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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7. 2023

내 손주 건드리지 마!

두 할머니가 있었다. 


한 할머니는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까지 탄탄대로를 달리는 딸이 

출산으로 경단녀가 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손수 순주보기를 자처했고, 


한 할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들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두 할머니는 편안한 내 집을 떠나

아들, 딸이 사는 한 아파트 단지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각각 속사정은 다를지라도 이웃사촌이 된 두 할머니는 

하루 종일 손주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동병상련으로 

빠른 시간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두 손주 모두 남자아이인 데다 유치원까지 같아~ 

여러모로 딱이었다. 

등. 하원 때는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고 없는 낮 시간에는 마트로, 미용실로, 밥집으로 

어울려 다니면서 고단함과, 심심함을 함께 나누고 의지했다. 


두 할머니의 우정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찐 우정인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놀이터에서는 두 아이가, 

놀이터 옆 벤치에서는 두 할머니가, 

익숙한 휴식들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아이의 울음소리! 

신나게 놀던 두 아이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고 

조금 더 덩치 큰 아이가 좀 더 작은 아이를 때렸다고 한다. 


어쩌면 흔하디 흔한 놀이터의 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소중한 내 손주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아니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벌어진 것이다. 


당장 다음날부터, 아이들 하원을 기다리는 두 할머니의 모습은 달랐다.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가 한창이어야 할 두 할머니는 

서로 등을 돌리고 찬바람을 쌩쌩~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하원시간. 

두 할머니도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있을 때였다. 

유치원 문을 나서자마자 늘 그렇듯 아이들은 엄마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다 두 할머니의 손주 중 덩치 큰 아이가 덩치 작은 아이를 잡아당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 순간! 벼락처럼 날아든 불호령! 


내 손자한테 손대지 마! 

떨어져!!!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일시 정지상태! 

다행히 덩치 큰 아이의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묵묵히 그 자리를 떠나면서 

더 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것에 모두가 감사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고 

내 손주 같은 친구 손주였을텐데. 

어떻게 대놓고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돈독히 쌓아온 우정도 필요 없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상관없는 듯했다. 

누가 나를 뭐라든, 누가 나를 욕하든 그건 절대 중요치 않다는 듯. 


똑같은 상황.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 

다른 건 몰라도, 

혼자 속을 엄청 끓였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유치원이 끝나는 날까지도 속만 끓이고 있을지 모른다. 

주변사람들의 눈치부터 살폈을 것이고, 

상대 기분도 상하지 않으면서 나도 욕먹지 않을 방법을 찾아 전전 긍긍했을 것이다. 


어느 할머니가 옳고, 어느 할머니가 안타깝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두 아이 간에 또 두 할머니 간에 어떤 남모를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 일을 통해 

나는. 엄마로서 나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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