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가 아니란 말이에요

네 번째 이야기(2012~2013)

by 세라

#4-1. 특별 할인


이직을 하며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계약 기간이랄 게 없는 고시원에서 별 다를 것 없는 하숙집으로, 같은 값이라면 직장이 가까운 게 나았다. 고시원과 하숙집의 공통점은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매달 벌어 매달 먹고사는 외로운 개똥벌레 신세였다.


방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던 중 자취생들의 최대 직거래 카페인 피터팬에서 하숙집 한 군데가 눈에 띄었다. 그 하숙집은 조금 독특한 구조였는데 3층까지 계단을 올라가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가운데 조그만 거실과 부엌이 있고 그를 중심으로 마치 피자 조각처럼 방문 5개가 둥글게 배열되어 있었다. 내 피자는 제일 왼쪽에 있는 녀석이었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수납장 하나가 딱 맞게 들어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우드 톤의 오래된 바닥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 공중화장실 한 칸보다 겨우 조금 더 큰, 벌 받을 때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초미니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세면대를 놓을 자리도 없어 벽에 수도꼭지만 달랑 달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살았던 고시원보다는 아주 약간 더 넓었고 무엇보다 창문이 있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안타깝게도) 상대적으로 나아 보였던 것 같다. 주인아저씨와 즉석에서 월세를 딜했다. 아저씨는 방문을 닫고 나만 들으라는 듯 은근한 목소리로, 학생이 사정이 딱하니 45만 원인데 '특별히' 43만 원으로 해 준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물다섯의 나는 감사하다고, 진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아저씨는 진짜 좋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이사 후 방바닥을 닦다 말고 눈물 한 방울 흘리며 삶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는 건 비밀, 로 하고 싶은데 대체 그 시절엔 왜 SNS에 전체 공개로 올려놓은 건지.


어째 쓰다 보니 머리가 띵하다. 스물다섯의 나에게 당장 달려가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



#4-2. 대문이 필요해


들어간 회사는 그 이후로도 경험한 모든 회사 중 가장 야근을 많이 한 곳이었다. 강퍅한 생활은 이어졌다. 새벽 3~4시까지 야근 동지와 함께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오기 일쑤였다. 당시 상암동은 아직 '디지털 미디어 시티'까진 아니었어서, 깊은 밤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나면 뼈대만 보이는 공사 중 건물들로 허허로웠다. 주말도, 휴일도, 새벽도 없는 날이 허다했으며 무리한 생활을 반복하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복도에서 픽 쓰러진 적도 있다. 그 후 도대체 무슨 소문이 퍼진 건지, 제대로 말도 나눠 본 적 없는 회사 사람이 비타민을 주고 가거나 뜬금없이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가기도 했는데, 어쨌든 힘이 안 났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하숙집을 생각하면 그저 이렇게 야근의 기억이 짜르르 밀려온다. 하숙집은 대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1층에 있는 투명한 문은 보안 장치도 없이 늘 열려 있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 문 안쪽에 남자로 보이는 수상한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뭐지? 이 야심한 시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려는 찰나,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다!


주변은 쭉 뻗은 대로라서 다른 데로 갔다면 시야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간 건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귀신도 사람도 무서웠던 나는 그날 동이 틀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에도 야근 후 깜깜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괜스레 주먹을 꽉 쥐곤 했다. 내 방문 바로 앞까지는 아무런 보안 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음, 제가 겪어봐서 아는데요(으쓱), 대문 없는 집에는 귀신이 드나들 수도 있답니다. 여러분, 자기 전에 문 잘 잠그시길.



#4-3. 500만 원의 꿈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보증금을 모으는 것이었다. 보증금의 최소 단위인 500만 원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적어도 고시원이나 하숙집은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엌이 딸린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나는 한 푼 한 푼 동전 쌓기 하듯 매달 작고 소중한 돈을 그러모았다. 하지만 말이 좋아 PD지, 말단 계약직으로 일하며 들어오는 쥐꼬리만 한 월급의 1/3쯤은 방세로 나갔고 현재의 생활을 다 포기할 수도 없어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500만 원의 고귀한 염원이 담긴 동전탑은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어느 날 갑자기 '팽'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말았다. 회사에서는 일하던 내내 계약을 연장해 줄 것처럼 말했었는데 재계약 '하루' 전날, 나와 야근 동지를 불러다 놓고 정말 미안하다며 예산 어쩌고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야근 동지는 정말 많이 울었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옷도 꼴 보기 싫다며 다음날 책상 위에 그대로 내팽개쳐놓고 퇴사했다. 나중에는 이렇게 급하게 고지하는 경우는 노동청에 신고까지 할 수 있는 건이었다며 분을 금치 못했다. 그에 반하면 나는 그나마 침착한 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아직 젊으니까, 다른 데 가서 뭐든 할 수 있겠지, 뭐라도 할 수 있겠지, 괜찮아요…….


쓰러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던 날들은 훗날 내 인생의 거름이 될 거야. 장차 성공의 어머니가 될 찬란한 실패라고, 민들레 꽃을 피워낼 거라고, 왜 다들 말하는 그거 있잖아?


……아니었다. 그냥 똥이었다.


나는 정답 없는 질문들을 하염없이 던지다가 돌연 보증금 통장을 깨고 홀연히 유럽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사실은 울고 불던 그 야근 동지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아아, 보증금 마련의 꿈은 그렇게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점처럼 쪼그라들며 '팽' 사라지고 말았다.


우씨. 나 욜로 아닌데. 우씨. 처음부터 돈이 없으니까 보증금이 없고, 보증금이 없는 방이니까 월세는 더 비싸고, 월세가 비싸니까 돈을 모을 수 없고, 돈을 모을 수 없으니까 보증금이 없고…… 헥헥. 달리고 달리다 욜로를 권하는 악마의 손길을 부여잡았다. 헥헥. 사회는 나를 욜로의 전당에 전시해 놓고 아름다운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카메라 들쳐 메고 전국 동네방네 출장을 다녔던 2012년
204919_363408680403989_742805623_o.jpg 거친 업무의 현장
그 시절의 유일한 내 사진
방황의 확장(해외진출)
욜로의 상징 - 퇴사, 여행, 술, 우연한 만남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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