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catecas#1 첫날 밤
따뜻한 금빛 속에서도 어딘가 파아란ㅡ 멕시코에서 내가 사랑에 빠졌던 도시, Zacatecas.
화려한 황금빛이 도시 전체에 스며들어 있지만, 밤이면 쌀쌀해 왠지 모르게 수수한 느낌을 풍기는 도시.
거리 위에서 조용히 빛을 밟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멜랑꼴리해져서, 내 마음을 어루만지게 되는 도시.
가장 멋진 노을을 보았고, 나의 잃어버린 詩心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그래서 가장 많이 사색했던 도시.
사실 여행기를 시작할 때부터 이 도시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들은 Zacatecas와 사랑에 빠진 이유들에 대해서 일 것이다.
Zacatecas에 내렸을 때 바람이 불었다.
조금 춥고, 한적하고,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의 도시. 이곳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멕시코에 온 지 한 달 반 정도가 되었다. 이곳 호스텔은 프라이빗 룸이 다른 도시의 도미토리보다 2배 이상 저렴하길래, 이틀 전 반신반의하며 예약했었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오후 늦게 도착하니 무심한 표정의 아저씨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올라 꽁꽁 숨은 다락방 같은 5층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프라이빗 룸이긴 프라이빗 룸이다. 하지만 건물은 오래되고, 인터넷은 안 터지고, 복도에 불은 고장이 나서 으스스하다. 주인이 특별히 친절한 것도 아니다. 바닥에는 개미 몇 마리가 기어 다닌다.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 외출을 했다가 오니 금방 밤이 되었다. 입구도 출구도 없을 듯한 가파란 계단을 올라 5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두운 복도에서 삐걱대는 문을 열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가로등 불빛과 진노랑의 달빛이 테라스 창살 사이사이를 가득 메우다 못해, 방 안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파도의 물방울이 튀어 오르듯 창가에 달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세계로 통하는 관문 같았다.
또한 테라스에서 보이는 은은한 도시의 전경은, 경이로운 자연 앞에 섰을 때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 풍경이 방 안으로 들어와 공간을 무한히 넓혔다.
한참 성당 뒤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방에 있던 한 남자도 테라스로 나왔다. 단 한 마디를 나눴다.
Está bonita.. ¿verdad?
(아름다워.. 그렇지?)
오래 전부터 잠드는 순간은 치즈처럼 푹신한 달빛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불면증이 버릇처럼 찾아올 때면, 잠드는 일은 밤하늘 어딘가에 희망을 걸고 낚싯대를 던지는 일이었다.
오늘, 아마도 이 낡은 프라이빗 룸에서 달빛 듬뿍 받으며 잠들겠다. 행운의 사다리를 고른 밤이다. 왠지 이 도시는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