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크리스토발에서의 평화로운 날, 긴장을 놓아버리니 몸도 마음도 늘어진다. Taxco에서는 손빨래를 하는 것조차 그렇게나 행복하더니,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빨래하기 귀찮다아) 그래, 오늘은 세탁소를 찾아가 볼까?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산크리스토발에서 길을 지나다니며 세탁소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주거 지역 느낌이라 그런지 다른 도시에서보다 유독 자주 눈에 띄었다. (다른 얘기지만 요가 클래스도 많이 보였다.) 견물생심(?)이라, 세탁소를 보니 빨래하기 싫은 마음이 생긴 것이리라!
이왕 가는 거, 옷과 수건 등등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한 모든 걸 챙겨서 가져갔다. 세탁소에서는 커다란 저울에 옷을 올리고 총무게에 따라 요금을 써준다. 나도 잔뜩 올리고서 무게를 쟀다. 그런데..
16페소?
1000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산크리스토발의 물가가 싼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싸다니.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 해서 재차 확인했는데, 진짜였다. 나중에 산크리스토발의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이 비현실적인 세탁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친구도 세탁소 물가가 너무 싸서 눈을 씻고 다시 봤다고 했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렇게 세탁비가 쌌다면, 나는 아마 세계 최고의 게으름뱅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또 왔어요.
산크리스토발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 정해놓고 계속 갔던 카페테리아. 지나가다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소박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번화가에서 약간 동떨어진 곳에 있어 붐비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큼직한 나무 테이블이 여러 개 있고, 바깥쪽으로 통하는 또 다른 문으로 나가면 이런 정원이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이렇게 조그만 야외 정원이 있는 까페떼리아가 많았는데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느낌이었다. 이곳은 좀 더 특이하게 여러 가게들이 이 정원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즉, 정원에서 다른 가게로 통할 수도 있었다. 그중 괜찮은 수제맥주집도 보여서 저녁때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가지는 못했다.
카페 정원과 수제맥주집 입구
사실 치아파스 주의 커피가 유명하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향 좋은 커피를 자주 마셨지만정작 그땐 그게 그냥 행복감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Frontera Artisan Food&Coffee
내가 여러 번 왔다 간 걸 사장님은 알았을까? 마지막 날엔 와하까에서 만난 친구도 이쪽으로 초대했다. 까페에서는 몇 가지 음식도 같이 팔았는데 우린 이날 둘 다 커피 1잔을 다 마신 뒤 커피와 음식을 추가로 주문하고 잔돈을 모두 팁으로 남겨놓고 나왔다.
사건의 전말인즉슨, 나는 먼저 당당하게(?) 커피를 클리어하고 지갑을 꺼내며 "나 한잔 더 시킬 건데?" 했더니 그녀 역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나도"를 선언(?)했고, 둘은 경쟁하듯 1인 1음식까지 추가했다. 와하까에서 시작된 먹방이 여기에까지 이어졌다. 정리하다 보니 혼자 온 날 지출은 30페소였는데, 마지막 날엔 여기서 120페소나 썼다. 잘 먹는 우리들 덕에 사장님만 횡재..?
'개뼈다귀' 빵?
산크리스토발에서는 신기하게도 빵집마다 개뼈다귀 모양의 빵을 팔았다. 호기심에 찍은 사진들.
당신들은 예술가예요
길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인디오 세뇨라, 산크리스토발은 이런 광경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길에서 무언가를 손수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도시였다. 멕시코에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는 화려한 곳들이 많지만, 어쩌면 말 없는 예술가들이 사는 곳은 산크리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Puebla 예술가의 거리 / Guanajuato 후아레즈 극장
비록 다른 곳처럼 잘 꾸며져 있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앉아 제 할 일을 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과묵한 예술가의 그것과 같았다. 뿌에블라, 과나후아또, 와하까 등이 다 예쁜 콜로니얼 도시였지만 산크리의 콜로니얼 거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를 짐짓 알 것만 같다.
ㅡ꾸밈없는 아름다움.
고향 멕시코시티를 뒤로 하고 이곳에 왔다는 친구, 소피아 역시 수제 액세서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녀의 깃털 귀걸이는 그녀가 직접 고른 재료로 직접 조합해 만든 것이었다. 다른 도시의 수공예 시장에서 천가방이나 파우치 같은 걸 보고 있을 때도, 멕시코 친구들은 늘 슬쩍 눈짓을 보내며 'Chiapas'로 가라고 했다.
소피아를 이끈 곳, 멕시코 친구들이 안내한 곳, 모든 것이 소실점처럼 이곳 산크리스토발로 모였다. 먼 도시의 큰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이런 모습의 인디오들의 손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ㅡ그 누구도 예술이라 부르지 않지만, 감히 그렇게 한번 불러보면 안 되나.
낡은 거리에서 아이들이 눈동자를 초롬히 빛내며 돈을 달라고 했다. 소피아는 그들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인디오 세뇨르는 말없이 손만 바빴다.
길 위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어느 별에 살고 있는 건가요. 살아가기 위해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