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백수요, 그대 내 인생 묻지 마오. 이제 나는 공식적인 '무소속' 상태가 되었다. 약 두 달 동안 고열에 시달린 것만 같다. 화르르 타올랐던 열이 식으면서 끓어올랐던 감정들도 흩어져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몇몇 감정들은 내 안에서 응고되어 동글동글 굴러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속이 썩 가볍지는 못하다.
퇴사 당일엔 그야말로 아무 목이나 끌어안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딸깍, 하고 자취방의 불을 켜는 순간이 유독 낯설고 쓸쓸했다. 늘 그래왔으면서 새삼스럽게 고독했다. 아시다시피 삶은 그런 날일수록 우리를 철저히 고립시킨다. 우리, 아니 사실은, 나를. 침대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데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시야가 아득해졌다. 아, 산다는 건 참으로 고독한 것. 자취방에는 산만한 도시의 소음이 낮게 흐르고, 슬픔인지 막막함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 풀린 안개처럼 떠 다녔다. 순간 침묵과 눈이 마주쳤다. 무심한 침묵마저 품에 끌어안고 싶었는데, 침묵은 참새처럼 푸드득 도망가버린다. 감히 아무것도 움켜쥐지 말라는 듯. 침묵조차 고독을 서늘하게 하는, 참 너무한 오후.
내 글이 '당신'과 '우리'라는 단어에 많이 빚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툭하면 당신을 불러내고 툭하면 우리로 둔갑하는 자기 혼잣말. 내 스스로에게 물을 것을 남에게 묻는 척. 가끔 누군가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글을 쓴다. 괜히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때로 동의를 구한다. 그러면 책상 맞은편에서 누군가 대답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참 바보 같다.
어제까지는 저것, 오늘부터는 이것. 이런 것들이 우습다. 나는 10년 넘게 미디어 업계에 몸 담으면서 무언가를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많이 해 왔다. 특히 방송가를 기웃거리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처럼 포장해서 판매하려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명예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에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미디어도 그런 사람들을 이용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지요. 그런데 픽, 나는 왜 그 순간 웃음이 날까. 어제까지는 저건데, 오늘부터는 왜 이거예요? 그럼 내일부터는 뭐예요? 나 같이 비뚤어진 사람은 일찌감치 이 업계를 떠나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TV에 나오는 웬만한 사람보다 매일매일 출퇴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보도자료 따위 필요 없는 삶. 의미 부여 같은 거 필요 없는 하루하루.
나는 나. 나는 그냥 나.
한 군데 오래 소속되어 있다 보면 '나는 그냥 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완전히 잊게 된다. 직장 이름이나 직업이 나의 일부는 될 수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 이 간단한 사실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사는 일이 참 거추장스러운데, 거추장스럽지 않게 사는 건 또 그것대로 여간하지가 않아서, 인생사 이것저것에 매달리며 애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자학이라도 해 보면 좀 나을까, 하고 쓸데없는 소리만 늘다 보니 참 멋없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나는 그냥 나. 무엇을 상실했든, 무엇에 상심했든.
그냥 쓰기. 무엇을 쓰든, 왜 쓰든.
그냥 살기. 삶을 궁금해하지 말고, 탓하지도 말고.
막상 퇴사를 하고 책상에 앉아 생각해 보니 내가 이전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시간, 답도 없는 질문들만 읊조리며 목하 빈 시간을 채워 본다. 그냥 쓰면서…….
[독자 이벤트] 꽃 한 송이 나누는 봄밤
독자님들과 함께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사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에 작은 이벤트를 기획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자격도 필요 없습니다. 그동안 제 얘기를 들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양식을 제출해 주세요. 부담 없이 와 주세요. 우리 친구 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