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Feb 18. 2023

가끔 다섯 여자가 모인다

가끔 다섯 여자가 모인다. 


대체로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우리는 

내내 서로 연락 한번 않고 있다가 

누군가 한 사람이 단체 대화방에 ‘다들 머해?’라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남기면 

그때가 얼굴 본 지 딱 한 달 즈음되는 때라는 걸 안다.  

형식적인 인사는 그걸로 마무리를 하고 

곧장 얼굴 볼 날을 잡는 수순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다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평일 저녁, 직장인으로 가득한 어느 식당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면 

먼저 숙취해소제를 쭈-욱 나눠 먹는 걸로 판은 시작된다. 

다행히 모두 주종을 가리지 않는 데다 좋은 먹성을 타고 난 여자들이라, 

장소며 메뉴 선택까지 큰 어려움이 없다. 


결혼 10년 차 아들 하나를 둔 마흔아홉 여자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있는 마흔여덟 여자. 

결혼 6개월 만에 이혼한 마흔 중반의 여자 

결혼 10년째가 되는 해 이혼을 하고 아들 둘과 사는 마흔 초중반의 여자. 

결혼 5년 차에 임신 시도와 포기 사이를 오고 가는 이제 갓 마흔이 된 여자. 

(사실 정확한 나이들을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조합이 또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서로를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가끔은 남편 혹은 남친과의 잠자리도 이야기하고, 

집안 속사정도 이야기하며 

나날이 서로를 더 알아가고, 더 이해해가며 만난다. 


우리의 관심사는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함께 일을 하는 사이로 시작한 우리는 

예전엔 일과 관련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변수들로 열받았던 일, 

상식적이지 않은 누군가를 상대하며 벌어진 황당한 일, 

열 번을 얘기해도 열 번 다 빵빵 터지는 별난 실수의 순간 등 

최근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한 달 전, 1년 전, 2년 전....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가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고 또 웃었다. 


지금은, 

사십 대 여자들만 모였어도 

결혼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건지~ (비록 신선하지 않을지라도) 정보를 공유하고 

드라마 같은 연애를 기대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응원한다! 

일탈을 꿈꾸면서 먼~ 여행을 상상한다. 

다시 한번 다 함께 모여 일을 시작하자고 다짐도 한다. 

그리고 

결혼, 아이, 남편... 현실 이야기로 이어지던 우리 수다의 끝은 부모다! 

부모가 늙고 있다. 아니 늙었다. 


그리고 눈물을 보인다. 


부모가 늙고 아픈 게 슬픈 건지,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내가 슬픈 건지도 모르면서 눈물이 난다. 


예전엔 내 입장, 내 생각,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내 마음 같지 않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남자는 다섯이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작가의 이전글 내 손주 건드리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