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2번째 방은 빌라 건물 바깥에 붙어 있는 창고 같은 방이었다. 방문을 열면 바로 외부 세계로 연결되는 방 말이다. 방은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건물의 소속이 아닌 듯한, 안도 없고 밖도 없는 보르헤스의 미로 같았다. 식물로 치면 부레옥잠. 동물로 치면 오리. 오리는 둥둥. 돛단배도 둥둥. 둥둥둥 동동동. 왠지 이 세상 주소조차 없을 것 같은 방. 누군가 정착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방. 외따로운 바위섬처럼 거친 바람이 부는 방. 그곳에서 나는 난파된 풍선처럼 휘청거리며 서른둘의 겨울, 봄, 여름을 보냈다.
그 방에서 다섯 번째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 다니면서 소득을 증명해 적은 금액이지만 겨우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숙집에서 나와 보증금 500, 월세 39, 관리비 5만 원인 그 원룸으로 옮긴 것이다. 핫플레이스인 연남동에서 귀할 만큼 저렴한, 그래서 창고일 수밖에 없는 가격의 방이었다.
집주인은 "사회초년생이니 이 방에 살면서 돈 모아서 나가면 되겠네요" 하며 얌전한 인상의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때만도 이미 사회생활 9년 차였지만 그 나이에 돈도 못 모으고 뭐했냐는 시선보다야 아무렴 뭐 나을 터, 들킬 세라 넙죽 말을 받아챙겼다. 줄곧 하숙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나만의 부엌과 화장실이 생긴 것만으로도 한동안 퍽 행복했다.
#9-2. 자이 선배
자이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회사 선배가 독립을 축하한다며 계속 집들이를 하라고 부추겼다. 팀원들과 사이가 좋았기에 진심으로 초대하고도 싶었지만
선배, 제방에 성인 5명 앉을자리 없어요. 흑흑.
#9-3. 창고에 산다는 건
이사 후 처음에는 마냥 좋기만 했다. 나만의 책상과 의자, 부엌 도구들을 구매하고 배치하는 소소한 즐거움과 더 이상 사람이 밀려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부족하게나마 나만의 싱크대에서 요리를 하고 나만의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할수 있는 문명 생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한두 친구를 초대해 놀 수도 있는 자유로움! (그 방은 소음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쓸 수 있는 그 자취방에 대한 소회는 아무래도 '음습'했다고 해야겠다.
방은 위치상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낮에도 어두침침한 것이마치 지박 유령들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겨울에는 대문과 창문 등 5군데나 뚫린 구멍들로부터 들어오는 외풍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실내온도는 평균 6도에 머물렀다. 방 앞에는 차 3대 정도가 들어가는 주차 공간이 있었는데 차가 드나들 때마다 누워 있는 자리가 진동해서 새벽마다 잠이 깨곤 했다. 게다가 그 습기, 미칠듯한 습기! 사는 내내 콩벌레와 닮은 '쥐며느리'라는 벌레가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많이 나왔다. 느릿느릿하고 조그만, 천하태평하게 방구석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그 벌레 때문에 정말이지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름도 뭐 저래!)
월세를 더 받기 위해 101호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놓은 그 방은, 애초에 방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창고면 창고답게 정체성을 지켰어야 했다. 나 역시 창고 속의 감정 없고 생각 없는 짐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리석게도 그러지 못해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다.
#9-4. 히키코모리의 전말
12번째 방에서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히키코모리였다. 희망을 품고 이사한 지 몇 개월 만에 퇴사했고, 방 안에서 폐쇄적인 날들을 보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고 식재료는 온라인 배송으로 해결했다. 가끔 도둑고양이처럼 밤에 집 근처 공원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주말마다 친구를 초대하기까지 했던 내가 히키코모리가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달한 나머지 더 이상 세상에 소속되기를 거부해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다섯 번째 회사에 관한 이야기다. 회사는 새 채널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를 프리랜서로 영입했다. 이후 형식적인 면접(면접 전후로 면접관인 선배와 같은 사무실에 앉아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요상한 면접)을 통해 계약직이 되었고 1년이 끝나면 정규직이 될 거라 했다. 그러나 1년 후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계약의 연장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고 했다. 우선 6개월이든 1년이든 계약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겠으며, 몇 달 뒤 있는 정규직 공채에 절차를 밟고 들어오는 걸로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도 문제가 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많은 고위직들을 만났고, 그들이 하는 말은 너무 달콤해서 오히려 모종의 떫은 맛이 아닐까 착각케 하는 것들이었다.
당신은 우리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입니다. 당신과 오래오래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꼭 정규직 되실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리 자주 봐요.
다시 계약서를 쓰고 때를 기다렸다. 그 시기에 팀장은 휴직을 해 버렸고 사장은 바뀌었고 일은 그대로였지만 교묘하게 소속만 다른 팀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딱 좋은 상황. 소속이 있지만 소속이 없는, 퇴근 후 돌아오는 내 자취방과 똑 닮아 있는 둥둥둥 동동동 떠다니는 운명이었다.
때가 되어 서류전형을 거쳐 실무면접과 임원면접을 봤다. 같은 회사에서 보는 3번째, 4번째 면접이었고, 이번에도 면접장에서 함께 밥 먹고 웃고 떠들던 사람들과 조우해야 했다. 임원 면접에서는 처음 보는 사장, 간부들이 섞여 있어 낯설었다.그때 하필 심한 감기에 걸려 목소리도 잘 안 나오지 않았고, 마음과는 달리그럴듯한 답변을 잘 못하고 나온것 같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속받은게 있는데, 그래도 2년 동안 고생한 세월이 있는데, 하며 기다렸다.
그러니까,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린 걸 알았을 때, 나는 남은 계약 기간을 채워야 했을까?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미안해서 면목이 없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소셜 매체에 대한 비전을 거론했다. 부서의 장은 "내가 OO 씨라면 지금 저 한 대 때리고 싶을 거 같은데요"라고 너스레를 떨더니 결국 "미안합니다"라고 했고, 그러나 곧장 남은 기간 동안 "열정적으로" 일해달라고 했다. 당신, 당신 같으면 지금 열정이 생기겠어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나는 그냥 울었다. 콧물이 흐르도록 쪽팔리고 한스럽고 추접하게. 욕이라도 하고 나왔으면 덜 억울했을까? 그렇게천추의한을 품고 퇴사하야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된 것이다.
나는 그 시절 내가 가진 모든 눈물을 이 섬 같은 방에 다 쏟아부었다. 오직 방 안의 공기 속에서 나는 유영했다. 배신감, 억울함, 분노, 후회, 자책, 우울의 감정들이 불협화음의 합주를 해댔다. 온갖 지나간 말들을 곱씹었다. 나만 데리고 있으면 뭐든 다 시도해 볼 수 있겠다며? 그 시도란 게 이런 거였어? 또 실험이었어? 그런 외침들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모든 희망이었던 것들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불구로 만들었다.말이란 게, 약속이란 게, 그렇게 덧없는 것이었다.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를 하염없이 생각하던 2019년
그해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문득 '인생무상'을 깊이 체험한다. 그리고 온갖 사찰을 떠돌다 모든 계약의 족쇄를 끊어버리고 섬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한 번도 그 빌라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채, 조직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도 그만 다 흩어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