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아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른아홉이 된 후배가 물었다.
결혼한 지 3년 정도 되어가는 후배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임신을 준비하기로 했다는 각오까지 털어놓으며 꽤나 진지했다.
음.....
후배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이미 임신과 출산 경험이 있고,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중지만,
나는 그 질문이 어려웠다.
내가 결혼하기도 훨씬 전인 30대 초반의 어느 날.
함께 일을 하는 남자동료가 알고 보니 딩크족이라고 했다.
결혼한 지는 벌써 몇 해 되었지만, 앞으로도 아이는 낳지 않기로! 둘만 잘 먹고 잘 살기로!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그땐 참 신기했다. 진짜 이런 사람이 있구나~
세상이 변한다~ 변한다~ 하는데 진짜 변하고 있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애초에 결혼을 하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 큰 외부자극 없이
모범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온 학창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면
나만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틀과 관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지극히 순종적이고, 순응하는 사람으로 자라왔던 것 같다.
그리고 몇 해 후,
나도 결혼을 하고 그 힘들다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40대 초반의 어느 날.
일을 하면서 만난 한 개성 강한 젊은 남자 역시, 딩크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아내와는 결혼 전부터 약속한 부분이고,
한 술 더 떠 양가 부모님도 모두 두 사람의 생각에 동의를 하셨단다. 흔쾌히!
이때는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저런 결단과 강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이가 있어도 좋겠지만,
육아와 일 두 가지 모두 어설프기만 한 워킹만으로 동동거리는 나와 달리
당시 젊고 개성 강한 그 남자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또 즐기며 사는 것 같아 부러웠다.
물론 그의 아내도 그런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 거 같았다.
굳이 떠오른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근처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먹는 아이스크림 한 스푼이
힐링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과 감성이 그땐 어찌나 특별해 보이던지...
육아에 일에 늘 쫓기며 사는 것 같던 나한테
아이스크림 한 스푼의 여유는 언감생심이었으니까.
결국 그와 나의 차이는 아이가 있고 없고!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이렇게 상황과 처지에 따라
아이에 대한 생각이 왔다리~ 갔다리~ 했던 나인지라,
후배의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 많은 후배만큼이나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들 시선도 아닌, 사회 통념도 아닌,
오로지 내 진심을 나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꼭 필요할까?
.
.
.
.
.
내 아이가 8살이 된 지금.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다.
아이는 필요하면 갖고, 필요 없으면 안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
탄생부터 아이는 존재이고, 그 존재는 신기하고 특별하다.
내가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에게 선물처럼 찾아온다.
나름대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미리 할 수는 있겠지만,
준비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권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언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 부모와 자식으로, 가족으로 만나게 된 우리는
시행착오가 아주 많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갖가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를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아마도 육아 잡지 화보에서 볼 수 있을법한 행복한 한 컷 같은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상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이상(어쩌면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죽을 만큼 산통을 겪은 후에 만난 아이는 나의 예상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인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육아 경험담이나 조언은 책 속 한 구절처럼 부질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때부터는
이 아이를 낳은 게 잘한 걸까?... 에 대한 고민은 없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가 편안할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를 걱정하고,
동시에, 엄마로서의 자격과 모성애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저 나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롯이 엄마라는 역할에 능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감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를 만나고 나면 더 이상 그 고민은 없다는 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답이다.
얼마 전, 아이 학원 원장님과 상담을 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도대체 아이들은 언제까지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엄마는 또 언제까지 그 짜증을 받아줘야 할까요? "
생각해 보면 학원 원장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던 것 같지만,
그땐 아들 맘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넋두리처럼 불쑥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원장님이 뜻밖의 현답을 주셨다.
“지금이 가장 짜증을 적게 낼 때에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
“네에? 지금보다 더 심해진다고요?”
“그럼요~ 앞으로 힘든 공부도 해야 하고, 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될 텐데요.
그때마다 엄마를 찾게 되겠지요.”
“아...... 네..... 그렇겠네요”
“어머니. 부모가 되기로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계속 받아주셔야죠. “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내가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었던가? 그냥 어쩌다 보니....
아직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여전히 엄마 노릇에 미숙한 모양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엄마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미숙함에도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또 벅차고 고맙고 행복하다.
나는 그런 특별한 존재를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