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tahaya로 맺어진 인연

Campeche#3

by 세라
그와의 인연은 Pitahaya라는 과일 하나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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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ahaya/ 멕시코의 열대과일(선인장 열매)




이 거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나는 깜페체의 콜로니얼 거리에 감탄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꾸만 멈춰서 사진을 찍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그들 중 한 명이 지나가다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도 여행자인 모양이었다. 그와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그도 나처럼 성벽 뒤편까지 걸어갔다가 시장을 보고 왔다고 했다. 시장에 별 거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별 거 없었다며, 대신 열대과일을 샀단다. 그는 멕시코 사람이지만 자기 지역에서는 없는 과일이라고 했다. "먹어볼래?" 하며 나에게도 두 개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Pitahaya(삐따야)라는 과일이었다. 그는 과일과 함께 자기에겐 이제 필요 없다는 깜페체 지도를 선물로 주고, 나를 앞질러 갔다.


그가 금방 떠나고 난 뒤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다 손에 받아 든 걸 바라보니 삐죽삐죽 신기하게 생긴, 처음 보는 과일이었다. 즙이 세어 나와서 진득했다. 나는 조금 더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특유의 멕시코풍으로 적당히 꾸며져 있는 이었다. 항상 시키는 시원한 하이까(Jamaica) 주스도 하나 시켰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앞에 놓인 과일들을 가리키며 어떻게 먹는지 아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엄청 친절하셨는데, 이때까지는 몰랐던 Pitahaya라는 과일의 이름도 알려주시고, 손수 잘라서 접시에 가져다주셨다. 이방인인 나에게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삐따야는 이렇게 반으로 자르고 숟가락으로 파먹는 거라고 가르쳐 주셨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쩔쩔 매고 있으니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기까지 했다. 아하, 그렇게 하는 거군요! 아주머니가 뿌듯하다는 듯 호쾌하게 웃었다. 길에서 우연히 받은 선물에 이런 환대까지, 깜페체에서의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혼자 삐따야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데 건너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남자가 이 모습이 재밌는지 나에게 웃어 보였다. 나도 응답의 표시로 어색한 미소를 날려주고는(?) 천천히 오후의 식사를 즐겼다.




배도 불러졌겠다, 다시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이제 목적지는 없었다. 해질녘까지 천천히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는 퍼레이드도 지나가고 있었는데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장례식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바닷가 산책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라, 아까 식당에서 나를 향해 웃어 보이던 그 남자였다. 그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나를 또 만나서 반가움에 말을 건 것이었다. 바다 위로는 천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삐따야 맛은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맛있었다고 대답하며, 길 가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준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게 자기라는 거다,


ㅡ그게 나잖아!

ㅡ에에? 아..? 응?!?!?!!!



잠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알고 보니 처음에 나에게 과일과 지도를 주고 간 그 남자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고, 그가 먼저 들어가 있던 식당에 우연히 나도 들어갔고, 삐따야를 먹고 있는 나를 향해 건너편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던 남자도 바로 그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아! 게다가 나한테 먹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그가 아주머니한테 말했던 것이었다.


나는 바보같이 진짜냐며 재차 물었다. 그리고 급 무안해져서 크게 웃어버렸다. 그도 이 상황이 웃긴 듯 같이 웃었다. 그의 폰에는 내가 찍은 거랑 거의 똑같은 삐따야 사진들이 있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아주머니가 잘라주셔서 먼저 먹었던 것이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맞춰 보며 또 킬킬 웃었다.



그제야 나는 건너편 남자의 미소의 의미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자기랑 똑같이 혼자 앉아서 이 삐따야 사진을 찍고 있었을 때 얼마나 웃겼을까. 내가 날렸던 어색한 미소는 또 어떻고. 식당에서 나온 뒤 나는 또 한 번 그가 있는 길 쪽으로 걸어갔고, 세 번이나 우연히 만난 것이다.



해가 마치 액체처럼 진하게 내려앉는 시간, 한바탕 에피소드를 겪고 난 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Abraham. 우리는 동갑이었다! 그는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는 직장인인데, 이번 주에 깜페체로 출장을 온 거라고 했다.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으니 그도 여행자가 되어 도시를 돌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깜페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세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것은 인연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세 개의 사건들이 합쳐지며 하나의 반전 스토리가 탄생하던 그때, 드넓은 바다 위를 물들이던 노을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우리는 한참 떠들다가도 노을 사진을 찍을 땐 조용해졌다. 고작 두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온 세상이 침묵하는 듯했다. 오전에 피곤할 땐 몰라봤던 깜페체 바다의 진가를, 그리고 그도, 비로소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세상의 주인은 땅이 아니라 바다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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