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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렌지색의 차례였다

#San Miguel de Allende

by 세라

산 미겔 데 아옌데, 오렌지색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 부띠끄의 메카. 구석구석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

직장생활 중에 깨닫게 된 건데,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무채색을 많이 모았다. 옷장을 열어보면 흰색, 회색, 검정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살 때마다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비슷한 것 투성이였다. 가끔 그것을 자각할 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옷을 고르는 것조차 타성에 젖었던 걸까.

이곳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색깔들에 다시 물들고 있다. 한번도 색깔의 아름다움에 대해 안 적 없었던 것처럼, 하나씩, 천천히, 자세히.

-이날 여행 중의 메모-




San miguel de Allende. 사실 이 도시는 내가 멕시코에서 '컬러'에 대한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한 도시다. 멕시코여행의 많은 시간동안 나는 색감에 압도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 매거진의 메인 컨셉과 글(▽) 또한 이 날의 메모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처음 멕시코에 왔을 때 느꼈던 단편적인 실망감 때문일까, 나는 비워낸 마음에 한층 한층 성을 쌓아나가듯 천천히 멕시코의 컬러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Taxco에서는 새하얀 마을의 독특함에, 멕시코 반데라의 빨강과 초록에, 거리의 수많은 깃발 장식에, 그리고…… 이번에는 오렌지색의 차례였다. 마치 전세계의 응원단이 차례차례 화려한 파도타기를 하는 듯했다. 나는 컬러의 월드컵에 초대받은 이방인이었다.


개인적으로 오렌지색은 그동안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컬러였다. 하지만 사진들을 보면 이 도시에서 내가 얼마나 이 색의 매력에 홀려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단색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게 된 것도 이곳에서부터다.





낮에 처음으로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치 사방에 과즙이 팡팡 터지는 듯 생기가 가득했다. 그 상큼함 때문에 나는 다른 많은 말들을 두고 오렌지색이라 적었다. 저마다 다른 채도와 명도를 가진 오렌지색들은 한데 모여 축제를 벌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골목 구석구석 수많은 오렌지색에 물드는 중. 들여다 보기만 해도, 지나가기만 해도, 햇살처럼 스며드는 컬러의 향연. 이 마을을 지난 후부터 내가 걸었던 곳들엔 자국자국 오랜지색 흔적이 남았을 지도.



이 컬러에는 두 가지 매력이 있다. 낮에는 한없이 상큼발랄해 보이다가도, 해가 낮아지는 시간대가 되면 가을 갈대처럼 조용히 타들어가며 감추고 있던 깊이감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속에 간직해 온 이야기를 딱 이 순간에만 들려주겠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기만 하던 개나리색도 은근하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렌지색 과일을 모아놓고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느꼈던 황홀감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길 바라며, 골목을 누비며 담아 온 사진들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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