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는 내가 께레따로(Querétaro)에서 지낼 때 묵었던 집에 살던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낯도 안 가리는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인간을 더 낯가리게 만드는 냥이라니, 너 참 낯설다. 개는 귀엽지만 무섭고 냥이는 귀엽지만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 언제나 허둥대던 나는, '엘라'라는 멕시코 고양이 녀석에게 홀라당 리드당하고 말았다.
Querétaro, México. 아마도 계속 등장할 테지만, 내가 가 본 수많은 멕시코 도시들 중 세 손가락 안에, 이번 여행에선 단연 한 손가락에 꼽는 곳이다. 내가 께레따로를 사랑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엘라'일 것이다. 대충대충 도시 동선만 정해놓은 성긴 계획까지도 감기몸살 때문에 다 꼬여버리고 가까스로 께레따로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여행의 의지를 잃어 있었다. 벌써 여행의 절반이 지나버렸고, 그나마 반 정도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되나 생각을 하는 와중에 식욕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나는 아침 일찍 께레따로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뒤져 라면을 찾아냈다.
혼자 이리저리 부엌을 구경하며 생수를 따르고 서투르게 라이터로 가스불을 켜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동안에도, 엘라는 집주인이 나간 뒤에도 남아있는 내가 신기한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가 뭘 하는지 지켜봤다. 감시하기라도 하는 거냐?, 그래 뭐, 네가 주인이고 내가 손님이긴 하지. 너 이 녀석,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생수가 어디에 있는지 가스불 켜는 라이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엘라는 내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해가며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혼자서 라면을 끓여내고야 마는 과정을 그저 말똥말똥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줄곧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엘라는 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도, 소파에 앉아 있을 때도, 방에 들어갈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자꾸만 따라왔다. 처음엔 그런 녀석이 너무 귀여워 주인이 없는 동안 혼자서 심심했나 보구나 하며 얼굴이며 등을 쓰담쓰담해 줬는데, 엘라는 '훗, 또 한놈 낚았군'이라는 표정으로 엄청난 털을 뿜뿜 뿜어냈다. 나는 옷이며 물건이며 온갖 것을 엘라의 털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라면만은 안될 말이었다! 나는 두 개 중 하나인 소중한 라면을 끓이며 틈틈이 녀석이 내 라면을 훼방 놓지 않도록 체크했다.
라면을 끓이다 문득 기습적으로 휙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엘라 녀석! 내 태블릿을 만지다가 딱 걸렸다. 안 돼, 야, 저리로 가, 그건 내가 몇 달간 최저가를 뒤지고 뒤져 인터넷 면세점에서 품절 대기를 기다려 두 번 실패한 끝에 5개월 할부로 구매한 새 기계라고!
엘라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작을 멈추고 '뜨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엘라야, 아무리 귀여워도 그건 안된다, 그러면서도 또 엘라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며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라면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지켜 냈다. 그리고 즉시 엘라 녀석 따윈 잊고 부엌 바에 앉아 호호 불어가며 라면을 먹었다. 너무 오랫동안 굶은 탓에 라면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온몸에 열이 끓는 동안 그렇게나 좋아하던 타코가 단 한입도 안 들어가 서러웠던 마음을 완전히 씻어내리는 맛이었다.
잠시 라면에 정신을 잃었다가 엘라가 뭘 하고 있나 바라보니 내 옆에서 이렇게 늘어져 있었다. 엘라의 입장에서 보면 웬 낯선 동양인이 나타나 낯선 언어로 혼자 구시렁거리며 낯선 냄새가 나는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퍽 경계를 했을 법도 한데, 너란 고양이 어쩜 그렇게 태평한 것이냐. 엘라는 저렇게 배를 까고 무아지경으로 누워 있다가도 한순간 의자 위로 폴짝 뛰어올라 나를 놀래켰다.
폴짝 뛰어오른 엘라만큼이나 날렵하게 라면을 지켜낸 나는 다시 냄비를 들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나는 라면 국물이 몹시 고팠다. 하지만 이 집에 처음 온 손님 주제에 엘라의 사각지대를 찾는다는 건 턱도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한번 이동하는 것은 오히려 엘라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달각달각 후룩후룩 라면을 먹고 있으니 다시 스멀스멀 엘라가 올라왔다.
처음엔 옆 의자에서 슬쩍 내가 앉아있는 의자로 넘어오더니 유연하게 내 허리 뒤쪽으로 갔다가 내 오른쪽, 앞쪽, 다시 오른쪽, 왼쪽, 나중엔 대놓고 팔걸이 위까지 올라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라면과 엘라 사이에서 극심하게 고민하며 라면을 먹다가 홀린 듯이 엘라 사진을 찍다가, 녀석이 라면 앞까지 다가가면 소스라쳐 하며 라면을 지켜내는 일을 반복했다. 엘라는 내가 정말 이상한 인간이라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인간이 자기 때문에 '라면이냐, 고양이냐. 당연히 라면이다. 근데 엘라는 너무 귀엽잖아.' 하며 아무 의미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것도 모르고.
이후로도 엘라는 내가 가는 어느 곳이든 따라왔다. 나는 귀찮아하면서도 내심 좋았던 것 같다. 엘라도 외로웠겠지,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은 내가 더 외로웠던 것이리라. 멕시코까지 와서 혼자 끙끙 앓으며 나는 얼마나 와웅와웅 울고 싶었겠는가. 고양이 엘라, 너보다 내가 더.
나중의 이야기지만 께레따로라는 도시에 푹 빠진 나는 여행의 막바지에 다시 께레따로로 돌아왔다. 이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또 오려고 했는데, 여행을 간다며 마지막날 나와 함께 집을 나선 집주인이 아직도 여행 중이었는지 예약창이 닫혀 있었다. 결국 다른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께레따로로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에는 아마 고양이 엘라의 지분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귀엽다고 백번을 말해도 모자란 녀석,
엘라, 넌 참 이름도 예쁘구나, 보고 싶다, 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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