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뻑 껌뻑, 직광의 태양이 두 눈을 찔러 온다. 어느 쪽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각막이 타 내릴 듯한 작열감. 나는 늙은 짐승처럼 눈 근육을 축 늘어뜨리며 퇴근길의 한강을 바라본다. 내가 떠 가는 건지, 강이 떠 가는 건지. 글을 쓰기도 전부터 울고 싶어서 첫 문장을 쓰기가 너무 어려운 날이다.
너무 많은 말을 묵혀두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차라리 흰소리를 늘어놓거나 젠 척이라도 하는 게 낫다. 전봇대 앞에서 혼잣말을 한대도 지금보단 나을 것이다. 해야, 우리 함께 물속으로 쿵 떨어져 버리자. 너도 나도 어차피 거의 다 왔는데 우리 서로 끌어안고 파각 부서져버리자.
오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의 전화였다. 받지 않았다. 오후에 다시 울렸다. 한숨이 난다. 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회사에서 은퇴를 앞둔 엄마는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대충 잘 다녀오라는 이모티콘만 날리며 근황을 숨겨 왔다. 그건 내가 아주 오랫동안 모든 것을 혼자 해 왔기 때문이고, 그것만으로도 미치도록 벅차기 때문에 이럴 때는 연락을 좀 안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흰소리와 젠 척으로 근황을 숨겨보려 했으나 결국 들통났고, 엄마의 모든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났다.
엄마도 이제 은퇴할 땐데 네 소식은 들을 때마다 항상 기분이 안 좋다.(인생이 맨날 이런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요? 지금 더 기분 안 좋은 사람이 누군데요?) 코 빠져 있지 말고 여기저기 찾아봐라, 어디 한 군데 갈 데 없겠나.(온데만데 코 잡아빠뜨리는 더러운 회사밖에 없어요. 누가 몰라서 안 찾아봐요?) 네가 언제는 그렇게 안 살았나?(이게 내 탓이에요? 난들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요? 이걸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 줄 알아요? 17년째 내 방에 와 본 적도 없으면서 뭘 아는데요?) 너만 힘든 거 아니다.(네네,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 안 하잖아요. 내가 먼저 내 얘기 하는 거 봤어요?)
희망이니 어쩌니 해도 내가 세상에 가장 취하고 싶었던 태도는 이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저렇게 말한 건 아니다. 엄마 특유의 '너만 힘드냐' 화법이 너무 싫어서, 참다참다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속엣말을 하면 꼭 당신 힘든 걸 더 크게 말하고야 마는 엄마의 말버릇이 30년 넘도록 지겨워서, 내가 입을 닫고 글로 말하기 좋아하는 것은 그래서 아마 어릴 적부터였을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발화된 적 없다. 글 속에서마저 괄호 안에 가두어져있듯이.
늘 고향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혼자서 10번 넘게 이사하고 10번 넘게 이직하며, 나의 마지막 위기의식은 '돌아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가 아니면 죽음. 여기가 절망의 끝. 비빌 언덕은 지옥 같은 여기뿐이었다. 나는 자주 비장해졌다. 그런 삶의 태도가 싫었지만,그건 내 삶의 엄청난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돌아갈 데가 없다는 건 어느 시점 이후부터 전혀 슬프지 않았다. 너무 멀리 온 것이다. 태어난 곳에 누군가는 오래 머무르고 누군가는 짧게 머무른다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것쯤은 불공평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에게 치열한 것이 자기 인생이므로 아무리 먼 곳도 말없이 혼자 다녀올 것이며, 평범하고 볼품없는 내 인생 역사를 어디 가서 절대 떠들어대지 말자, 고 다짐해 왔는데…….
나는 회사 안팎에 혼자 울기 좋은 의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둡고 구석진 의자에는 오늘도 역시 아무도 없었고, 그 사실이 익숙하고도 반가웠다. 불과 반년 전쯤 여기서 부동산 사기꾼들과 실성한 듯 소리를 지르고 싸웠던 기억이, 오자마자 생생히 되살아난다. 산전수전 다 겪어봤을 사기꾼들에게 말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었고, 전화는 말로만 싸우는 방식이어서, 나는 다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손이 그렇게 떨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스스로 옳은 판단을 내리고 결정해서 나아간다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 '죽고 싶다'와 '죽이고 싶다'를 무한 반복하며 '마지막 한 사람마저 나를 배신한다면 난 정말 끝이야'가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나를 배신해도 나는 괜찮다, 무너지지 않는다, 지지 않는다'라는 독기를, 이곳에서 품었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나를 여기로, 혼자 괴물처럼 싸워온 곳으로, 외로운 의자들이 있는 곳으로 꼭 불러내냔 말이다.
올해는 엄마의 은퇴이자 회갑이 있는 해다. 회사에서 잘리게 될 거란 걸 몰랐던 1월, 나는 제일 먼저 회갑 경조사금을 신청해서 출금 불가능한 통장에 묶어놨었다. 그런데 며칠 전 총무부에서 연락이 왔다. 퇴사 날짜보다 엄마 생신 날짜가 더 뒤라서 경조사금을 환수하겠다는 공지였다. 순간 아찔했으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즉시 내 생활비를 빼서 입금했다.
오늘은 첫 문장을 쓰기도 어려웠는데, 마지막 문장을 쓰기는 더 어렵다. 글을 쓰다 보니 또 피곤해졌다. 엄마 얘기를 쓴 건지 전세사기 얘기를 쓴 건지 헷갈린다. 나중에 고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