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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깔로에서의 수다

Pueba#3 네가 편해지기 시작했어

by 세라

촐룰라 여행을 마친 뒤 한 무리의 친구들과 이별하고, 또다른 멕시코 친구인 Su의 집에 머물렀다. 그녀의 집이 Puebla 중심가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Puebla, 네가 편해지기 시작했어


Puebla는 내가 가장 현지인처럼 머무른 도시이다. 멕시코의 대부분의 도시에는 중심에 성당과 쏘깔로(Zócalo)가 있는데, 돌이켜 보면 이곳이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평범하고, 아늑했던 것 같다. 멕시코시티의 쏘깔로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과나후아또(Guanajuato)처럼 관광객이 너무 많지도 않고, 와하까(Oaxaca)처럼 아주 넓지도 않다. 바로 옆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대성당이 있지만, 쏘깔로는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담한 느낌을 준다. 적당한 크기, 적당한 사람, 적당한 활기. 누구에게나 빈 벤치 하나쯤은 '물론!'하고 내어준다. 날씨마저 춥지도 덥지도 않아, 모든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평범한 수다


Su와 나는 항상 이 쏘깔로에서 만났다. 나중에 우리는 약속을 정할 때 아예 장소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거기'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은 나에게는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다. 날 좋은 날, 미리 나가 친구를 기다리며 멍하게 바라보는 쏘깔로의 풍경이란.. 자주 가던 정독도서관 정원에 온 듯 편안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친구가 오면, 벤치에 앉아 만난 목적을 잊고 한참 떠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많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녀가 한국 남자들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또래 젊은이들의 공통 관심사인 연애 주제를 놓고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 어떤 스타일이 좋냐,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녀는 멕시코 남자들은 너무 자유로워서(?) 한국 남자처럼 약간 보수적인 스타일이 좋다고 했다. 사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비단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현지 친구들 커플 중 하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집에 다른 '친구 남자'가 (물론 일대일로) 자주 놀러 오고 집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한국 여자들 중 이런 걸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리보다 개방적인 건 사실이다.


나는 자유로운 그들의 문화를 좋아하지만, 그에 따른 부정적인 면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좋은 점만 썼지만, 내가 싫어했던 점 중 하나는 많은 콘텐츠들에서 여자가 '성적 대상화' 되어 있는 것이었다. SNS에서 친구들이 그런 콘텐츠들을 서슴없이 '공유'하는 것을 보면, 그 자체가 이미 만연해 있는 분위기 같았다.



거리에서는 종종 동양인 여자를 놀리는 듯한 남자들을 마주치기도 했고, 가게에서 먹고 계산하려고 하는데 계속 윙크를 하는 종업원 등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나를 위해 그녀는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같이 갔던 바에서 주인아저씨가 자꾸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면서 슬쩍 스킨십을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주책아저씨(?)를 스페인어로 Rabo verde(라보 베르데)라고 부른다고 했다. (영어로는 Old dirty boy였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No me toques"(만지지 마세요), "No me gusta que me toques"(저 만지는 거 안 좋아해요)라고 말해!


또 어떤 남자는 처음 보고 인사만 했을 뿐인데 바로 "Me agradas(너를 좋아해)"라고 말했다. Te quiero나 Te amo보다 가벼운 표현 같아서 처음에는 이게 그냥 문화인지 헷갈렸다. 나중에 저녁때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바로 친구 어머니가 단칼같이 하시는 말. "그럼 이렇게 말해야지. No me agradas(나는 너 안 좋아해)"


음, 하지만 한국 남자들이라고 모두 다 정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가 혹시 한국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면 왠지 나의 방조(?)가 될 것만 같아서.. 나는 쓸데없는 사명감을 안고 말했다. "한국 남자라고 해서 다 그런(보수적인) 건 아니야. Depende de la persona!(사람에 따라 달라)"



이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 우리가 하는 일은, 가게에 들어가서 군것질을 하거나 또 다른 공원으로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지루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장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공감할 것이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는 공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며, 우리가 얼마나 여유를 가지는 데 있어 인색한지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소스 뿌리는 걸 좋아하는 멕시코 스타일 스낵
니에베(Nieve)라고 부르는 아이스크림


Puebla는 음식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와하까(Oaxaca)쪽이 더 음식으로 유명하기는 한데, 실제로 갔을 때는 Puebla의 명성도 만만치 않았다.



모두 이 지역에만 과자들이다. Puebla에는 특별히 Calle de los Dulces 라고 부르는, 과자와 사탕, 초콜릿 등 단 것들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거리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이런 과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선물로도 좋게 예쁘게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특히 CAMOTES라고 쓰여져 있는 첫번째 사진의 과자(젤리와 비슷)가 너무 달지도 않고 출출함을 달래기에 딱 좋았다. 나중에 근교여행을 할 때 시장에서 미리 사 가기도 했다.



그 외에도 Puebla에는 공예품을 파는 거리, 예술가의 거리, 까페 거리도 있다. 한나절을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은 도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예술가의 거리'에는 작은 방들이 쭉어서 있는데, 공간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작품을 팔기도다. 이런 식으로 특화된 거리는 유럽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내게는 참 흥미로운 곳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비가 온 직후라서 앞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맑은 날에는 항상 예술가들이 나와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생략했지만, Puebla 쏘깔로의 매력의 끝은 바로 야경이다. 색색의 불빛과 성당은 멕시코의 색과 멋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래의 글에서 Puebla의 야경들을 볼 수 있다. ▽


https://brunch.co.kr/@julyrain/18


Puebla의 장점 중 하나는 근교에 놀러 갈 수 있는 도시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곳에 길게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나도 그중 두세 군데를 갔는데, 나중에 Puebla를 떠날 때도 놀러 갈 수 있는 근교 도시들이 많이 남아서 친구가 아쉬워했다.



하루 종일 도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다 메뜨로부스(metrobús)를 타고 잠시 눈을 붙이며 친구 집으로 돌아가던 날들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여행이라기엔 소소하고, 일상이라기엔 특별한 날들. Puebla는 평범함 이상의 클래식한 멋을 지녔다. 해서 이곳에 머무를 때는 하루보다는 이틀, 이틀보다는 삼일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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