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집만 없을 뿐이야

다섯 번째 이야기(2013)

by 세라

#5-1. 임시 상태


유럽에서의 방랑을 접고 돌아온 뒤 나는 탈탈 털어도 한 푼도 안 나오는 무전백수였고, 하루하루 살벌한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영화 '소공녀'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나는 만년 여행자처럼 캐리어와 봇짐을 끌고 다니며 사정 닿는 대로 여기저기서 묵었고, 약 반년 간 알바를 하며 고군분투한 끝에 비로소 한 회사에 합격하게 된다. 그즈음 들어간 숙대 인근의 방은 실제로 다섯 번째 방은 아니지만, 그나마 '묵었다'가 아닌 '살았다'는 느낌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로 올려 본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서울, 나는 그때 잠시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놈의 회사는 단 일주일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이사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시기를 못 맞추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된다"고 말했다. (에잇! 진짜 왕재수다!) 물론! 마음속의 말들은 괄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감히 그런 생각은 품은 적도 없다는 듯이 얌전하고 급하게(?) 방을 찾던 중 숙대 근처에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워서 3개월 정도 내놓는다는 원룸을 찾았다. 일단 그 집으로 결정했다. 그조차 '집'보다는 '방', '방'보다는 '숙소'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나는 끝없이 임시에서 임시로 건너 다녔다. 신세를 진 곳도 도움을 받은 곳도 많았다. 그 와중에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때마다 자존감이 한 움큼씩 뿌리 뽑혀 나갔다. 진짜 여행 중인 상태가 현실 생활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돌아간 날 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휘청거리게 하곤 했다.


나는 특히 김영하 작가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내내 "맞아! 내 얘기야!" 하며 (마음 속으로) 격하게 들썩거리곤 했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마사이족(케냐의 유목민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항구적인 여행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안정된 주거 환경'은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현재에 저당 잡혀 살았다. 현재를 있는 힘껏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현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재라는 모양으로 구겨진 사람이었다. 세상에 불행의 파이가 공평하다 한들, 누구나 깨닫고 보면 자기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바로 그 자리가 '꽃자리'라 한들, 주제에 엄살까지 많던 나는 그것을 '하필' '내게' 주어진 거대한 불행으로만 여겼다. 그리고 나를 탓했다. 너는 왜 끈기가 없어? 너는 왜 축적할 줄을 몰라? 너는, 해도 해도 안 되는 인간인 거야?


지인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살다가 결국 강변에 자신만의 텐트를 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영화 「소공녀」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꽃자리」 시 中 일부


(지금은 내 '인생시' 중 하나지만 그 당시에는 세상에 못 다 뀐 내 콧방귀를 있는 대로 없는 대로 다 껴 주었던, 내 '콧방귀 방석'이었던 시)


#5-2. 버스 라운지


서울에 살면서 교통 소음으로부터 피하는 게 요원한 일이라지만, 이 방은 그중에서도 참 유난했다. 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빨리 가면 10초, 천천히 가면 20초 정도 걸렸으니 차라리 '버스 라운지'라 봐도 무방하겠다. 남녀가 한층에 섞여 있던 하숙집보다는 덜 불편했을지도 몰랐고 창문이 없는 고시원보다는 덜 우울할지도 몰랐으나, 산다는 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창문을 닫아도 자동차 마찰음과 불규칙한 경적 소리가 방구석을 파고들었고, 창문을 열기라도 하면 소음과 미세먼지가 1+1으로 공격해왔다. 잠을 청하려고 누워 있자면 도시의 소음은 밤의 어둠을 먹고 마구마구 자라는 것 같았다. 나는 밤마다 비대해진 소음 괴물과 전투를 벌였다. 현실인지 악몽인지 모를 환상 속에서, 마치 싸우다 보면 괴물을 이길 수 있을 거라 믿는 돈키호테처럼.



#5-3. 바 선생


이름마저 함부로 부를 수 없어 '바 선생'이라고 불리우는 그분에게 한 꼭지를 할애해드려야겠다. 그 방은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1층에는 버스 정류장 근처답게 커피, 토스트, 김밥 따위를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건물이 오래되어서인지 얻어먹을 게 많은 환경의 영향인지 이 건물의 '바 선생'들은 유독 몸집이 컸다. 어느 날 밤, 나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다 무심코 어떤 육덕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만다. 폰 라이트로 실물을 확인한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니, 질렀나?) 마치 인도네시아 밀림에서나 볼 법한 우량한 크기의 '바 님'들…….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를 감히 들여다본 죄는 무거웠다. 그들은 종종 나의 죄를 심판하러 방에 들어왔다. 나는 실성한 듯 쌍심지를 켜고 살충제를 뿌려대곤 했지만 그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침대 밑으로 유유자적 숨어들었다.


항복! 완전 항복!


그들은 인류를 뛰어넘는 존재다. 나는 그들을 이길 생각도 없거니와 이길 수도 없다. 그러니 부디 미천한 내 존재 따위에게는 콧방귀조차도 아까워하며 저쪽으로, 저어기 저어어쪽으로,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다.


다시 잘 살아보자며 다짐하던 나, 2013년 8월
외장하드에 이런 사진만 오조오억개(방황의 귀재)
퇴근길
궁상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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