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작은 책방이었다-2

#께레따로에서 만난 친구

by 세라


지오반니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그는 작은 예술가 같았다. 내가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그는 소리를 녹음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시간 여행에서 만난 과거의 사람 같았다. 동시대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래서 더 꿈속 같았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먼 곳에 온 걸까, 그게 아니면 이곳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먼 곳일까. 께레따로의 밤은 환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슥한 골목들을 우리는 얼마나 걸었던가. 많은 대화들이 길 위에서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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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만남


께레따로에 머무르기로 한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은 좋은 기억이 많은 이 도시 안에서 천천히 쉬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 가지 않고 예쁜 골목들을 걸어 다니다 지치면 발걸음 닿는 곳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이 즈음 감기로 바닥났던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날은 머무는 곳마다 유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팡팡 터진 날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모든 곳이 완벽할 정도로 좋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써야겠다.



그러니까, 나열만 하기에도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 지오반니와의 4번째 만남이 성사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또 다른 우연이 제비처럼 찾아든 곳은 께레따로에서 가장 자주 갔던 정원, Jardín Zenea였다. 날이 저물 무렵, 나는 저녁을 먹고 정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남자애 두 명이 속닥거리면서 나를 넘성넘성 보는 게 보였다. 그중 한 아이가 먼저 수줍게 다가와 여행중이냐며 말을 걸어왔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 같았다.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정원 한쪽에서 내쪽으로 걸어오던 지오반니와 딱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맨날 보는 동네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했고, 옆에 있던 아이도 원래 내 친구였던 것처럼 인사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꾸 친구들이 생기니 왠지 나도 여기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ㅡ안녕! 뭐 하고 있었어?

ㅡ엇, 안녕! 얘네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만나기로 약속하기로 한 날엔 장장 나타나지 않고 복장을 태우더니, 약속하지도 않은 날 정확한 타이밍에 만나는 것은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것으로 네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까지 쭉 함께 보내게 되었다. 타이밍이란 참 신기하다. 이날 이 시간에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길게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Los arcos de Querétaro


우리는 이날, 께레따로의 모든 숨겨진 골목을 정복하려는 듯 새벽까지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Centro에서 Los arcos(수로)까지 걸어갔고, 지오는 Los arcos에 얽힌 마을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경을 배경으로 처음으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엔 Santa Cruz 성당 앞에서 장사를 끝내려고 정리하는 빵장수에게 부탁해 빵을 사주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파는 빵이니 꼭 맛보고 가야 한다고 했다.



지오가 사준 빵은 다음날 새벽 버스 안에서 먹었다. 연두색 빵에서는 달콤한 멜론 맛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골목이야"


푸릇한 밤공기가 흐르는 야트막한 길을 지날 때, 그는 여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골목이라고 소개했다. 아슴하기만 하던 골목이 문득 그로 인해 특별해졌다. 사진을 한 장 남기려는데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고, 카메라는 그 순간을 포착해냈다. "Perfecto(완벽해)", 그가 말했다.


예고 없이 나타나 포착된 완벽한 순간들. 이제 나는 께레따로에 특별한 친구가 있다고, 그 덕분에 께레따로의 골목 마스터가 되었다고, 말하고 다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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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만남


우리에게 또 한 번의 만남을 허락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불운이었다. 여행의 절반을 독감 속에서 헤매다가 께레따로에서 평안한 날을 맞았을 때는 이제야 좀 여행이 풀리기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른 판단이었다. 시련은 아직 좀 더 남아 있었다.



그와의 네 번째로 만난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새벽 첫차를 타고 Querétaro를 떠나 Cedral을 지나 Real de Catorce에 갔고, Monterrey에 갔고,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 Veracruz, Coatepec, Xico에 짧게 머물렀으며, 계획을 수없이 번복하다 Puebla를 지나 Morelia까지 갔지만 정확히 8일 만에 께레따로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열한 도시들은 절대 7일 동안 다닐 수 있을 만큼 동선이 좋은 곳도 아니고 심지어 마지막에 갔던 Morelia는 처음 떠난 Querétaro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멀리 비행기까지 타고 돌아갔다 온 것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와 께레따로의 익숙한 지붕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안정감을 느꼈을지는 짐작이 될 것이다. 믿었다 속기를 반복하며 얼마나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었는지. 짧은 여행에서조차 특별한 장소에 마음을 주고, 힘든 순간마다 떠올리며 돌아가려 하는 것은, 언제나 떠나고 싶어 하는 자의 섧은 속마음 같은 것일까.



다사다난했던 일정 끝에 께레따로로 돌아온 날, 지오반니에게 연락했더니 놀라며 반겨주었다. 우리는 그의 일이 끝나는 대로 늘 만나던 Jardín Zenea에서 다시 만났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동안의 내 여행 이야기를 했다. 그는 길처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튀김과자 같이 생긴 걸 먹어봤냐며 Buñuelo라는 간식을 사 주기도 했다. Buñuelo는 튀긴 또르띠야를 카라멜 맛 비슷한 끈적끈적한 소스에 푹 적셔서 손으로 먹는 것이었는데 무척 달았다.


@Los buñuelos


지오는 이런 소소한 길거리 음식을 잘 사주곤 했다. 우리는 대부분 걸어다니면서 놀았기 때문에, 잊을만하면 이런 달달한 간식을 파는 포차들이 자꾸 나타났다. 그가 한국에 온다면 나도 그에게 떡볶이도 사주고 닭꼬치도 사 주고 싶을 것이다. 오뎅이나 호떡, 김밥도 한 번쯤 맛보게 해주고 싶겠지. 그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지오반니의 아빠를 마주쳤던 거리


이날은 길을 걷다 우연히 그의 아빠까지 마주쳤다. 그는 아빠와 원래 거기서 만나기로 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더니, 기승전결도 없이 갑자기 헤어지는 쿨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나를 친구라고 소개했고, 나는 지오가 아빠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길고 희끄무레한 머리카락을 뒤로 단정하게 묶어, 좀 더 연륜 있는 히피 스타일의 예술가처럼 보였다. 둘 다 전형적인 멕시코 사람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이름 Giovanni도 특이했다. 그는 부모님이 물려준 이름이라고 했다. 발음도 스페인어식 발음으로 읽지 않고 그대로 '지오반니'라고 발음했다.


해가 진 뒤 우리는 어쩌다 중식당 비슷한 곳에 들어갔다. 새우 볶음밥+볶음면 같은 게 나왔다. 가끔 멕시코에서 아시안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젓가락과 포크 중 뭘 할 거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나는 당연히 젓가락을 달라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대부분 당연히 포크를 선택한다. 이곳에서도 그랬다. 마치 드디어 아시안 요리의 주인이 나타난 듯 내가 능수능란하게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안, 지오반니가 나를 낯설게 쳐다봤다.



께레따로의 밤은 늘 추웠다. 일교차가 커서 낮엔 햇빛을 막을 것, 밤엔 추위를 막을 것을 챙겨 다녀야 했다. 하지만 밤의 온도는 늘 내가 대비한 것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 이날 밤엔 굵은 빗줄기까지 내렸다. 내가 너무 추워하자 그는 겹겹이 입은 옷 중 하나를 벗어 나에게 빌려주었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감기를 옮았었다고 했다. 내가 께레따로를 비운 약 일주일간 앓다가 나았고, 빨리 낫게 하려고 차를 아주 많이 마셨다고 했다. 내가 혼자 일주일을 누워있다가 약국 약을 먹어가며 회복하기까지 2주 넘게 걸렸던 것에 비하면, 훨씬 빠른 회복이었다.



음식을 나눠 먹은 적도 없는데, 진짜 나에게서 옮겨 간 바이러스였을까. 그런 의미 없는 논쟁(?)을 펼치는 동안 우리는 비에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실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감기에 걸렸던 날엔 어김없이 투박한 빗줄기들이 쏟아졌으니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길마다 빗물이 가랑가랑 고였다. 우리는 지루할 틈도 없이 웅덩이들을 넘어 다녔다. 비의 계절이었다.



그는 숙소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사실 혼자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 께레따로에 다시 와서 잡은 숙소는 도심에서 꽤 많이 벗어난 곳에 있었는데, 바뀐 숙소의 위치와 동네 지리를 아직 인지하지 못한 데다 비까지 내려서 한밤중에 미로 속에 빠진 것 같았다. 제대로 온 줄 알았던 길 끝에 완전히 엉뚱한 곳이 나와서 혼란 속에 빠지려는 무렵, 지오반니가 친구가 사는 동네라서 잘 안다며 주소를 보고 바로 길을 찾아주었다. 다행이었다, 그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만남이 어떤 소설의 결말처럼 촘촘한 과정을 거쳐 끝이 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이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숙소에 도착해 휘진 몸을 녹이며 생각했다. 우리를 관통한 다섯 번의 만남 속에서 왠지, 여행의 이유를 하나 더 찾은 것 같다고.


Espero que podamos vernos más tiempo en el fut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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