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카드와 퇴직연금 통장을 정리하고, PC 포맷을 신청했다. 내 앞으로 되어 있는 15개 장비의 사용자를 변경 및 반납했고, 남은 복지 포인트는 거의 다 떨어진 휴지와 간장을 사는데 썼다. 김과 냉동식품도 조금 샀다. 남은 휴가를 다 결재받아서 앞으로 실제로 6일만 더 출근하면 된다. 몇 가지 더 남아 있지만 거의 다 끝나간다.
일 때문에 바쁘고 짜증 나는 건 동료들인데, 피곤한 표정은 내가 다 짓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불합리와 비효율 속에서 어떤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하며 일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앉아있고 싶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촛불을 하나 켰다. 가만히 숨을 돌리고 있자니 불가항력의 피로가 잦아든다. 몸이 스르르 잠긴다. 의자가 잠기고, 집이 잠긴다. 내가 원하는 건 잠드는 것, 잠들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잠드는 것…….
피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전기장판을 켜고 몸을 뉘었다. 몸이 나를 살리기 위해 생각을 잠재우려 애쓰는 모양이었지만, 생각은 끝내 잠들지 않고 빠져나가 파르라니 구부리고 누운 내 몸을 바라본다. 평소 같지 않으면서도 뭔가 익숙한 감각. 이럴 때 몸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도 더는 못 참아,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깽판을 치는 거다. 이런, 안 되는데. 아프면 안 되는데. 두 달 전 심한 감기를 앓았을 때의 그 감각이다. 몸과 마음을 빨리 화해시키고 싶은 나는 초조하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움켜쥐는데, 손끝에 닿은 이불의 감촉이 부드럽다. 지난 12월 엄마가 보내준 이불이다. 여느 지방 엄마들처럼 반찬 한 번 부쳐준 적 없는 무뚝뚝한 엄마인데,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가 와서 노란색이랑 하얀색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며칠 뒤 내 자취방에는 생전 써본 적 없는 따뜻하고 풍성한 하얀색 이불 세트가 도착했다. 커다란 이불을 펼쳐 놓으니 나는 갑자기 작은 애가 된 것만 같았고, 비싸고 좋은 물건을 쓸 수 있는 자격이라도 생긴 것만 같았다. 새하얀 이불에 얼굴을 묻고 나를 다독였다. 잘 자라, 잘 자라…… 고집 센 아이는 끝까지 잠들지 않았다.
3시간 정도 누워 있다 몸을 일으켜 늦은 저녁을 먹고 글을 쓴다. 불현듯 많은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얼마 전 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했었다. 울면서 쓰는 글은 몸 어딘가를 꼭 아프게 했으므로, 고통의 실감은 몸의 소관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건 단지 내 마음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몸의 배려가 아니었던가 싶다. 붓과 펜이 나를 정신없이 데리고 다니며 글을 쓰게 한 게 아니라, 단지 내 마음이 글쓰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몸이 마음의 고통을 함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이불은 나를 잠재우기만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이불은 나를 일으키고, 밥을 먹이고 있었다. 잘 자라 뒤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문장. 잘 먹어라, 씩씩하게 살아라. 그건 17살 때 엄마가 내 책가방에 넣어둔 편지에 있던 말과 비슷했다. 밝고 씩씩하게 지내라. 전학한 학교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서 가기 싫다고 울먹거리던 나에게 무뚝뚝한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표현이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가 보낸 문장들을 읽지 못했나. 그때도, 지금도.
다행히 촛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그래, 처음이 아니다. 위기는 늘 있었다. 또 너무 쉬지 않고 달려왔나 보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이번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금세 기억날 듯도 하다.
"어둠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보다는 촛불을 밝히는 것이 좋아요."
(Better to light a candle than to curse the darkness -영어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