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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요아깐 박물관 산책

#Coyoacan 디에고 리베라&프리다 칼로

by 세라

멕시코시티의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 엄청난 크기의 벽화 앞에 같은 크기로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이 적혀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을 다녀온 뒤, 프리다 칼로의 파란 집에 가보고 싶졌다. '코끼리와 비둘기'라고 불릴 만큼 안 어울리는 둘이었지만, 몸집 큰 디에고를 '나의 아기(mi bebé)'라고 불렀다는 프리다 칼로. 그녀의 박물관이 있는 Coyoacán 지역이 지하철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마침 좋은 기회였다.


민중 벽화의 3대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들은 멕시코 어느 지역을 가든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나는 왠지 엄청난 바람둥이 디에고 리베라보다 프리다 칼로가 더 끌렸다.



그리하여 도착한 파란 집 Casa azul, 프리다 칼로의 생가다!


길을 자주 잃어서 고생했던 바 '하루에 한 군데만 가자'는 여행 지침을 세웠는데, 이날의 목적지가 바로 Coyoacán이었다. 지하철 타는 것쯤이야 이제, 하며 폰에 구글 지도를 장착하고 자신만만하게 도착한 나는, 룰루랄라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며 바깥 빛을 보기도 전에 폰을 깨뜨리고 만다.(..ㅜㅜ)


프리다 칼로 박물관은 지하철역에서 꽤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는데, 폰이 깨짐과 동시에 갑자기 예정에 없던 비가 내렸다. 아아.. 나의 불운은 어디까지인가! 믿었던 구글 지도를 너무도 어이없게 잃어버린 나는 다시 십자길 위를 헤매며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또 물었다. 군데군데 표지판이 있긴 했지만 양치기 소년이 돼버린 나의 몹쓸 방향 감각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것이 자유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언젠가 돌이켜 봤을 때 고생도 추억이 되리라 세뇌(?)해 가며 박물관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가 그쳤다. (부들부들..)



프리다 칼로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촬영료를 내면 가능한데, 입장료가 꽤 비싸서 그냥 눈으로만 담기로 했다. 사실은 첫번째 전시실에서 그림을 둘러볼 때만 해도 다들 사진을 찍고 있길래 가능한 줄 알았는데, 나중이 돼서야 느긋하게 나타난 직원이 우리 모두를 제한했다.


프리다와 디에고, 이 집에 살다 1929-1954


프리다는 언제나 삶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았던 것 같다. 열렬했고, 절망적이었고, 가장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며, 동시에 누구보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삶을 살았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녀의 작품들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프리다의 또 다른 자아였다.



사람들은 프리다 칼로를 '초현실주의자'라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이 초현실주의자로 여겨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생전에 "나의 꿈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현실을 그린 것"이라고 말하며 세간의 평을 일축했다. -이것은 예전에 스페인어 공부를 하다 읽은 것이었는데, 생가를 둘러보며 그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작품들은 확실히 형식과 이성을 초월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의도적 실험이나 몽상이 아니었음은, 치열했던 그녀의 삶을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사고를 당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조차 그녀의 아버지가 침대 천장에 달아 준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거울 달린 침대를 '직접' 봤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삶은 진정 죽음보다 가혹했다. 부서진 육체, 사랑하는 남편의 외도, 계속된 유산과 불임...


¡Viva la vida!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다가 보여준 사랑, 열정, 갈망, 정열, 예술혼은 가히 '초현실'적이다. 아마도, 그녀 자신에게 초현실주의라는 평가가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초인적인 의지로 이미 현실을 초월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초현실이 즉, 현실이었으므로.





Coyoacán


여기부터는 덤으로 꼬요아깐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프리다 칼로 박물관 관람 후 (불운으로부터) 평온해진 마음으로 나와보니, 비가 그친 꼬요아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주택과 초록의 가로수가 우거진 분위기 좋은 동네였다. 청담동 가로수길 같기도 하고, 삼청동 같기도 하고..



Tostadas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꼬요아깐 시장이 나온다. 시장에서 한 쾌활한 호객꾼에게 넘어가 점심으로 Tostada를 사 먹었다. 사진에서 보이듯 종류가 굉장히 많고, 가격은 3~40페소. 딱 멕시코스러운 간식으로 취향대로 골라서 먹을 수 있으니 추천할 만하다!

먹고 있는데 옆 가게에 있던 어떤 일본인 할아버지가 신이 나셨는지 계속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또스따다를 들고 포즈를 취해드렸더니 엄청 좋아하셨다. 오지랖 넓은 한국 아저씨 같아서 왠지 친근했다.

시장 근처의 길에는 저렴한 기념품들 말고도, 보면 절로 갖고 싶게 만드는 수제 공예품을 파는 고급스러운 가게들도 많았다. 그런데 퀄리티만큼 가격도 비싸서 아쉬운 대로 구경만 했다. 대신 졸고 있는 액세서리 가판대 아저씨를 깨워 멕시코 대표 컬러들로 만들어진 10페소짜리 팔찌를 사고 행복 충전!



Zócalo


꼬요아깐의 중심가. 노란 건물 안에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서 지도를 얻었다. 이미 비도 맞고 길도 헤매고 프리다 칼로 박물관도 다 본 뒤였긴 했지만.

이 근처에 분위기 좋은 까페 겸 바가 많이 있었고, 꼬요아깐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Foro Cultural Coyoacanense “Hugo Argüelles”


지도를 받은 뒤에는 아무 박물관이나 가보자는 생각으로 지도에서 랜덤으로 찍어서 몇 군데 가 보았다. 꼬요아깐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많았다. Casa azul 다음으로 들린 이곳은 연극, 독립 예술,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이 있는 곳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쉬는 날이었다. 들린 김에 정원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조용하고 예쁜 정원은 작은 공원 같았다. 앉아서 가만히 보니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산책 나온 동네 주민들이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아주머니, 여유를 만끽 중인 커플, 도시락을 싸온 할머니..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내게 싱긋 미소를 보여주셨다. 휴관일에도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마을의 쉼터로 이용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Museo Nacional de Culturas Populares


이곳은 사진, 역사, 음악, 의상 등 멕시코 전통문화&대중문화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었는데 입장료가 단 14페소(8~900원)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제별로 널찍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아주 볼 만했다. 넓은 박물관에 나 혼자 밖에 없어 왠지 생경한 기분이었다. 특히 악기와 음악에 관련된 전시공간이 너무 좋았다. 멕시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 장르들과 간단한 코멘트, 악기의 역사, CD 앨범 재킷들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인테리어가 '아코디언'의 형상을 본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소 악기 연주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토기 그릇이나 동물 뼈 같은 전시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처음엔 작아 보이는 박물관이었는데, 뒤쪽 건물에 숨어 있는 전시실들이 계속 이어졌다. 더구나 혼자 있으니, 나만 아는 숲 속의 비밀 아지트 같았다. 아코디언, 오선지 등 디테일한 공간 디자인들이 감상의 즐거움을 더했다. 보라색으로 꾸며진 벽 역시 디자인이 돋보였다. 계획 없이 아무 박물관이나 골라서 온 것 치고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찍어 온 사진은 음악 관련이 대다수지만 멕시코 의상·축제·전통 의식 등 다양한 주제가 있었다.


아티스트와 악기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는 찰나.. 엇? 고요한 이 공간을 홀로 만끽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또 한 명의 멕시코 친구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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