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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우리 집

Mi casa es tu casa

by 세라
네 집처럼 편하게 지내렴


멕시코에 있는 동안 단기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프로그램이 '홈스테이'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때는 늦은 밤, 커다란 캐리어와 짐들을 낑낑 들고서 나는 어느 집 앞에 요란하게 등장한다. 평소 개를 무서워하는데, 대문부터 나를 반겨주는 두 마리 개의 격한 환영 인사에 한바탕 소동을 치르면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나의 멕시코 가족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나에게 처음 건넨 말. 네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는 것이었다.




한적한 동네였다. 이곳에서 순박한 가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방향을 둘러봐도 마을을 수호하듯 화산(volcán)이 서 있었고 지대가 높아 밤에는 추워지는, 그래서 집과 가족이 시리도록 생각나, 그런 동네였다.


처음에 안내받은 방에 들어섰을 때, 들고 온 침낭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부모님이 쓰시는 방인데 나를 위해 가장 큰 방을 비워주시고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너무나 죄송했다.


내가 지내는 방은 2층에 있었고,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1층으로 내려가면 항상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셨다. 멕시코에서는 점심시간이 2~3시 정도로 굉장히 늦어서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했다.


나의 멕시코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직접 또르띠야를 데워주셨는데, 밖에서 사 먹는 간식들과는 또 다른, 따뜻한 느낌이 물큰했다. 먹는 동안에도 식지 않도록 속도에 맞게 데워주시곤 하던 정성과 배려는,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매일 아침 그리워질 무언가를 예감하곤 했다.


테이블 위로 비스듬히 비치는 아침 햇살, 갓 데워진 또르띠야의 온기를 보드랍게 품는 정갈한 원단……


모든 멕시코 음식의 기본이 되는 또르띠야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고향에 갔을 때 엄마가 지어주는 밥. 딱 그거였다.


¿Quieres más?


밥을 먹을 때 항상 "더 먹을래?"하고 물어봐 주셨는데, 뭐라고 대답하는 게 예의에 맞는 건지 잘 몰라서 나는 항상 밝은 얼굴로 "네!"라고 대답했다. 후식으로는 항상 과일과 차를 내주셨다. 아낌없이 주셨고, 맛있게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갔던 날, 학교에서 점심을 싸 오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이런 걸 요구하기가 뭔가 민망했다. 망설이다 쑥스러워하며 혹시 먹을 걸 가져가도 되겠냐고 여쭤봤을 때, 멕시코 엄마는 선뜻 샌드위치를 싸 주셨다. 평소 내가 잘 먹어서인지, 손이 크셔선지, 자이언트 사이즈의 샌드위치 2개에 내가 엄청 맛있다며 감탄해하던 빠빠야, 그 외 푸딩 등 후식들까지 양껏 싸 주셨는데, 나중에 점심시간에 보니 내가 친구들 중 제일 푸짐하게 싸 온 것이었다. 그냥 집에 있는 과일이나 과자만 몇 개 챙겨 온 친구들과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면서 괜히 으쓱으쓱 기분이 좋아졌다.


멕시코 엄마 최고! 고마워요!


내가 좋아했던 Papaya(빠빠야)라는 과일


오전에는 할머니 옆에 붙어서 꽃꽂이 하시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햇살 좋은 날 할아버지를 따라 넓은 뒷마당과 정원을 둘러보기도 했다. 'Pera'라는 과일을 직접 따 주시곤 했는데, 생긴 건 조금 다르지만 직접 맛을 보니 Pera는 배였다.


가족들 중 Izamar의 생일에는 이렇게 가까이 사는 가족 친척들이 다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Izamar 세 자매는 모두 열성적인 케이팝 팬다! 방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 아이돌 가수 포스터가 가득했고, 내가 모르는 연예계 최신 정보들까지 꿰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혼자 공부해 왔던 스페인어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초반에는 너무 긴장해서인지 쉬운 회화조차 잘 들리지 않았고 가족들은 영어를 전혀 못 했다. 그나마 짧은 스페인어로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게 다였는데 이조차 더뎠다. 2주째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스페인 친구가 놀러 와서, 소통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는데 엄마가 얘기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있어, 그렇지?


이렇게 예쁘게 말해주셨는데... 반전은 내가 이 말을 못 알아듣고 1초 만에 "No"라고 대답해서 모두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 표정과 제스처와 말투는 모두 Sí(=Yes)였는데!


마지막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친구들은 '마지막 날'이어서 더 놀고 싶어 센뜨로로 갔지만, 나는 '마지막 날'이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만들었다. 지내는 동안 이렇게 더 많이 적극적으로 다가갈 걸, 수줍고 조심스러워 했던 시간들이 그제서야 아쉬웠다.


또한 사전에 홈스테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선물 하나 제대로 챙겨가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가방을 뒤져봐도 드릴 게 없어서, 혹시 기회가 되면 외국인 친구들에게 요리해 주려고 가지고 왔던 돼지갈비양념소스를 통째로 드리고 왔다.


..내가 가고 난 후 맛있게 드셨을까?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는 말이 이제 여기는 너의 집이니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말로 바뀌었다.


Mi casa es tu casa


미 까사 에스 뚜 까사. 나의 집은 너의 집이야. 멕시코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좋아하는 말이고,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한국어에서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고 부르듯, 그런 말이다.



따뜻했던 아침들을 잊지 못할 거예요.

가슴속에 먼 고향으로 품고 지낼게요.

그리고, 언젠가 또 놀러 갈게요.

멕시코,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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