 걱정해 주시고, 산후조리 잘해야 늙어서 몸이 아프지 않다며 신경 써주신 분도 어머니다. 지금도 내가 피곤해하거나 목이라도 따끔거려하면 바로 배도라지를 데우러 엉덩이를 일으키신다. 난 어머님처럼 가족에게, 며느리에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난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님은 하신다. 늘 본인을 희생하시면서도 그게 기쁨이라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신다. 어머님답게 말이다. 난 어머님 같은 지혜와 넓은 마음을 가질 순 없을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는 어머님이 저렇게 사랑했던 아들(남편)과 딸(손녀)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일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못하지만 가끔 남편과 싸우거나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 때 어머님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넘기거나 참을 수 있는 긍정효과는 분명 있다. 글로 다 쓰기에도 부족한 우리 시어머니 칭찬. 그 마음 잊지 않게 이렇게 가끔씩 꼭 기록해 둬야지. 작년 생일날 어머님이 조용히 내밀던 생일카드를 마지막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