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미워했다

by 세라


왜 그랬을까. 한 도시, 멕시코시티를 미워했다.


누군가의 진심을 매몰차게 거절하듯 그저 아무 이유가 없었다. 내가 못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멕시코시티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유 없이 '널 싫어할 거야'라고 딱 정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이제 내 힘으로 그 결정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아픈 몸으로도 멕시코시티라는 도시에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매정하게 떠났다.




도착한 날의

기록



사실 멕시코시티의 모든 일정을 도착한 첫날에 바쁘게 몰아넣은 것은 둘째 날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첫날 많은 계획을 잡은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12시경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날 밤이 될 때까지 3명의 친구를 만났다. 고맙게도 친구 Emma의 언니 Anabel이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매우 가까운 한 병원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너무 똑같이 생겨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Anabel은 환전과 칩 구매, 우버 택시를 부르는 것까지 일사불란하게 도와주고, 나와 짧은 시간을 보낸 뒤 오후 출근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우버는 칩을 바꾸면 자꾸 인증 문제가 생겨 쓸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도 시도해 봤지만 역시 실패였다.)


센뜨로의 숙소 근처에서는 지난번 과나후아또에서 사귀었던 친구 Elsa를 만났다. 최악의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2년 만의 재회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내가 멕시코로 또 오게 될지, 연락이 끊기지 않고 이어질지, 모두 알 수 없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 모든 가능성을 뚫고 다시 만났다. Elsa는 2년 사이에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동안 일로 바빠 오히려 스페인어 실력이 쇠퇴한 나였지만 그녀는 언제나처럼 잘 이끌어주고, 가르쳐 주었다.


@내 친구 Elsa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 Biblioteca Vasconcelos를 방문했는데, 바로 고개만 돌리면 도서관이 있는 자리에서 잡화상에게 길을 묻다가 그 사실을 깨닫고 길 위에서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엘사가 찍어준 나


대도시 기피증으로 인해 멕시코시티에서 별로 크게 가보고 싶은 곳이 없어 고민 끝에 고른 곳이었는데, 이곳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실내 도서관의 정숙한 분위기와 뻥 뚫린 공간에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한 끝없는 책장들. 마치 영화 세트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누군가 '컷!' 하면 다시 원래대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고 책들이 중력을 따라 무너져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도서관이기도 하다.) 맨 위층에서는 테이블에 모여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글이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대놓고 보고 있다가 그들이 말을 걸어서 잠시 회화 연습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가기 전 폰카메라만 허락된다다는 글을 봤지만, 가서 물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Lizbeth라는 친구였다. 그녀는 화학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친한 친구에게 숙박 정보를 물어보다 소개받아 알게 된 친구다. 밤이 될 때까지 나는 비행기에서 많이 먹어 배부르다며 한입도 먹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동안은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듯 제정신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거의 3일째 깨어있는 상태였다. Lizbeth는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처럼 대화가 잘 통해 헤어짐이 많이 아쉬웠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비 그친 뒤 화려한 센뜨로의 밤거리를 함께 걸었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틴 하루였다. 비는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찢어놓을 것처럼 어찌나 거세게 내리던지, 운동화는 물론이고 온몸이 다 젖고 말았다. 몸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이제 마음만 내려놓으면 바로 아프게 될 것을 직감하는 아슬한 밤,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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