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알반과 시장을 돌아보고 친구 D와 맥주까지 마신 뒤,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밤. 자려고 샤워까지 다 하고 누워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도미토리에 며칠 전부터 계속 클럽에 가고 싶어 한 친구가 있었다. 그날도 역시 우리에게 가자고 졸랐지만, 모두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했다. 나는 그날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그런데 새벽 2시가 되도록 끈질기게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며칠째 말을 듣다 보니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포기를 모르는 그 친구는 와하까 클럽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단 한 번밖에 없을)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등등, 끝없는 논리로 나를 설득했고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사실 원래 팔랑귀) 장고 끝에 내가 돌아오고 싶을 때 무조건 같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동행하게 되었다. 춤추는 데는 취미가 없어서 구경만 하고 올 생각으로 모자를 눌러쓴 채 대충 걸쳐 입고 호스텔을 나섰다.
번쩍번쩍번쩍번쩍
와하까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이라는 이곳은 층별로 테마가 나누어져 있었다. 어느 층은 트로트(?), 어느 층은 일렉트로닉.. 그런 식이었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광란의 공간 속에서 나는 현란한 무대를 바라봤다. 너무 번쩍번쩍거려서 얼굴도 잘 구별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층별로 테마가 다른 줄 모르고 공연을 하는 층에 계속 있다가, 동행한 친구의 손짓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한국에서도 클럽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사실 이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상 나와보니 쌩얼에 낡은 모자, 늘어난 티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게다가 앉아서 맥주나 홀짝이고 있어야겠다 했는데, 옮긴 층에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같이 왔던 친구는 처음에는 챙겨주더니 갈수록 신이 나서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이런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람들이 자꾸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웬 거지스타일(?)의 동양 여자가 신기했던지, 멕시코 사람들은 강강술래하듯(?) 계속 내 주변을 둘러싸며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버터가 뚝뚝 흐르는 듯 느끼한, 키가 작은 어떤 남자가 자꾸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안다며 '통역'을 빌미로 가까이 다가왔다. 보통 인사를 할 때 나는 "스페인어 조금 할 줄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이때만큼은 "나 스페인어 잘해!!!!"를 필사적으로 외쳤다. 나는 그 느끼한 남자가 싫어서 한참이나 도망 다녔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마다 자꾸 통역을 해주겠다며 끈질기게 접근해 왔다.
시끄러운 댄스장에서 가끔 사람들과 샤우팅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끝없이 터져 나오는 레게톤 사운드에 피곤해졌다. 다음날에 Hierve el agua 투어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에 늦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차저차, 초췌한 몰골 때문에라도 나는 그 친구를 찾아 그만 호스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사실 진짜 클라이맥스는 새벽 5시 이후로, 그때부터 천장에서 맥주가 뿜어져 나오는 등 각종 쇼가 벌어진다고 한다. 민박 사장님도 다음날 우리가 클라이맥스를 못 보고 왔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물론 나를 꼬드겨갔던 친구는 일찍(?) 돌아오자고 한 나를 두고두고 원망했다.
서프라이즈
가장 황당한 일은 그로부터 이틀 뒤 벌어졌다. 와하까를 떠나는 날, 다음 행선지인 산크리토발로 가기 위해 아데오 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나에게, 저 멀리 터미널 짐 보관소의 직원이 크게 나를 부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바로 영어를 통역해주겠다던 그 남자!!였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그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버젓이 손을 흔드는데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뒤로도, 영원히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를 중심으로 강강술래를 하던 클럽남(?)들이 터미널의 관문마다 자꾸만 하나씩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버스회사 ADO의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클럽은 회식(?!!)이었었던 것이다. 황당해하며 캐리어를 싣고 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불쑥 나타나서 짐 싣는 걸 도와주며 묻는다.
"언제 와하까에 돌아올 거야?"
"모.. 몰라!"
표를 확인하는 사람, 짐을 실어주는 사람, 관리소에 있는 사람...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와하까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멘탈은 털털 털렸다(...)
"너희들 다 여기서 일하는지 완전 몰랐어!"
"우리가 말 안 했으니까 ^---^"
어쩐지, 그 남자가 자꾸 '언제' 떠나냐고 '몇시 버스'냐고 물어보던 것이... 그 모든 건 복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