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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컬러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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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굴, 단순한 하루
by
세라
Apr 6. 2017
+)봄비가 내리는 새벽입니다. 한여름밤 꿈같은 이야기, 대단한 도전기 같은 걸 내놓지 않아도, 두둑두둑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소한 이야기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네요.
늦잠을 자고 '오늘은 무엇을 할까'가 유일한 고민이었던, 걱정이 없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던 날들이 그립습니다.
하루, 뒹굴
Serdán에서 맞이한 첫
일요일, 오기 전 주말 계획을 잔뜩 세웠지만 막상 오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루 종일 홈스테이 가족의 집에서 뒹굴거리다, 오후께 동네로 산책을 나왔다.
깃발 장식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깃발 장식들이 걸려 있다.
마치 알고 보면 항상 곁에 있었던 사진 속의 친구처럼
신경을 써서 찍은 사진 속에도 있고, 실수로 누른 셔터의 사진 속에도 어김없이 있다.
어느새 나도 풍경들을 잊고, 깃발의 그림자들을 밟고 지
나고 있다
.
달달한 것
미리
Izza에게
갈만한 까페를 물어봐 뒀었다.
카푸치노, 39 pesos. 약 2300원.
단 건 아주 가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만 마시는데, 멕시코에서는 어떤 음료를 시켜도 엄청나게 달다.
차를 마실 때도 설탕을 듬뿍 넣고 마시는데 커피에도 예외가 없다.
국화차에 커다란 스푼으로 설탕을 넣는 걸 보고 식겁하며 저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난
다.
실은 카푸치노를 시킬 때 생크림은 생각도 못했다. 결국 반도 못 먹었다. 달달한
걸 참 좋아하는 멕시코.
영화 DVD
시장에 가면 빠지지 않는 DVD가판대.
멕시코 전역에서 이렇게 씨디에 영화를 구워서 파는 걸 볼 수 있었
다.
관심을 보이자 '아미가(Amiga, 친구)'!라고 부르며 호객하는 멕시코 아저씨
.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면서 스페인어
공부
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몇 개 샀다.
아이러니한 건 돌아온 뒤 내 노트북에는 씨디롬 자체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그렇구나, 이미 씨디를 쓰는
매체 자체가 사라져 버렸구나,
게으른 나는 씨디를 여전히 기념품처럼 간직하고 있는데, 마치 어딘가에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하다.
성당
센뜨로에 가면 언제나 그 마을의 장승처럼 서 있는 성당. 큰 도시든 작은 도시든 성당이 즐비하다.
그들은 평소에도 성당을 가면서, 여행이나 휴가처럼 특별한 날에도 성당을 찾아가 미사도 드리고 신나게 기념사진도 찍는다.
그만큼 종교가 삶 속에 깊이 스며든 거
라고 볼 수도 있겠고
, 어쩌면 그냥 종교 이상의 의미 같기도 하다.
이들의 생활이자 문화이자 종교이자 랜드마크인 성당
.
그러므로, 무지한 여행자도 내치지 않는다. 들어와도 괜찮아요.
pase, pase.
길거리 음식
이곳에 있으면서 내 얼굴보다 더 큰 자이언트 빵들을 자주 봤었다.
압도적인 외모에 비해 맛은 평범한데, (사진 속 빵에서) 약간 계피맛이 났다. 맛있었다.
음식은 멕시코 여행의 큰 이유였기에 오기 전 유일하게 장티푸스를 맞았고, 여행하는 내내 길거리 음식을 원 없이 사 먹었다. 역시 아무 탈도 없었다. 사실 장티푸스를 맞지 않았더라도 건강했을 것 같은 예감. (그보단 오히려 페루에서의 고산병이 뜻밖의 강적이었다.)
아낌없이 담아주는 과일 한 컵은 12 pesos(약 700원)면 살 수 있다.
아, 그런데 또 까먹었다!
과일컵 안에도 온갖 달달한 시럽들을 추가해서 준다. 시럽은 빼고 과일만 달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냥 과일 본래의 단 맛으로도 충분하다.
페루에 있을 때 내 비상용 튜브 고추장을 맛본 페루 사람들이 맵다고 기겁을 하고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밥에 야채와
살짝 볶아서 비
비기만 해도 한식에 대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비장의 소스였는데, 마치 벌칙 음식 취급을 받은 것에 나
로서는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단 건지, 우리가 매운 건지, 그 누가 판결을 내릴 수 있으랴. 지구 반대편에서는 모든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모든 것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인 것이 없다.
별 일 없는 날
마음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 없는 날
하릴없이 걷고
쌉싸름한 기분들을 느끼던 시간들이
무의식 속에서 심심한 추억으로 남았다.
얼마쯤 의식의 흐름대로 살 수 없을까,
생각과 할 일과 계획들로 넘쳐나
어느 하나 빠뜨릴까 초조한 날들 속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마을에서의 일상만큼만 단순한 삶의 단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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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전직 PD. 현재는 사회에 해악만은 끼치지 않으려는 사려 깊은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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