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킬 앤 하이드처럼

퇴사 D-16

by 세라

나의 무기력을 경계한다. 어제의 글 같은 경우는 게으른 글이다. 글이 글을 잡아먹은 글이다. 글에서마저 도피한 글이다. 와락 사랑을 고백해 놓고 쏙 내뺀 글이다. 무기력이 일상을 넘어 글 속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순간, 내 정신에는 곰팡이가 번질 것이다. 글 속에서 태연한 척하지 말자. 나는 한 번도 태연한 적 없다. 어른스럽지도, 의연하지도 않다. 나는 이기적이고, 유아적이고, 일차원적이다. 나는 속물적이고, 쉽게 집착하고, 유혹에 약하다. 나는 미련이 많아 뒤돌아보고, 누군가가 나를 떠나려 하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른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 글이 이런 내 어리광을 받아줌으로써 우리는 친해졌다. 그래서 글은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 자주 튀어나오는 속마음도, 아닌 척하면서 숨어 있는 겉마음도 다 안다. 알지 않는가, 글만큼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것도 없다는 것. 글에서마저 버림받기를 자처하는가. 나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어야 한다. 글이여, 제발 나를 포기하지 말아 다오.


나에게 퇴사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진 지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일상의 무기력은 대부분 사무실에서 내 역할을 잃고 애매하게 겉도는 시간에서 오는 것이지만, 어쩌면 나는 퇴사를 통보받기 전부터 번아웃 상태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신히 붙들고 있었던 인내심이 툭 끊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사실 '번아웃'이라는 개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인데,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나 근근이 벌어 먹고 사는 노동자라면 힘들고 지치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똑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피로, 소진, 불안, 회의, 냉소, 스트레스, 위염, 두통, 숙취, 수면 부족 같은 건 직장인의 기본 옵션 아닌가. 현대 사회에서는 피로도 죄라서, 피로를 티 내는 건ㅡ게으른 상사의 특권이 아니라면ㅡ자기 관리의 실패나 자격 박탈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여 '번아웃'이라는 진단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나약함과 무능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 기만이자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해 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킬 앤 하이드처럼, 2개의 자아, 필요하다면 3개나 4개의 자아를 가지고도 사는 게 우리네 평균 아니냐고.


내 직장 생활은 그만큼 강퍅하고 칙칙했다. 하루종일 햇빛을 못 보는 날이 허다했으며 언제나 잠이 고팠다. 지하 사무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았고 담배 냄새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종일 생방송을 하거나 집에는 잠깐 들리는 수준으로 연속 야근을 할 때면 눈두덩이가 퀭해지고 귀에 진물이 났다. 커피는 기호 식품이 아니라 생명수였다. 퇴근길마다 내 삶을 뻥 차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뛰어가서 다시 주워와야 하는 건 나라서 시원하게 날려버리지도 못했다. 인간 같잖은 사람에게 어디 한번 나도 인간 같잖게 대해보자고 어설프게 헛발질만 하다가 혼자 꼴 사납게 고꾸라지기만 했다.


나는 특히, 수면 부족과 피로에 대해서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깊이 잠들고 싶다는 생각과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밤새 뒤척이는 날이 많았고, 지난여름에는 자취방 에어컨에서 악취가 나고 물이 새서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뜬잠에서 토막토막 깨어날 때마다 아직은 더 잘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심했던 것 같다. 그저 이 버스에서 저 버스로 환승하듯 이 잠에서 저 잠으로 환승했던 건지도 모른다. 토끼잠이라도, 노루잠이라도, 훔쳐서라도 가질 수 있다면 훔쳤을 것이다. 당연히 실제 버스 안에서도 늘 고개를 기이하게 꺾어가며 졸았는데, 그럼에도 환승 정류장이 다가오면 놓치지 않고 아주 멀쩡하게 잘 갈아탔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수면 장애는 아닌 것이 주말만 되면 이 모든 게 무색하게 수면제라도 먹은 듯 내리 잤다. 몽롱하게 깨어나면 밥 먹고 또 자고, 혼몽 간에 책을 읽다가 그 자세 그대로 잠들기도 했다. 잠에 못 드는 건지, 잠에서 못 깨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한 번 2주 정도 갤럭시 워치를 사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늘 이 모양이었다.



이렇게 쓰면 내가 지금까지 꼼꼼하고 착실하게 업무를 해 왔다는 사실을 의심하실까 봐 불안하지만, 부디 그러지 않으시길 바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쯤은 대도시 직장인들의 평균이며, 이 사실은 나의 동료들이 증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나보다 더 심하다. 마침 수면 부족에 대해서 아주 잘 표현한 책이 떠오른다. 소설 <상아의 문으로>에서 구병모 작가는 이른바 '꿈 증상'에 대해 미치도록 혼란스럽게 묘사했다. 꿈 증상을 겪게 되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서 눈앞에 일어나는 일은 다음 순간 즉시 환상으로 바스라지는데, 신기하게도 단속적인 장면들은 태연하게 일상을 이어 붙여 나간다.


현대인의 몸은 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 영혼이 원 플러스 원 떨이 묶음 상품처럼 들러붙어 있다.
각종 영양제를 포함하면 현대인 중에서 매일같이 뭐라도 투약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기가 더 어려울 테니까요.
이 도시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기보다는, 그 둘을 구분할 필요도 없는 공간이 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잠을 박탈당한 만큼 거처를 잃은 꿈들이 현실에 출몰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2월 마지막날, 어느새 출근길이 많이 밝아졌음을 알았다. 한겨울에는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도 한밤중처럼 캄캄한데, 봄으로 향해가는 계절에는 회사부터 집까지 매일 한 뼘씩 밝아진다. 어린 왕자의 가로등지기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길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불을 켜고 있는 것 같다. 가로등지기는 얼마나 바쁠까. 나는 가로등지기의 노고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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