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부인과에서
마흔이 되자마자 산부인과를 찾았다.
문득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란기에 잠자리를 하면 덜컥 임신이 되더라...라는 각종 드라마 단골 스토리 정도로 임신을 생각하던 무식한 마흔은, 친구의 조언 한 마디만 듣고 별생각 없이 병원으로 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게,
국가대표급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임신 준비를 위한 산부인과행’이라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스페셜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병원을 갈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갈등을 하고 또 하고 미루고 또 미루어서 마흔 끝자락이나 마흔하나쯤이 되어서야 병원 문 앞에 서 있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어쩐 일인지 이때만큼은 고민도 변덕도 없이 그냥 갔다.
어찌 이토록 심플하게 실행에 옮길 수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감탄스럽다.
사실 병원을 왜 가는지도 모른 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달간 임신을 위해 노력한다면, 30대 초반에 10%이던 임신 확률이 30대 후반으로 가면서 8.3%로 떨어지고, 40대엔 그 보다 더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런 내 처지에 깜깜했던 나는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의사하고 상의하는 게 제일 좋다는 친구 말 한마디에 그냥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왜 의사와 상의를 하라는 건지, 무엇을 상의해야 하는 건지, 어떤 면에서 제일 좋다는 건지...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남편과 나란히 산부인과 병원 복도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면서 처음 깨달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진료실로 들어가 만난 의사는
우리 부부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임신...... 을 하려고요...”
왠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마지막 생리날짜를 묻고는
몇 가지 메모를 하더니,
이미 견적이 나왔다는 듯 메모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날짜 세 개가 적혀있었고,
의사는 간결한 설명을 덧붙였다.
“(메모에 적힌 숫자를 가리키며) 다가오는 세 날짜에 임신을 시도해 보시고,
잘 안되었다 싶으면 다음 다시 오세요. “
그때는 남편도 함께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할당된 진료시간은 끝!
진료실로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진료실을 나올 때 역시
왜 그 세 날짜인지, 왜 오늘은 아무 검사도 없이 날짜만 주고 또 한 달 후에나 보자고 하는 건지... 평소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앞에서는 이해가 될 때까지 묻고 확인했을 나였겠지만,
그날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질문 한마디 없이 그저 순하게 “네”라는 대답을 하고 돌아서 나왔다.
왠지 마법사의 주문 카드를 받아 들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 주문 카드는 과연 어떤 효력이 있을지 몰랐지만
일단은 마법사의 지시를 따라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다시 그 병원을 찾았고,
지난번 메모를 건네었던 그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의사의 말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처음 방문 때보다 훨씬 떨리고 긴장됐다.
“임신입니다.”
세상에나....
마법사의 주문카드가 통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나에게 생명이 찾아왔을까!
물론 마법사의 주문카드를 받아 든 우리 부부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우리는 짧은 기간이나마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병원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임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아이가 없어서 자유로운 둘 만의 시간이 편하고 좋았었다.
그러다 문득, 마흔이라는 나이가 부담스러워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함께 마음을 먹은 우리는
의심이나 고민보다는,
그 마음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을 한 것이다.
진료 분야가 달라
딱 한번 만날 수 있었던 그 의사, 아니 마법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특별한 계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