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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과의 하루

#Mexicocity

by 세라

박물관에서 만난 친구


Coyoacán의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둘은 동시에 현실로 소환되기라도 한 듯 서로를 인지했다. 그 넓은 공간에 둘밖에 없었으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크리스티안이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와 나는 비슷한 점이 꽤 많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박물관에서 만난 것이 우연이었다면, 그런 만큼 우리의 취향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었다.



그는 Oaxaca(와하까)가 고향인데, 지금은 도시를 왔다갔다 하며 사진 관련 일을 한다고 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일부러 이 박물관에 찾아온 것이었다. 나 또한 비슷한 직업군으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우리는 함께 사진 작품들을 보면서 서로의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멕시코 전통문화에 관련된 섹션에서는 현지인인 크리스티안이 설명해 주기도 했다.


커피 좋아해?


박물관에서 친구가 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나왔다. 크리스티안은 나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고 그를 따라 가까운 까페떼리아에서 저렴한 커피를 한잔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멕시코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들은 늘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직업과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보수도 적고 일도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그 역시 말한다.


Estoy feliz (나는 행복해)


배고픈 예술조차 그들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는구나.

그들의 마음을 닮고 싶다.

그들의 말을 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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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찾아줘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함께 Hidalgo 쪽으로 넘어왔다. 크리스티안은 내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전날 밤 사진으로 본 야경을 보여주었다. "여기 가고 싶어!"


사진 속의 장소는 La plaza de revolución 였다. 나는 스스로의 방향 감각에 대한 신뢰가 0으로 수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구석에 최후의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 건지(..) 크리스티안과 지도를 보며 광장을 찾아가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봐도 그가 안내하는 방향이 영 아닌 것이었다! 나는 확신에 차서 가는 길 내내 우겼다.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맞아, 여기서 엄청 가까워. 날 믿어!


우리는 이 대화를 반복하며(?) 광장에 찾아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정말 내 호스텔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크리스티안.. 미안해 ㅋㅋ



내가 사진에서 본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크리스티안은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혹시 여기서 가까운데 괜찮은 식당이 있는 곳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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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띠야 하나만 주세


광장에서 만난 한 사람이 우리를 식당이 모여 있는 길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동행하며 안내해 주길래 정말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는 팁을 요구했다. 나는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의외였던 것은 크리스티안의 반응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약간의 팁을 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냥 그들이 하는 '일'이야



여행 서적이나 인터넷에 알려진 곳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인데, 현지인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보통 이런 분위기의 밥집이 많았다. 50페소 내외의 Menú del día(오늘의 메뉴)를 주문하면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만족스러운 코스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주 밥을 한 그릇 추가해서 먹었다. 위의 사진처럼 접시에 나오곤 하던 밥의 양은 나에게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에겐 항상 고기가 메인이었지만, 나는 반대였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그리고 멕시코 어디에서든, 어떤 메뉴를 고르든, 우리의 밑반찬처럼 무제한으로 따라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또르띠야(Tortilla).


그런데 우리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인지는 몰라도, 자꾸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또르띠야 하나만 주세요


자꾸 대화의 흐름을 끊기도 하고, 식사 중에 좀 불쾌하기도 했다. 그런데 크리스티안은 다시 한번 나의 편견을 자각하게 했다.


그는 별로 그들이 불결하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정말 손으로 또르띠야를 찢어서 주기도 했다. 나중에 자꾸 왔을 때는 거절하며 돌려보내기도 했지만, 그 순간의 태도는 우리의 일반적인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Perdón, hermano
(=Sorry, brother)


사실 생각해 보면 또르띠야 하나를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티안이 멕시코 사람들 중 특별히 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하나 더 달라고 하면 그만이었고, 아무도 그런 걸로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쉽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나는 오만과 편견을 상식과 교양으로 생각해 왔던 걸까?



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근처의 자그마한 바로 이동했다. 크리스티안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와의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지도, 예단하지도 않았다. 그의 태도를 보며, 굳은살처럼 무감각해진 나의 위선을 한 꺼풀 벗겨낸 느낌이었다.


왠지 생각이 많아지는 동안, 서서히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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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밤


우리가 앉아 있던 바에서는 광장의 뒤편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에, 해가 지는 내내 빛이 어둠으로 반전되어 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광장은 크게 화려한 곳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친구와 맥주 한 잔, 소소한 대화와 기다림의 배경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저기 물줄기 사이로 뛰어가 볼래?

-그래. 근데 니가 먼저.

-음.. 아니, 니가 먼저.

-아냐, 니가 먼저.

-니가 먼저.


광장의 분수는 색색으로 물든 물보라를 흩뿌리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서로 먼저 들어가기를 권유(?)하며, 오래된 친구처럼 장난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와의 시간 덕분이었을까. 문득 정말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온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직 멕시코에서의 시간이 남아 있었던 나는 그의 고향인 Oaxaca에도 갈 생각이었다. 크리스티안도 한나절 동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짐을 무척 아쉬워했다. 나는 Oaxaca에 갈 때 연락하겠노라 약속했다.


작은 말과 행동들로 내게 또 다른 '멕시코'의 모습을 보여 준 크리스티안. 고마워,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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