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eche#8
#이전 이야기에 이어서
바닷가
레스토랑
아브라암과 함께 요새 El Fuerte de San Miguel을 둘러보고 난 뒤, 다시 깜페체로 걸어서 돌아왔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가 레스토랑을 한 군데 봐 두었다고 했다. 오늘 하루 아브라암은 동행이자 든든한 가이드였다.
아브라암이 가자고 한 레스토랑은 요새와 깜페체의 딱 중간쯤에 있었는데, 올 때 버스를 타고 온 만큼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우리는 배고픔이라는 동력과 밥이라는 공동목표를 안고 열심히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유명한 곳인지 애매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많았다. 우리는 지난밤 함께 맥주 5종류를 한 번에 주문하며 서로 먹방 실력을 확인한 것(!)에 이어, 여기서도 음식을 잔뜩 시켰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따뜻한 음료가 기억에 남는데, 새우를 그대로 갈아놓은 듯한 맛과 질감이 정말 신기하고 맛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우리는 순식간에 접시를 비워버렸다. 그는 멕시코에선 배부를 때 이걸로 마무리한다며 또 다른 어떤 메뉴 2개를 시켰고, 나도 후식을 먹고 나면 후식의 후식을 먹는다며 대응(?)했고, 우리는 끝없는 후식의 도돌이표를 주고받으며 신나게 먹고 또 먹었다.
깜페체 바다의
노을
실컷 먹고 나니 어느덧 해질녘, 아브라암과 두 번째로 함께 보는 노을이었다. 레스토랑 근처 바닷가로 나와 걷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ㅡ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
끝없이 펼쳐진 깜페체의 바다 위로 온 도시를 뜨겁게 달구던 거대한 해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깜페체 도심까지 걸어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브라암에게 노을에 관한 스페인어 단어들을 배우기도 했다. 해질녘 바닷가를 걸으며 거북이며 돌멩이며, 컬러에 관한 새로운 말들을 배우는 것. 이런 평화로운 오후야말로 그동안 꿈꿔온 일인지도 모른다.
#해질녘 배운 말들
아브라암과 보낸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함께 바다 위의 노을을 바라봤던 것은 특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걷고 또 걸어 깜페체에 다 도착했을 때, 옅은 노을이 실구름 사이로 떠 있던 순간까지도, 우리는 얼마나 미련이 가득했던지. 우리는 해가 바다 저 아래로 완전히 녹아버릴 때까지 기다리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바닷가에 한참을 서 있었다.
깜페체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빛이 사각사각 쌓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막 다녀왔을 때쯤 나는 한창 일러스트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때 즉흥적으로 이런 습작을 남겨놓았다.
깜페체만의
빛 축제
도심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사실 아브라암과의 여행은 예정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기 위해선 누군가가 계속 제안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만남들은 끈질긴 우연처럼 계속 이어졌다.
첫날과 둘째 날 오후까지는 아브라암이 깜페체의 이곳저곳을 데려가 준 덕분에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사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생각해 둔 게 야간 빛 축제를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아브라암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만났다.
ㅡEstaría genial (완전 멋질 거야)
ㅡ¡Vamos! (가자!)
빛 축제는 깜페체의 메인 광장에서 열린다. 밤이 되면 광장의 한쪽 변에 위치한 Palacio Municipal(시청)은 대형 스크린으로 변신하고, 이 위에 도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화려한 빛으로 펼쳐진다.
*Campeche Sound and light show / 매주 목금토일, 밤 8시
'Sound and light show'라고 부르는 이 쇼는 깜페체만의 독특한 매력을 압축적으로 발산한다. 거대한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에는 깜페체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종교 등 이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들이 총집결되어 있다. 내 두 발로 걸어 다녔던 파스텔컬러의 콜로니얼 거리들이 거대한 크기로 투영될 때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유적지들을 둘러보며 알게 됐던 해적과의 전쟁 역사도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너무나 멋진 이벤트였다. 시퀀스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유카탄 반도의 조그마한 도시에 이토록 아름다운 문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사실 숙소가 굉장히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너무 바트게 나오다 보니, 도착하자마자 아브라암을 찾을 것도 없이 쇼가 시작해 버렸다. 순간 그를 찾는 것을 잊어버리고 영상이 다 끝날 때까지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대충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러놓고 눈과 귀로 축제를 즐겼다. 다 끝나고 나서 광장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재회했다.
#Campeche sound and light show 영상
깜페체는
거대한 영화관
깜페체의 밤은 화려했다. 어둠이 잦아들면 이 작은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성벽은 스크린이 되었다.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영화관 같았다. 어젯밤엔 깜페체 영화제가, 오늘 밤엔 빛 축제가 깜페체의 성벽들을 물들였다. 아브라암과 함께 걸어가다 보니 또 다른 성벽의 한편에서 4:3의 아담한 스크린이 비춰지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실제 사람이 등장해서 연극처럼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나중에 이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는 깜페체의 매력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어느 도시보다 진한 깜페체만의 컬러가, 이곳의 바다내음처럼 물씬 풍겼다. 수많은 이벤트들이 쉴 틈 없이 튀어나와 우리를 이끌었다. 깜페체 나라의 마법 같았다.
선선한 저녁에 아브라암과 다시 만났을 때는 와하까에서 샀던 멕시코 의상을 입고 나왔다. 아브라암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외에도 우린 밤바다를 걸으며 여러 바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음악 분수가 있는 광장도 거닐었다.
#깜페체 야경과 바 이야기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깜페체의 밤. 폐쇄적인 이 도시의 강력한 어둠이 이곳을 은밀한 빛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걸까. 성벽 위의 스크린들처럼 의식 속에서 이미지만 총총 남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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