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숙집에서 새 삶을 꿈꾸다

일곱 번째 이야기(2017)

by 세라

#7-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이제 이 일 싫어졌다", "예전 같은 열정은 없다",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다녔다. 후배들이 방송이나 영상, 특히 뉴미디어 쪽으로 진로 상담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사랑하는 후배야, 지금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고달픈 서울살이, 딱 봐도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지방 후배들이 내가 겪은 불행을 똑같이 반복할 게 눈에 보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많은 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결혼했)고, 나는 안간힘을 다해 버티다가도 툭하면 '여행자 모드'이기 일쑤. 뚝심 있게 올라온 후배들은 어김없이 같은 난관에 봉착했다. 도대체 왜 야근과 열정 페이, 고독한 단칸방과 청년들의 절망은 반복되는가.


나는 퇴사 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끝없이 이어지는 내 하소연들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내가 그동안 이 일을 좋아하는 줄 착각하고 살았다는 말, 잘못된 길을 선택했고 바꿀 수 없어 여기까지 왔다는 말, 열정 따윈 바닥났다며 징징거리던 말, 아무 데나 흘리고 다녔던 말과 행동과 태도……. 나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조용히, 계속, 포기하지 않고……


젠장, 그만!


땅땅땅. 나와 나의 극적 타결. 결국 '나'는 '나' 속에서 삐죽삐죽 걸어 나와(쿨하지 못함), 내 징글징글한 고집에 혀를 내두르며, 어쩔 수 없이 화해하는 척!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팻말을 들어 올렸다. 마치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듯 질척하고 끈끈하게. 나를 지치게 한 건 상대방이었을까, 상대방의 가난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설익은 내 욕심이었을까.


나는 끝내 창작에 대한 사랑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보증금 없는 눅진한 하숙집으로 들어가 햇병아리 같은 서른 살 내 삶을 시작한다.



<여행> 메리 올리버


어느 날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고

마침내 그것을 시작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목소리들은

불길한 충고를 하고

온 집안이 들썩이고

오랜 습관이 발목을 잡고

목소리들이 저마다

인생을 책임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은 멈추지 않았다.

거센 바람이 주춧돌을 흔들고

그들의 슬픔은 너무나 깊었지만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때늦은 스산한 밤

부러진 가지와 돌멩이가

길 위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구름이 걷혀 별이 빛날 무렵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하고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세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걸어가며

당신은 천천히 깨달았다.

그 새로운 목소리는 늘 곁에 있었으며

바로 자신의 것이었음을.


*2017년 1월 내 다이어리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온 여행/ Isla mujeres, Quintana Roo, México



#7-2. 눅진한 새 삶


새 삶, 좋다, 마음만은 정말 그랬다.(마음이 다라지 뭐야?)


하숙집은 한 층에 5개의 방이 있었고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했다. 집주인이 가끔 밥과 반찬을 가져다 놓았지만 냉장고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반찬들이 섞여 있었고 밥에서는 새로 했는데도 묘하게 냄새가 나곤 했기 때문에 나는 답지 않게 철두철미한 날들을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쌀이 오래되거나 질이 좋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새 밥, 새 집, 새 삶. 거기서의 '새-'는 차마 희망차게 발음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라는 뜻을 담기에는 너무도 남루하고 너무도 형편없었으니.


싸구려 밥을 챙겨 먹으며 공부와 알바를 하는 동안에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장마철이 되자 비가 내렸다. 내 방 창문은 베란다와 붙어 있었는데, 베란다 천장에 문제가 있었는지 비가 올 때면 마치 처마 바로 밑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면 방구석을 감도는 진한 바깥 정취를 외면할 수 없어 롯데마이슈퍼에서 폭탄 세일하는 990원짜리 맥주를 사 와서 깔짝깔짝 마셨다.


하숙방에서의 키치적인 평화를 깬 것은 곰팡이였다. 어느 여름날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다 꺼내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보관해 둔 옷이며 가방이며 온갖 것들에 곰팡이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왕성하게 번식한 곰팡이였다. 나는 내 방 전체에 곰팡이 냄새가 배어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거대한 곰팡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절반 정도는 버리고 절반 정도는 닦았으나 그중 절반은 결국 버렸다. 인내심의 퓨즈가 툭 끊어졌다.



#7-3. 하숙집 연합군


곰팡이가 핀다는 말은 습한 환경이라는 뜻이다. 여름은 체험 생태계의 현장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그리마(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비주얼, 일명 돈벌레)가 출두하는가 하면, 엄청나게 빠른 바퀴벌레가 나타나 온 방을 끔찍하게 휘젓고 다녔다. 당시 하숙집 어디에선가 비명 소리가 들리면 벌레가 출두했다는 뜻이었는데, 그러면 잔존한 멤버들이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들고 나와 일동 살충제를 분사하기도 했다. 그 장면은 함성을 지르며 대포를 쏘는 전쟁터의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자기 방문 앞에 벌레퇴치약을 빈틈없이 붙여서 결계를 쳐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이런 세속적인 전쟁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우리와 절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꼼꼼하게 발라 놓은 일렬의 약들은 자기 방에만 벌레가 안 들어오면 상관없다는 완고한 의지처럼 보였다.


사실 나는 벌레가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갔다가 결계에 걸려 영영 못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했던가요, 저 속 좁은 인간입니다!)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해서 속으로만 꿍시렁거렸음.)


추저분한 회상 속에서 7번째 방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다가 이런 곰팡이와 벌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를 하고 알바를 하고 취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음만큼은 해피엔딩이니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련다. 마음이 다라니까?


신촌, 2017년 1월
신촌, 2017년 6월
답답할 땐 한강
꽃이 지는 걸 다 찍어뒀을 정도로 망원 한강을 자주 드나들던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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