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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이유, 하나

Zacatecas#2 공원

by 세라

Zacatecas(사까떼까스)에서는 아무 인연도 없이 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차분한 삼일을 보냈다. 지나 온 도시들에 비해 화려한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acatecas와 사랑에 빠진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세 가지에 대해 기록해 두려고 한다.



이유 하나, 공원.


사까떼까스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원들이 정말 많았다. 일부러 찾아간 곳도 있지만, 어쩌다 잘못 든 길에서도 초록 공원들을 만나 쉬어가곤 했다.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와 홀로 보낸 많은 시간들은 사실 그저 이렇게 공원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중남미 여행을 하며 만났던 여행자들 대부분은 여행의 많은 시간을 이렇게 멍하니 보냈다는 것에 공감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냐고 했고, 어떤 이들은 그런 것에 좀 지루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긴 여행 동안 둘 다를 느꼈는데, 사까떼까스에 있는 동안만큼은 공원에 앉아서 깜빡 잠들 정도로 편하게 쉬기도 했고, 흩날리는 꽃잎 하나에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공원에서 앉아 쉬며 가장 행복했던 도시가 단연 이곳, 사까떼까스였다.



Museo Francisco Goitia


위 사진들은 Francisco Goitia 박물관 안의 정원이다. 내가 간 날이 휴관일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고 공원 주변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박물관이다. 그런데 이곳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중에 한번 더 들렸다. 다시 찾았을 때 시간상 박물관은 들어가지 않고 정원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왔는데, 열심히 사진을 찍는 중에 정원사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다. 땅바닥에 거의 주저앉기까지 하며 촬영에 열중하고 있던 터라 좀 머쓱해졌는데, 오히려 사진을 더 찍으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박물관에 박물관 앞 정원만 보러 온 여행자가 또 있었을까?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은 그 자체로 박물관을 대표할 만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정원사들에게는 정원이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였다. 꽃과 나무를 돌볼 때는 붓을 든 화가처럼 섬세했다. 풀 끝의 모양을 정리할 때는 사려 깊은 조각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분들에게는 어쩌면 나 같은 여행자가 진짜 손님일지도 모르지. 낭만이 있는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원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던 오후의 정원에서, 바라보고 있던 이파리가 한순간 툭 떨어진다. 나는 아차 하며 내가 이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상상 속으로만 존재했던 꿈들이 소소한 풍경 앞에서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있는 법을 배울 틈 없는 삶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삶이었다. 멕시코에 온 이후로도 기상천외한 축제와 새로운 만남, 음악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오늘, 고요한 정원 속에 앉아 내 안으로 물살처럼 밀려드는 모든 것들에 '타임!'을 선언하고 바야흐로 '쉼'의 세계로 빠져 본다.


어젯밤 달빛이 내 주변에 차오르는 걸 느끼며 행복하게 잠들었는데, 이번엔 햇빛의 차례인가. 눈을 감는다. 햇살 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상상을 한다. 양지에 고여있던 빛들이 나의 무게만큼 크게 한번 출렁인다. 햇살의 파편들이 생기 있게 부서져간다. 아, 꿈결 같아라……



Parque Alameda


알라메다 공원은 내가 사까떼까스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원이다.



얼마나 좋았냐면, 여기가 너무 좋아서 짧은 며칠 동안 이곳 주민처럼 매일 한두 번씩 찾아왔고 나중에는 내가 이 도시를 기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맑은 아침의 기운을 느끼러고, 한낮의 그늘을 찾으러 왔고, 어둠이 잦아들어 으슬해지는 시간대에도 이끌리듯 왔다.



특히 이 공원에서는 포근한 햇살 아래 앉아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연주곡들이 공원 전체에 흘러나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선사해 주곤 했다. 마치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발견한 듯 기뻤다. 멜로디가 망망대해를 향해 끝도 없이 재잘대며 흘러갔다. 나도 상상 속에서 돛단배를 띄워 길을 따라 흘러갔다. 첫날의 그 특별한 경험이, 나를 매일 이곳에 오도록 했다.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하며 막연히 멕시코에 오고 싶어 하던 때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지, 아마. 혼자 책상에 앉아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시간 동안 그 언어를 쓰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로 감각이 희미해져 갔었는데


문득 공원의 비둘기가 돌 위에서 발을 헛디뎌 주르르 귀엽게 미끄러진다.


상상 세계는 알고 보면 바로 옆방처럼 가까이 있었던 거구나.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거였구나. 좁은 공간 밖으로 통하는 문들은 내 사방 어디에나 있었고, 두드리면, 열리는 거였구나.


어쩌면 나는 여행의 의미 중 하나를 알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알라메다 공원은 사까떼까스의 많은 공원들 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다. 돌 의자에 위에 앉으면 햇살의 온기가 그대로 감돌아 낮잠이 절로 찾아온다. 아마도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게 될 곳이다.



Jardín Independencia



길 중간에 위치한 아담한 크기의 공원. 청명한 햇살이 오전을 밝히고, 아빠와 아이가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들에게 말을 붙여본다.


-¿Cuantos os tiene? (아기 몇 살이에요?)


아빠가 싱긋 웃으며 대답해 준다.


-Tiene cuatro años.(4살이에요)



Parque Sierra de Álica



넓고 호젓했던 공원.



Jardín Juárez



하나의 작은 숲 같아 공원(Parque)이라는 말보다 정원(Jardín)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멕시코 어느 도시에나 세워져 있는 도시 이름 알파벳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하고 서 있었다. 사까떼까스에는 이런 작은 정원들이 흔하다. 일상 속에서 쉬어갈 곳들이 그만큼 많다.




사까떼까스는 지금도 생각하면 지칠 때 홀연히 몰래 다녀오고 싶은 곳이다. 찾아가 며칠이고 벤치에 앉아 햇살 줄기를 맞다 오고 싶은 곳이다. 공원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 세계는 내게 참 다정했다. 햇살이, 멜로디가, 내 볼을 스치며 낙하하는 이파리가, 나의 온 마음을 다 흔들었다.


사까떼까스에서 보낸 오후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자락이 풀색으로 물든다. 그 마음 손수건처럼 곱게 접어 주머니 한 켠에 지니고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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