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Cri#8
여행하는 동안 딱 한번 DHL 국제배송을 이용했다. 바로 산크리스토발에서였다. 그동안 멕시코를 여행하며 선물과 기념품 등으로 짐이 꽤 늘어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래 한번 짐을 부치지 뭐'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챙겨뒀던 짐을 들고 DHL로 갔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짐을 들고 가려니 너무 무거웠다. 아침부터 너무 지치긴 싫어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는 35페소(약 2000원)였는데 가격은 싸지만,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사기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DHL은 열려 있었다. 공간이 아주 작았다. 겨우 구색만 갖춰 놓은 시골 우체국 느낌? 직원도 1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그중에서도 South Korea로 택배를 보내는 건 아주 특수한 경우라 직원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결국 인터넷으로 어찌어찌 검색해서 영어로 된 원문 매뉴얼을 찾아보더니, 그 매뉴얼을 스페인어로 검색(구글 번역;)하고, 계속 여기저기 전화를 해가며 하나하나 묻는 것이었다. 나라마다 기준이나 제한 항목이 달라서 그렇다고 했다. 구글 검색으로 저렇게 대중없이 막 해도 되나 싶었는데 그 와중에 인터넷 속도는 우리나라 20년 전 수준이었다.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꽁꽁 포장해둔 기념품들까지 검사하느라 하나하나 다 뜯어버려서 기분도 좋지 않았다.
처리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동안, 내 뒤의 줄은 계속 늘어났다.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나중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나 때문에 다들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나간다고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얼마나 민폐란 말인가!
인내심이 바닥나고도 한참 뒤, 겨우겨우 마무리를 하고 나니 마지막에 요금이 나왔다.
두둥, 약 2000페소(!!!)
약 12만 원
정말 이대로 안 보낸다고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DHL이 이렇게 비싼지 모르고 갔던 것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리지만 않았었더라도 분명 안 보낸다고 했을 것이다. 멕시코에서 이 정도 단위의 돈을 써 본 적이 없어서 정말 충격이었다. 까다롭게 굴어서 뺀 물건도 많았는데 말이다.
특히 내가 꼭 보내려고 했던 무거운 것, 액체 등 금지당한 게 많아서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허용된 거라고 해봤자 책 몇 권에, 자기들이 풀고 다시 엄청나게 많이 포장해서 무게가 더 나가게 된 기념품 몇 개뿐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여행 자금을 훌러덩 날려버리고 줄 서 있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급 안 좋아졌다. 산크리스토발에서의 유일하게 나쁜 기억이다. 하.. 다시는 DHL을 이용하지 않아야지.
시간을 허비한 뒤 기분 전환이 필요해 바로 옆에 있는 성당에 올라갔다. 마음을 비워야 할 타이밍. 아래는 그 Iglesia del Cerrito 사진들.
제 마음을 다스릴 힘을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저는 무교입니다)
올라가는 길 계단에서 만난 염소. 넌 내 맘 모를 거야.
다 오르고 나니 제풀에 지쳐버림. 깃발은 무심히 나부끼고...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성당은 언제나 평화로움.
정갈치 못한 마음으로 올랐다가 잃어버린 평정심을 되찾고 내려왔다는, 그런 이야기.
노잣돈도 봇짐도 홀가분해졌다. 2000페소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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