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하며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계약 기간이랄 게 없는 고시원에서 별 다를 것 없는 하숙집으로, 같은 값이라면 직장이 가까운 게 나았다. 고시원과 하숙집의 공통점은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매달 벌어 매달 먹고사는 외로운 개똥벌레 신세였다.
방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던 중 자취생들의 최대 직거래 카페인 피터팬에서 하숙집 한 군데가 눈에 띄었다. 그 하숙집은 조금 독특한 구조였는데 3층까지 계단을 올라가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가운데 조그만 거실과 부엌이 있고 그를 중심으로 마치 피자 조각처럼 방문 5개가 둥글게 배열되어 있었다. 내 피자는 제일 왼쪽에 있는 녀석이었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수납장 하나가 딱 맞게 들어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우드 톤의 오래된 바닥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 공중화장실 한 칸보다 겨우 조금 더 큰, 벌 받을 때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초미니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세면대를 놓을 자리도 없어 벽에 수도꼭지만 달랑 달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살았던 고시원보다는 아주 약간 더 넓었고 무엇보다 창문이 있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안타깝게도) 상대적으로 나아 보였던 것 같다. 주인아저씨와 즉석에서 월세를 딜했다. 아저씨는 방문을 닫고 나만 들으라는 듯 은근한 목소리로, 학생이 사정이 딱하니 45만 원인데 '특별히' 43만 원으로 해 준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물다섯의 나는 감사하다고, 진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아저씨는 진짜 좋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이사 후 방바닥을 닦다 말고 눈물 한 방울 흘리며 삶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는 건 비밀, 로 하고 싶은데 대체 그 시절엔 왜 SNS에 전체 공개로 올려놓은 건지.
어째 쓰다 보니 머리가 띵하다. 스물다섯의 나에게 당장 달려가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
#4-2. 대문이 필요해
들어간 회사는 그 이후로도 경험한 모든 회사 중 가장 야근을 많이 한 곳이었다. 강퍅한 생활은 이어졌다. 새벽 3~4시까지 야근 동지와 함께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오기 일쑤였다. 당시 상암동은 아직 '디지털 미디어 시티'까진 아니었어서, 깊은 밤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나면 뼈대만 보이는 공사 중 건물들로 허허로웠다. 주말도, 휴일도, 새벽도 없는 날이 허다했으며 무리한 생활을 반복하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복도에서 픽 쓰러진 적도 있다. 그 후 도대체 무슨 소문이 퍼진 건지, 제대로 말도 나눠 본 적 없는 회사 사람이 비타민을 주고 가거나 뜬금없이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가기도 했는데, 어쨌든 힘이 안 났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하숙집을 생각하면 그저 이렇게 야근의 기억이 짜르르 밀려온다. 하숙집은 대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1층에 있는 투명한 문은 보안 장치도 없이 늘 열려 있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 문 안쪽에 남자로 보이는 수상한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뭐지? 이 야심한 시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려는 찰나,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다!
주변은 쭉 뻗은 대로라서 다른 데로 갔다면 시야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간 건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귀신도 사람도 무서웠던 나는 그날 동이 틀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에도 야근 후 깜깜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괜스레 주먹을 꽉 쥐곤 했다. 내 방문 바로 앞까지는 아무런 보안 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음, 제가 겪어봐서 아는데요(으쓱), 대문 없는 집에는 귀신이 드나들 수도 있답니다. 여러분, 자기 전에 문 잘 잠그시길.
#4-3. 500만 원의 꿈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보증금을 모으는 것이었다. 보증금의 최소 단위인 500만 원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적어도 고시원이나 하숙집은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엌이 딸린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나는 한 푼 한 푼 동전 쌓기 하듯 매달 작고 소중한 돈을 그러모았다. 하지만 말이 좋아 PD지, 말단 계약직으로 일하며 들어오는 쥐꼬리만 한 월급의 1/3쯤은 방세로 나갔고 현재의 생활을 다 포기할 수도 없어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500만 원의 고귀한 염원이 담긴 동전탑은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기 '팽'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말았다. 회사에서는 일하던 내내 계약을 연장해 줄 것처럼 말했었는데 재계약 '하루' 전날, 나와 야근 동지를 불러다 놓고 정말 미안하다며 예산 어쩌고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야근 동지는 정말 많이 울었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옷도 꼴 보기 싫다며 다음날 책상 위에 그대로 내팽개쳐놓고 퇴사했다. 나중에는 이렇게 급하게 고지하는 경우는 노동청에 신고까지 할 수 있는 건이었다며 분을 금치 못했다. 그에 반하면 나는 그나마 침착한 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아직 젊으니까, 다른 데 가서 뭐든 할 수 있겠지, 뭐라도 할 수 있겠지, 괜찮아요…….
쓰러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던 날들은 훗날 내 인생의 거름이 될 거야. 장차 성공의 어머니가 될 찬란한 실패라고, 민들레 꽃을 피워낼 거라고, 왜 다들 말하는 그거 있잖아?
……아니었다. 그냥 똥이었다.
나는 정답 없는 질문들을 하염없이 던지다가 돌연 보증금 통장을 깨고 홀연히 유럽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사실은 울고 불던 그 야근 동지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아아, 보증금 마련의 꿈은 그렇게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점처럼 쪼그라들며 '팽' 사라지고 말았다.
우씨. 나 욜로 아닌데. 우씨. 처음부터 돈이 없으니까 보증금이 없고, 보증금이 없는 방이니까 월세는 더 비싸고, 월세가 비싸니까 돈을 모을 수 없고, 돈을 모을 수 없으니까 보증금이 없고…… 헥헥. 달리고 달리다 욜로를 권하는 악마의 손길을 부여잡았다. 헥헥. 사회는 나를 욜로의 전당에 전시해 놓고 아름다운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