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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Jan 18. 2023

헐크가 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오늘 엄마랑 안 안고 잘 거야...”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하교시간.

학교가 끝나고 나오는 아이가 반가워 아는 체를 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던진 첫마디였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침에 나한테 혼이 나고 학교에 갔었나?

아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것도 아님, 하교할 때 내가 뭘 해주기로 했는데

깜빡했나?....

잠깐사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 아닌 것 같다.

“왜에~~ 엄마는~~ 꼬옥! 안고 자고 싶은데~”

“엄마도 안고 자기 싫다고 할 때 있잖아. 나도 그럴 거야”

분명 삐쳐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이번 주 주말까지 게임 금지!

그거였구나!

학교에서 잊고 있다가 금지령을 내린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생각이 난 거겠지.

그리고 못마땅한 마음도 불쑥! 튀어 오른 거겠지.

나름의 반항과 불만 표시였을 테다.

아이한테 ‘게임금지’는 엄마인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가혹하다는 것을

한발 늦게 알아차렸다.


지난 주말, 1박 2일 캠핑장에서 잘 놀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듯 우는 아이 소리가 들렸다.

놀라 달려갔더니 세상이 끝난 표정으로 닌텐도 게임기를 바라보며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울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또 묻고, 달래고 또 달래서

겨우 알아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캠핑장에서 열심히 쌓은 게임기록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 당황스러운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데! 이렇게나 큰 소리로 울어 젖힐 일인가...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곧장 아이 아빠가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섰다.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진정해 봐~ 아빠가 뭘 도와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게임결과가 다 날아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미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런 사고도 안 되는 듯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야 생떼를 쓰는 아이를 어떻게 진정시키는 게 좋을까.....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을 듯한데,

그땐 그게 안되었다.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아이를 보자,

결국 욱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나도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늘 그렇게 되고 만다 (늘...... 반성한다 ㅠㅠ)

조목조목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 게임기 누가 만졌어? 게임결과가 사라진 것도 네가 한 일이야. 운다고 해결이 돼?

충분히 울었어. 이제 그만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을 들이밀며 아이보다 큰 목소리로 아이를 제압하려 했다.

그리고 엄마라는 어른은 잘못한 아이에게 ‘한 주 동안 게임금지’라는 총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금지령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험악한 표정으로 엄마를 향해 주먹을 쥐는가 하면, 세 살 아이처럼 발을 버둥거려 가며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거부하고 있었다.

‘금지령’이면 잘못했다고 할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성의 기회가 될 줄 알았던 방법이, 불만과 억울함을 키우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 좋을지 몰라 불안했다.

정말이지...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악을 쓰고, 엄마는 엄마대로 악을 썼다.

나는... 당장 물러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8살 아이와 엄마 사이에 이렇게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져도 되는 걸까?  

역시 나의 육아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

남들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가 있을까? (우리 집만 이런 건 아닐까?)

순간 여러 가지가 두려워진다.


가끔... 아니 종종 아이의 잘못을 나무랄 때가 있다.

세월아 네월아~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하지 말라는 걸 부득부득하거나,

해야 할 일을 마냥 미루는... 등의 아이 모습을 지켜볼 때면

유난히 참을성이 떨어진다.

도대체 왜 이럴까, 이 당연한 걸 왜 못하는 걸까...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행동을 결국 참지 못하고 나무라고 만다.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아이 잘못을 지적하고 나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기를 기다린다.  

논리적인 설명으로 이해를 시켰다면

앞으로 잘하겠다는 아이의 약속까지! 받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후배를 봐주듯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는 이제 8살이다.

48년짜리 내 방식으로 사는 어른이 아니라, 아직 아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것들이

어쩌면 아이에겐 새롭고, 버겁고, 신기할지도 모른다.

아이 세상에선 옳고 그름의 기준도, 당연한 것도 아직은 없을지도 모른다.

참....

이 단순한 사실을 늘 까먹는다.

8살짜리 작은 몸으로, 8살 다운 표정을 하고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마흔여덟 살짜리 엄마는 자꾸 이 간단한 사실을 까먹는다.

육아에 빠져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이가 가끔 소리를 지르는 엄마 모습을 두고,

헐크로 변신했다고 재미나게 표현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헐크처럼 변신한 엄마를 향해

아이는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헐크로 변신하기 전에 아이를 먼저 바라보자고 다짐한다.

큰 숨 한번 쉬면서,

어른인 나야말로 내 아이가 8살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까먹는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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