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한쪽에서는 뚫으려 하고 한쪽에서는 지키려 했던 바로 그 요새의 자리에서, 나는 떠돌이 여행자가 되어 신기루 같은 밤들을 만끽했다. 낭만을 조용히 숨기고 있는 이 도시에서 한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성벽 위에 비치던 영화들처럼, 나에게도 많은 단편영화 같은 순간들이 스쳐 지났다. 깜페체에서 머무는 동안 아브라암과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긴 밤에 갑작스레 화살이 관통하듯, 헤어져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일요일 밤이었다. 다음 날이면 아브라암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른 도시로 떠난다. 우리는 수없이 왔었던 Calle 59로 돌아왔다. 깜페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이자, 외부 세계(바다)와 내부 세계(땅)를 연결하는 자리에 있는 상징적인 거리다. 이곳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동안 아브라암은 나의 스마트폰 노트에 마지막 편지를 써 주었다.
Lyla(나의 영어 이름), 널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너와 함께한 깜페체의 오후들을 잊지 못할 거야… 헤어져야 해서 정말 아쉽지만 언젠가 멕시코시티(아브라암의 고향)에 돌아오면 꼭 연락해… 추신. 글씨가 엉망이어서 미안. 근데 이런 디지털 펜은 오늘 처음 써 봤다구!
@Calle 59, Campeche
다음날 아침, Calle 59. 밤새 버스를 타고 깜페체에 내렸을 때 무력함을 느꼈던 이 거리에, 나는 이제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며 서 있다. 아브라암은 월요일이 되어 업무를 시작했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조용한 아침이다. 버스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파스텔컬러의 콜로니얼 거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사진을 볼 때마다 깜페체의 컬러와 향기를 생생하게 음미할 수 있도록.
이제 내 기억 속에는 보이지 않는 깜페체의 이야기들이 선명하다. 바다 위에 사각사각 내려앉던 노을의 컬러도, 어두운 성벽에 빛으로만 존재하던 이야기들도.
왠지 깜페체의 은밀한 낭만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든다. 아쉬움도, 즐거움도 속으로 비밀스럽게 갈무리하고……
이제 나도 떠나야 할 시간. 나에게서 아브라암에게서 나날이 아름답게 기억될 59번 거리여, 깜페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