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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돌의 비밀, '미나 엘 에덴'

Zacatecas#6 광산

by 세라


몽환적인 밤이 지나고 테라스에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 다시 찾아온 아침이 또 갑다. 오늘은 사까떼까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까떼까스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정을 길게 잡았을 텐데. 마음 가는 대로 일정을 바꾸곤 했지만, 이번엔 비행기를 예약해둔 게 있어서 더 바꿀 수는 없었다.


사까떼까스에 왔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나'다. '미나'는 '광산'이라는 뜻인데, 사까떼까스가 이름을 알린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멕시코 중북부 지역에 많은 은광도시들이 있지만, 사까떼까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에 가장 중요한 곳을 가게 되었다.


La mina = 광산



사까떼까스에서 파는 대부분의 기념품들이 돌과 관련된 것은 그 때문이다. 불모지 같은 광산의 바위들이 붉은색을 띠는 것, 도시 전체의 건물과 거리가 핑크빛 돌로 이루어진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사까떼까스에서 채굴된 암석들은 도시 전체를 붉게 만들었다.


멕시코는 과거 세계 최대의 은 생산지였다. 멕시코 전체 은 생산량의 2/3가 이곳 사까떼까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에서 사용되던 은의 대부분을 생산했으니, 도시 하나쯤 붉게 물들여 버리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은광맥을 발견하고 1546년 사까떼까스 시를 세웠고 은을 비롯한 수많은 광물들을 채굴했다. 그로 인해 멕시코가 발전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은은 스페인 부의 막대한 원천이 되어 주었다. 현재 광산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사까떼까스에서는 엘 에 광산이 유명한데, 과거 광부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자연환경은 어떠한지, 어떤 광물들이 있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광산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사까떼까스가 유일하다고 한다.



Mina El Edén

에덴 광산


입구에서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이면 가이드와 함께 광산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꽤 한적했다. 나누어 준 보호 비닐과 헬멧을 쓰고 앉아 있으니 노부부 한쌍이 도착했다. 멀지 않은 아구아스깔리엔떼스(Aguascalientes)에 살고 있는 분들이었는데, 두 분이서 놀러 온 것이었다.


광산에 들어가려면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셋과 가이드 한분, 총 넷이서 광산 안으로 들어가는 열차를 탔다. 열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어디까지 들어가는 걸까. 너무 어두워서 사진도 찍을 수 없는, 아니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가이드는 저 동상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부자가 된다였나?)고 하며, 기념 촬영을 유도했다. 세명밖에 없어서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나도 같이 한 장 찰칵.


가이드 분은 세 사람뿐인데도 영어 및 스페인어로 친절히 안내를 해 주며 중간중간 조금씩 시간을 주었다. 사실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내부가 굉장히 넓어서 가이드의 템포에 따라 약간 빠른 속도로 둘러보는 것이 딱 좋긴 했다.



어두운 동굴을 따라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광물들. 일부러 더 노출을 줘서 찍은 건데, 실제로는 더 어둡다.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신비롭고 정교하지 않은가! 종류도 방대했다. 알 수 없는 심해 생물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광물들은 한때 지구과학을 전공했다가 전과한 나에게 흥미를 끌었는데 하나하나 자세히 볼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는 못했다.



노부부와 가이드 어둡고 긴 동굴을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에게 혼자 여행 중이냐고 물으신기해하셨는데, 가이드가 "아시아 여행자들은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하더라"자기가 본 아시아 배낭여행자들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혼자 다니며 사색도 하고 삶을 찾는다는 식으로 설명했는데, 사실 뭔가 인도수행자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중남미에서는 홀로여행문화가 우리보다 덜한 것 같다.



화려한 광물 전시를 지나 더 깊이 들어가면, 군데군데 옛 광부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빛 한 줌 없는 이곳에서 얼마나 열악하게 일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 막대한 부의 뒷그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아래 어둠의 공간처럼 그들은 잊혀진 존재들이었다. 내가 내내 반해 있었던 사까떼까스의 아름다움은 그 잊혀진 존재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까떼까스의 아름다움은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이곳은 관광지가 되었고, 노동을 착취당하던 광산의 일부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바(bar)로 개조되어 있다.


비단 사까떼까스뿐일까. 멀고도 먼 도시지만 희생의 역사는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역사의 어떤 시기든, 지구의 어떤 장소든, 희생의 역사는 늘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의식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이기심은 늘 태초의 그것 같다. 막 캐낸 원석처럼 말이다.



에덴 광산은 지하 7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4층까지 내려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보이듯이 물로 차 있다. 어둠 속에서 세노떼처럼 비치는 파란 조명빛이 자못 신비롭다.



나는 이곳에서 한바탕 해프닝을 일으켰는데, 실수로 아래로 dslr 카메라 배터리를 빠뜨려 버린 것이다. 배터리를 갈아 끼우려고 하다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철창 아래쪽 급경사가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위험한 구조였다. 그 벼랑 끝 애매한 위치에 배터리가 약올리듯 멈춰섰다.



안전을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이드 분이 무전기로 몇 번 대화를 주고받더니 감사하게도 꺼내 준다고 하셨다. 배터리는 나중에 광산을 다 보고 나서 한 시간쯤 뒤에 돌아와서 받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기계와 인력을 투입해서 꺼내 주신 거였다. 그 정도면 거의 공사였다.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너무너무 죄송했다.



이곳이 광산의 마지막이다. 가이드 분이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이곳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나오거나 부파 언덕 전망대로 연결되는레페리꼬(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공사 중이라서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전날에 부파 언덕을 보고 왔다. 부파 언덕에서 붉은 노을과 붉은 광산의 환상적 콜라보레이션에 넋을 잃었기도 했지만, 꼭 해질녘이 아니더라도 멋진 도시 전경을 볼 수 있으므로 꼭 올라가 봐야 한다.


(예쁜 풍경은 한번 더.. ▽)


(부파 언덕의 노을 ▽)



배터리 구조를 기다리며 먹었던 점심. 72 pesos.




위의 사진들은 사까떼까스 박물관(Museo Zacatecano)에서 찍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 역사를 배울 때 과거 경제 부흥기에 대해서 알려면 은의 이동 경로를 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지역에서는 어느 박물관에 가도 '은의 역사'가 아주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광산과 박물관 둘 다 가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이 박물관은 영상이나 오디오 설명도 잘 되어서 볼거리가 많다.


사까떼까스는 아름다움은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에덴광산 입장료: 80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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