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xaca#10 거리, 성당, 몬떼알반
-와하까에서 시간 순서대로의 기록-
와하까 도착
귀여운 마을 컬러와 낮은 지붕들. 와하까 거리에 처음 산책을 나갔을 때, 직전에 있었던 과달라하라보다 더 좋아하게 되리란 걸 직감했다.
와하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예약한 한인민박으로 찾아갔다. 과달라하라에서 비행기가 두세시간 지연되어서 생각한 것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생각 밖에도(감사하게도) 사장언니가 내가 말한 예상도착시간보다 늦어서 신경쓰며 기다리고 계셨다. 안내해준 도미토리는 2층 침대가 2개인 아담한 사이즈였다. 나는 금요일에 도착했는데, 사장언니가 금요일에만 열리는 시장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늦은 오후, 가볍게 동네를 둘려볼 겸 짐을 풀어놓고 산책에 나섰다.
#와하까 산토도밍고 성당 사진
동네 한바퀴
걷다보니 제일 먼저 산토도밍고 성당이 나왔다. 성당 앞쪽에는 여러가지 기념품과 공예품을 펼쳐놓은 천막들이 늘어져 있는 거리가 있었고, 그 뒤로는 고급 갤러리도 많았다.
성당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 젊은 멕시코 청년이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와하까 바다를 가봤냐며 사진을 보여주는 등, 마구 이야기를 쏟아놓아서 얼떨결에 듣고 서 있었다.(영업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한 멕시코 사람과 호기심 많은 유럽 여행자가 합류했다.(이런 상황은 늘 신기하다) 그는 정말 여행 상품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와하까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한 뒤, 나는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가야한다고 했다.
주인 언니가 알려준 금요시장에도 들렸다. 사실 다른 도시에서 시장을 하도 많이 가서 그런지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온갖 생활용품을 펼쳐놓고 있는 시장 통로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사각형의 커다란 광장 변을 따라 하얀 천막을 쳐 놓은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지리를 좀 익혀둔 뒤 숙소로 돌아왔다.
새로운 인연, 삼겹살 파티, 야간 산책
여행 중 한국인 친구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던 나는, 와하까에서 드디어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숙소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보다 한 살 어린 D라는 친구와 말을 트게 되었다. 그녀는 장기여행을 하고 있었고 유럽부터 시작해 아프리카를 거쳤다가 아메리카로 들어와 멕시코에 와 있는 상태였다. 아프리카에서 샀다는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자유로운 영혼인 그녀에게 꽤 잘 어울렸다. 우리는 다음 날 같이 몬떼 알반 유적지에 가기로 약속했다.
밤마다 열리는 삼겹살 파티에도 참여했다. 처음엔 약간 고민했지만, 도미토리룸에서 말을 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7명 정도가 오손도손 모였다. 막상 삼겹살이 익어가는 향기를 맡으니 언제 망설였나 싶을 만큼 맛있게 먹었다. 밤에는 사장언니의 주도 하에 사람들과 다같이 뒷동산에 올라가 야경과 밤 분위기를 즐겼다.
#와하까 밤 산책
몬떼 알반
D와 동행하기로 한 두번째 날, 꽤 오랫동안 혼자 다녀서인지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나섰다.
시장 근처에 몬떼알반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있었다. 둘이서 물어물어 가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생수도 미리 샀다. 표는 왕복 55 pesos. 표를 살 때 버스 탑승 시간을 기입하길래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이 금방 모였고 곧 버스가 출발했다.
몬테 알반. 사포텍 문명 유적지. 입장료 65pesos.
녹음 아래 들어서면 왠지 마음이 선해진다. 길 초입에 최소 몇백년은 살았을 듯한 엄청난 크기의 나무 한 그루가 신성한 기운을 뿜으며 서 있었고, 몇걸음 더 들어서니 여기저기 하얀 꽃송이가 많이 피어 있었다. 종종 생각했던 거지만, 몇백년씩 사는 나무에는 어떤 영혼이 있는 것 같다.
날씨가 정말 눈부시게 화창했다. 가루로 와사삭 부서지는 비스켓이 떠오르는, 크런치한 날씨였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초경량 우산 겸 양산을 가지고 다녔는데, 피라미드 유적지엔 대부분 그늘이 거의 없어서 유용했다. (약간 극성처럼 보이긴 했지만)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함께 다닌 D는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현장에서 설명을 들으니 훨씬 좋았다. 사실 생수를 미리 사 가는 팁도, 몬떼알반의 하얀 꽃에 대한 이야기도 그녀가 알려 준 것이었다. 이런 곳에 올땐 역시 예습이 필수다!
#몬떼 알반을 부르는 여러 말
몬테 알반은 나에게 촐룰라 이후 두번째로 보는 피라미드 유적지였다. 와하까 일대는 사포텍 문명의 수도로서, 몬떼 알반은 산꼭대기에 세워진 도시다.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춤을 추던 곳 등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며 오래 전 그들의 삶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다.
중남미를 다니다보니 사포텍 외에도 아즈텍, 올멕, 마야, 잉카 등등 다양한 고대문명을 만나게 되는데 사실 보면서도 정확히는 잘 몰랐다. 오기 전에 한번쯤 읽어 보고 올 걸 싶었다.
피라미드에 오면 꼭 착시현상(?)을 겪게 된다.
스케일이 인지영역 밖에 있어서인지, 그 거대함이 잘 와 닿지 않는다. 한눈에 볼땐 그냥 장난감 레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억 하고 깨달음이 온다. 아, 이거 장난 아니구나.
우리는 헉헉대며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꼭 산을 오르는 것처럼 아래쪽에서 가쁜 숨을 가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응원해 주게 된다. 그리고 막상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원한 뷰를 만날 수 있다.
와아아아..! 사진도 좋지만 실제로 가 봐야 진짜 실감이 난다.
한껏 가슴이 쿵쾅거릴 때 훅 들어오는 광대하고도 이국적인 풍경은, 마치 어떻게 해야 제 가치를 잘 드러나는 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오르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피라미드를, 그것도 산꼭대기에, 도대체 어떻게 세운 걸까.
정상 뒷쪽에 펼쳐진 너른 벌판에는 선인장들이 듬성듬성 돋아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햇볕이 원액처럼 진해졌다. 뾰족한 가시들은 연둣빛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나는 몇 없는 나무 그늘을 찾아 잠시 목을 축이며 더위를 식혔다.
D와 함께 성공한 점프 샷.
혼자 여행 다닐 때면 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점프샷이다. 우리는 그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혼자 여행을 다니던 버릇대로 각각 타이머를 걸어놓고 따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함께, 그리고 각자. :)
D가 다른 피라미드를 더 올라가 보는 동안, 나는 풀밭에 앉아 조금 쉬기로 했다.
Un momento de paz, libertad y silencio
거대한 피라미드
무심히 내리쬐는 햇빛
백색소음처럼 편안한 풀밭의 잔디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 찾아 온 정적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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