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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Jan 20. 2023

아이는 꼭 필요할까요?

“언니, 아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른아홉이 된 후배가 물었다.

결혼한 지 3년 정도 되어가는 후배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임신을 준비하기로 했다는 각오까지 털어놓으며 꽤나 진지했다.

음.....

후배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이미 임신과 출산 경험이 있고,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중지만,

나는 그 질문이 어려웠다.  



내가 결혼하기도 훨씬 전인 30대 초반의 어느 날.

함께 일을 하는 남자동료가 알고 보니 딩크족이라고 했다.

결혼한 지는 벌써 몇 해 되었지만, 앞으로도 아이는 낳지 않기로! 둘만 잘 먹고 잘 살기로!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그땐 참 신기했다. 진짜 이런 사람이 있구나~

세상이 변한다~ 변한다~ 하는데 진짜 변하고 있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애초에 결혼을 하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 큰 외부자극 없이

모범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온 학창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면

나만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틀과 관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지극히 순종적이고, 순응하는 사람으로 자라왔던 것 같다.  



그리고 몇 해 후,

나도 결혼을 하고 그 힘들다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40대 초반의 어느 날.

일을 하면서 만난 한 개성 강한 젊은 남자 역시, 딩크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아내와는 결혼 전부터 약속한 부분이고,

한 술 더 떠 양가 부모님도 모두 두 사람의 생각에 동의를 하셨단다. 흔쾌히!

이때는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저런 결단과 강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이가 있어도 좋겠지만,

육아와 일 두 가지 모두 어설프기만 한 워킹만으로 동동거리는 나와 달리

당시 젊고 개성 강한 그 남자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또 즐기며 사는 것 같아 부러웠다.

물론 그의 아내도 그런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 거 같았다.

굳이 떠오른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근처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먹는 아이스크림 한 스푼이

힐링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과 감성이 그땐 어찌나 특별해 보이던지...

육아에 일에 늘 쫓기며 사는 것 같던 나한테

아이스크림 한 스푼의 여유는 언감생심이었으니까.

결국 그와 나의 차이는 아이가 있고 없고!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이렇게 상황과 처지에 따라

아이에 대한 생각이 왔다리~ 갔다리~ 했던 나인지라,

후배의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 많은 후배만큼이나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들 시선도 아닌, 사회 통념도 아닌,

오로지 내 진심을 나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꼭 필요할까?

.

.

.

.

.

내 아이가 8살이 된 지금.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다.

아이는 필요하면 갖고, 필요 없으면 안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

탄생부터 아이는 존재이고, 그 존재는 신기하고 특별하다.


내가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에게 선물처럼 찾아온다.

나름대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미리 할 수는 있겠지만,

준비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권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언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 부모와 자식으로, 가족으로 만나게 된 우리는

시행착오가 아주 많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갖가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를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아마도 육아 잡지 화보에서 볼 수 있을법한 행복한 한 컷 같은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상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이상(어쩌면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죽을 만큼 산통을 겪은 후에 만난 아이는 나의 예상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인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육아 경험담이나 조언은 책 속 한 구절처럼 부질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때부터는

이 아이를 낳은 게 잘한 걸까?... 에 대한 고민은 없다.

아이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가 편안할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를 걱정하고,

동시에, 엄마로서의 자격과 모성애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저 나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롯이 엄마라는 역할에 능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감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를 만나고 나면 더 이상 그 고민은 없다는 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답이다.



얼마 전, 아이 학원 원장님과 상담을 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도대체 아이들은 언제까지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엄마는 또 언제까지 그 짜증을 받아줘야 할까요? "

생각해 보면 학원 원장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던 것 같지만,   

그땐 아들 맘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넋두리처럼 불쑥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원장님이 뜻밖의 현답을 주셨다.

“지금이 가장 짜증을 적게 낼 때에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

“네에? 지금보다 더 심해진다고요?”

“그럼요~ 앞으로 힘든 공부도 해야 하고, 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될 텐데요.

 그때마다 엄마를 찾게 되겠지요.”

“아...... 네..... 그렇겠네요”

“어머니. 부모가 되기로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엄마가 계속 받아주셔야죠. “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내가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었던가? 그냥 어쩌다 보니....

아직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여전히 엄마 노릇에 미숙한 모양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엄마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미숙함에도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또 벅차고 고맙고 행복하다.

나는 그런 특별한 존재를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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