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뭘 또 그렇게 심각하고 무서운 어조로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어제의 나를 나무라며 풀 죽은 그제의 나를 토닥여준다. 고약한 심보 같으니라고. 열심히 글 쓴 애를 왜 그렇게 몰아붙이고 그래. 소곤소곤. 그리고 어제의 나에게도 다가가 조심스럽게 포옹해 준다. 얘야 괜찮아,미간의 힘을 툭 풀어보렴. 잠시 화가 난 것뿐이잖아, 너도 착한 아이잖아.
오늘은 출근 부담이 없는 삼일절 공휴일이라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나, 두 번이나 더 낮잠을 잤다. 남은 마지막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시고 오후 3시께 책상 위로 온화하고 미지근한 햇살의 기운이 테이블보처럼 내리 깔리자, 조금은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염세적이고 광란적인 글을 자주 휘갈겨 쓰지만 사실은 그에 못지않게 반성도 자주 한다. 정제되지 못한 글을 드러낸 것을 못내 부끄러워하며 맑고 예쁜 글을 써낸 작가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소위 '이불킥'을 열렬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뜻함이란 역시, 메마른 불모지 같은 내 가슴에서 피워 올린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다정하고 상냥한존재들로부터 온 것이다. 요즘의 나는 어떤 감정이든 부글부글 끓여다가 잠시 식혀 놓은 주전자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누가 조금만 내면을 건드리는 말을 해 줘도 금세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밥 사주겠다고 나오라는 지인들, 만나자는 친구들의 약속을 거절하거나 취소하는 일도 잦았는데, 그럼에도 어떤 만남들은 그때그때 이뤄지고 안부 연락이 닿아서 적어도 외롭지는 않게 보내고 있다. 나 같이 저만 알고 뭘 해도 서투른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손길들이 내밀어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과분하다.
요즘은 방송미디어 계약직들의 교체 시즌인지 생각보다 지원해 볼 만한 계약직 채용 공고들이 눈에 띈다. 인력 돌려막기 시즌인가 보다. 어제는 그중 한 기업에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무기력증과 의욕 상실로 인해 이미 몇 군데를 패스했고, 거기 또한 피로한 마음으로 억지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 친한 언니 E의 안부 연락을 받았다. E 또한 같은 방송 미디어 계열로, 나와 비슷하게 10군데 정도의 회사를 다녔고 우리는 그중 한 교집합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E는 폭탄 금리와 구조 조정 소식에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이런 말들을 해 주었다.
-세라야, 이런 위기는 너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거야.
-너 포트폴리오 괜찮은 거 주면 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볼까?(저는 제대로 된 개인 장비가 없는데요…….)
-우리가 회사에서 별별일을 다 겪었는데, 일단 해 보는 거지 뭐. 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
-너는 감각도 좋고, 기획도 잘하고, 촬영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고, 너는 딱 지금 시대에 맞는 사람이야. 너는 대박 날 거 같아! (진짜 아닌데요, 언니가 절 너무 후하게 봐주는 건데?)
-진짜야. 절망할 필요 없어, 너의 길을 가면 돼.
나는 내가 뭐라고 답장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횡설수설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미 감정의 범람 상태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서랍을 뒤적이다가 2015년에 내가 나에게 쓴 엄청나게 유치한 편지를 발견했다. 혹시 모르니까 딱 한 번만 읽어보고 버려야겠다 생각하며 펼쳤는데, 뜻밖에도 중간에 친구 Y의 글씨체가 등장했다. 잊고 있었는데 우리는 같이 타임캡슐용 편지를 쓰고 있었고, 서로의 종이에 출연하는 발칙한 일까지 벌여놓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는 말야, 예쁨. 그리고 똑똑해. 또 착함. 왜냐하면 넌 Y의 친구니까! 걘 별로인 애랑은 절대 안 노는 애잖아.
Y의 과격하고 유치한 멘트가 귀여워서 차마 편지를 버릴 수 없었다. 익살 가득한 너의 문장이 하필 허허로운 지금의 나에게 도착한 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하는 수 없이 다시 접어서 서랍에 보관해 두었다. 역시 나는 이렇게나 미련이 많다. 최근에는 친구 B가 짧은 일상 에세이를 출판해서 책을 선물해 주었다. B는 항상 내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말하는데, 그 책에는 내 이야기가 꽤 자주 등장했다. 나는 그 점을 매우 높이 산다며, 훌륭한 책이라는 평을 해 주었다. 친구는 절레절레했다. 나는 B를 보면 항상 '내 친구 힘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 책을 받는 게 아니라, 샀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계속 하고 있다. B는 지금 2배로오른 전세 대출 이자를 벌기 위해 빵집에서 열심히 알바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친구 H는 우울한 내 근황을 알고 있지만, 기어이 자신의 생일 파티를 하자며 나를 불러 냈다. 선물은 다음에 달라며, 밥도 자기가 사겠단다. "그래도 축하받고 싶은 걸 어떡해!"라면서, 그 대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어색하게 노래를 불러 주었고, 선물은 오히려 내가 받았다. H는 귀여운 엽서와 내가 차 마실 때 잘 쓸 것 같다며 정갈한 나무 쟁반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 친구야…… 사는 게 뭘까, 사는 게 뭘까.
또 다른 친구 J는 나보다 더 열심히 채용 공고를 서칭해서 계속 보내주고 있다. 또 친구 C는 니가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게 밥은 못 사주겠고 술을 사 먹일 거란다. 참 나. C의 꿈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 거라는데, 아마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자기 위로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면서도 바로 그 경계심 때문에 더 쉽게 빠지는, 돌아서면 후회하는 미욱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친구들의 말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른다. 그게 아무리 달콤하고 안락하여도, 설사 사실과 전혀 다를지언정. 나는 친구들을 통해 내가 나에게 품었어야 하는 자애를 연습한다. 사실은 그들도 자주 그런다.
3월 첫날이다. 가슴에 쌀알 같이 하얀 희망 한 주먹 퍼다 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안다. 그거 한 줌만 있으면 꽤 살만한데, 그 별거 아닌 조그만 게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끝끝내 삶을 저버린다. 만약 후자가 내 친구라면 나는 친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나도 사실 잘 모르는 희망이라는 거,어떻게든 구하려고 애를 쓸 것 같다. 그리고 이것도 안다, 친구들을 통해 연습한 자애를 나 자신에게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 쉽지 않을 테지만, 분명 또 실패하고 말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