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이렇게 글로벌한 무술이었어?
멕시코에 있는 동안 의외로 한국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멕시코에서 사귄 친구들 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우연히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신기했다. 유행 지난 아이돌이 많기는 했지만, 중남미까지 뻗어나간 한류의 힘은 매번 놀라웠다.
멕시코 친구들의 한국 사랑(!)과 그곳에서 발견한 한국의 흔적들을 소개해 본다.
어느 박물관에서 입구를 찾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멕시코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딸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글을 배우고 있어서 자기도 안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임을 알아봐 준 것도 모자라, 한국어까지 알다니! 너무나 반가웠다.
멕시코 친구들의 드라마 사랑은 상상 초월이었다. 많은 경우, 한국 문화를 접할 때 드라마를 통해서 입문하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도깨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유가 자기 남편이라느니, 그리고 이동욱은 네꺼라느니, 사이좋게 덕질(?)을 함께 하기도 했다. 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데서 관련 영상을 찾아서 나에게 먼저 공유해 주기도 했다.
중남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 항상 '더빙'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배우의 원래 목소리를 살리고 자막으로 보는 것을 오리지널로 여기는 우리와는 반대다. 친구가 보여 준 스페인어로 더빙된 '꽃보다 남자'는 꽤 흥미로웠다. 구준표와 금잔디가 스페인어로 말하며 싸우는 모습이란! 언어만 바꼈는데 느낌이 완전 달라서 재밌다.
>>혹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친구가 보여준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ahngooj/videos/1609035752470701/
멕시코 친구네 집에 하룻밤 자러 갔을 때, 내가 가져온 핸드크림을 선물로 줬다. 친구가 무척 좋아했다. 친구네 엄마도 친구가 한국 화장품을 되게 좋아한다며 맞장구를 쳐 주셨다.
그녀의 서랍 속에는 한국 화장품이 정말 많았다! 디자인 한정판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포장지까지(!) 예쁘다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일 기간에 몇천 원 주고 살 수 있는 화장품들을 인터넷으로 힘들게 구해서 아껴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 화장품은 세계 최고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선 비싼 화장품만 좋은데 한국 화장품들은 싼 것도 질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선물을 챙겨갈걸 싶었다.
멕시코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올해 여름에 한국에 놀러 오기로 한 또 다른 멕시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에뛰드 화장품을 쓰고 있는 걸 봤다. 한국에 왔을 때 에뛰드 하우스에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코리안 코스메틱 투어 제대로 시켜줘야겠다.
내가 있었던 학교에는 공식적으로 '태권도' 수업이 있었다. 멕시코 시골 학교에, 태권도가 정식 수업이라니! 체육관에 들어갔을 때 만난 태극기는 정말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길에서도 태권도 도장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을 심심찮게 봤다. '태권도'라는 글자를 삐뚤빼뚤 틀리게 적어놓은 곳도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멕시코에는 4000여 개의 태권도장이 운영 중이라 한다. 우와!)
내가 한국인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수업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태권도를 배운 적이 없어서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태극기의 의미도 설명해달라고 했는데 그때 좀 잘 설명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음양오행의 철학과 우주의 진리를 스페인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멕시코에서는 어딜 가나 빨강과 초록으로 꾸며진 것을 볼 수 있는 만큼 국기사랑이 굉장히 큰데, 외국에 나갈 때 태극기 정도는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둘, 셋
태권도는 잘 모르지만, 대신 앞에 나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발음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실제로 태권도를 배울 때도 한글 구령으로 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 둘, 셋' 말할 때 잘 따라 하길래 장난기가 발동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빠르게 말하자 다들 너무 어렵다며 못 따라 하고 웃기만 했다.
웃긴 건 이때 같이 수업에 참여했던 스페인 친구가 나보다 훨씬 더 태권도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던 적 있다며, '차기' '아래막기' 등 한국어 명칭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동작을 선보이는 그녀를 보며.. 태권도가 이렇게 글로벌한 무술이었어? 유럽부터 중남미까지, 어째서 다들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한류에서 역시 케이팝을 빼놓을 수는 없다. 나는 평소 이런 트렌드에 늘 뒤처지는 대표적인 캐릭터라, 친구들이 말하는 그룹 중에 모르는 게 많았다. 빅뱅, 방탄소년단, 빅스.. 춤추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댄스 아이돌들이 인기가 많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 가수 브로마이드를 구해서 방에다 걸어두기도 했다.
'한류 열풍!' '~을 사로잡다' 이런 식상한 문구로 이루어진 기사들만 접하다가, 멕시코 친구들의 생활 속에서 직접 발견하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흔치는 않지만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이 많아져서 인터넷에 있는 자료로 한글을 배우는 친구도 있었고, 또 유튜브를 보며 한국 음식을 만든다는 아줌마도 만났다. 인터넷으로 고추장을 사야겠다고 말하는데 너무 웃겼다. 또 삼성도 굉장히 많이 쓰고 있었다. 드물지만 LG폰을 쓰는 친구도 봤고 현대, 기아 자동차, 대우 전자레인지 등등 가전제품도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솔직히 김현중이나 세븐,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이 있는(?) 연예인들도 거기서는 아직 인기가 있었다. 소지섭을 제일 좋아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연예인들의 가십거리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누구와 사귀고, 누구랑 언제 헤어졌고… 어떤 친구는 부산행을 봤냐며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나는 심지어 이조차 보지 않아서 할 말이 없었다. 하필 만난 한국인이 옛날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 (__)
우리나라의 드라마, 영화, 음악, 문화를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멋진 일이다!
Espero ir algún día por allá
(언젠가 한국에 가 보고 싶어)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언젠가 한국에 가 보고 싶다고, 그게 꿈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매개로 그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는 작은 관심이 그 나라의 언어, 문화, 사람들에 대한 호감과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중남미, 그리고 멕시코까지 오게 되었는데, 멕시코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우리나라를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반해버렸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에게 말한다. 언젠가 멕시코에 다시 갈 거라고.
다정하고, 살갑고, 자유롭고, 열정적인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Nos vemos pronto,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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