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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그라시아스

과나후아또에서의 메모들

by 세라
@인디오 인형/ San miguel de Allende, Guanajuato , Mexico.


여행자는 서투르다. 어색하다. 새로운 세계가 낯설다. 작은 것부터 신기해하며 배워간다. 당연한 것도 어렵고 두렵다.


길 위에서는 그런 실수 때문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여행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바른 길을 알려주려는 기꺼운 호의와 다정한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금방 잊어버리기 쉬운 사소한 것들이지만, 다행히도 여행 중의 짧은 메모들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글과 사진, 에피소드는 과나후아또와 산 미겔 데 아옌데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목이 말라 음료수를 샀다. 그런데 뚜껑이 너무 세게 닫혀 있어서 잘 열리지 않았다. 평소에도 손목이 좋지 않아 뚜껑을 잘 못 따는, 이건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그 모습을 본 멕시코 아저씨가 웃으며 내게 다가와 뚜껑을 열어준다.


그때는 그저 작은 친절이 마웠는데, 지나고 나니 주변의 어려움을 보고도 모른 체 하지 않는 마음이 더 고마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괜한 것에 마음 닫지 말아야겠다.


¡Gracias!




길에서 박물관을 찾고 있었다. 박물관은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데 초행길이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 주변에 있던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바로 저쪽에 있어, 내가 데려다줄게"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박물관 입구까지 직접 데려다주셨다. 짧은 동행길에서 혼자 왔냐고도 물어봐 주시고, 자기 손자도 동양인(일본인)이라며 어깨를 감싸 주신다.


¡Gracias!




산 미겔 데 아옌데에서 과나후아또로 돌아온 날, 버스에 적혀 있는 행선지를 보고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밤 기운이 어둑어둑 스며들었다. 가다 보니 시내 쪽으로 가는 버스는 맞는데, 반대 방향으로 도는 버스였다. 오래 걸리지만 한 바퀴 돌아가려는 심산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가고 있었다. 종점이 가까워 올 때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시간이 늦어 반대쪽 끝에서 운행이 끝나는 것이었다.


때 같이 내린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알려주셨다. 실은 밤이라 좀 무서웠는데, 아주머니가 다른 버스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시고 기사 아저씨께 부탁도 해 주셨다. 긴장한 상태에서 문법에 맞지 않는 짧은 스페인어를 마구마구 쏟아냈다. 스페인어를 잘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아직 잘 못한다고 말했더니


"No, ¡bastante bien!" (아니야, 꽤 잘 하는 걸)


이라며, 아주머니가 하는 말들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으니 잘 하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바스딴떼 비엔! 그 어조와 말투가 순간 뇌리에 살아 있는 언어로 생생하게 입력되었다.



과나후아또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반대 방향 끝에서 다시 시내로 가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아주머니의 부탁 때문이었는지 버스기사 아저씨는 내 호스텔이 어느 쪽에 있냐고 물어봐 주셨는데, 설명을 하다가 어려워서 아예 그냥 주소를 보여드렸다. 가는 길에 맨 앞쪽에 앉아있던 세뇨르에게 양해를 구하는 걸 본 것 같다. 그리고 조금 후, 나를 호스텔이 있는 거리 바로 앞에 내려주셨다. 버스가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 것 같았는데, 밤이라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신 것 같았다.


밤이라 택시를 타기도 불안했는데 너무나 고마웠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 없어, 마음속에 과나후아또에 대한, 멕시코에 대한 인상으로 간직해 가려 간다.


¡Gra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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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나후아또-산 미겔 데 아옌데

갈 때 105페소

올 때 133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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