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바꿀까 고민하다가 글 쓰는 중간중간에 생각했던 유치한 문장, '안녕히 개새야'로 결국 돌아왔다. '안녕히 계세요'의 미묘한 변형형. 소심하고 은밀하게 발음하기로 했던 우리들의 지키지 못한 약속. 사탕처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씹기 좋은우리들의 은어.
퇴사 당일에 술에 취해 얼마간 글을 썼으나, 가장 취한 순간 처음부터 읽어보니 갑자기 한줄기 제정신이 번쩍 들어 못 볼 거라도 본 양 던져버렸다. 아, 순수한 미치광이가 되기에는 여전히 2%의 광기가 부족해. 미치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슬픔, 당신도 아시나요. 바로 그 2% 때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퇴사 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절망하고 저주하고 자책하고 도피하고 망각하고 해탈했다가 또다시 절망을 거듭하는, 일상 그대로의 모습을 기록했다. 생활면에서는 글과 술에 절어 살았다. 술이 받지 않는 몸이라 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끈기 있게 한심했다. 극단의 감정에 취하지 않기 위해 몸을 극단으로 끌고 갔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기대란 거 한 적 없지만, 하지 않음 그 이상으로 더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엇이 나를 들뜨게 했던 걸까. 달라진 건 없었다. 늘 친절했던 사람은 친절했고, 늘 불친절했던 사람은 불친절했고. 나는 수많은 얼굴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이런 건 해방이 아니다. 나는 구조 조정을 당하고 서럽게 떠나는 찌질한 한 명의 도시 노동자일 뿐. 앞날에 대한 축복은 기만이다. 너희가 나에게 자유를 누리라고 한다면 나는 나를 숨 막히게 구속할 것이며, 너희가 나에게 힘내라고 말한다면 나는 거대한 바위처럼 미동 없이 잠들 것이다. 속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절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앞으로 다가올 미래 또한 지금껏 내가 겪었던 숱한 절망의 변형형일 뿐이겠지. 이 삶을 살아가는 한 또 만날 것이다. 더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안녕히 계세요가 아니라 안녕히 개새야, 하고 전투적으로앞날을기약하는 것이다.
그들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회사가 그래야 돌아간다는데, 그들도 어찌하랴. 아주 약간 더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우리 모두 대도시의 노예 아닌가. 당신들도 똑같잖아. 이 대도시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잖아.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 믿고 싶다. 그러니 당신들도 최소한 내 탓을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부디 평안하시라.
저녁에 모든 단톡방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동안 병적으로 맞춰놨던 모든 새벽 알람을 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세상 속에서 사계절 발버둥 친 흔적들이 일상 여기저기에 묻어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 말 하나를 나에게 해주지 못해서, 오늘도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다. 나도 참 어지간하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이 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작 이 정도로 성장할 내가 아니다. 아픔은 성장의 조건이 아니다. 성장이 아픔의 결과다. 그것도 운 좋은 경우에만. 비극은 비극이다. 아, 여전히 속이 맵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까. 모르겠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회사들을 뒤로하고 잠시만, 아주 잠시만, 희망 없는 잠을 청해 보려 한다. 어차피 곧 모든 게 다시 시작될 테니까.
내 글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지 몰랐다. 배울 점은 없고 독기만 가득한 글이라 참 염치가 없다. 이런 내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어깨에 기대면서 버텨왔는데, 이기적이게도 내 어깨를 빌려주는 일은 아직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늘을 빌려주는 일이라면. 내 그늘은 넓고 아늑하다.
그동안 [실시간 퇴사로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쓰고 싶으니, 앞으로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전 또 한심하게 한잔 하러 가겠습니다. 울면서 돌아온 밤마다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신 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