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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게 나누어 준 것들

내친구 Suhai

by 세라

멕시코에서 만난 인연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친구, 이쯤에서 Su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이미 다른 글에서 여러 번 나왔지만, 아마도 몇 번 더 나올 것 같다.) 세르단에서는 많은 친구들을 사겼는데 그중 한 명이 그녀고, Puebla의 중심가에서 가까운 편인 그녀의 집에 며칠 머무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확한 이름은 Suhai지만 우리는 모두 그냥 Su(수)라고 불렀다.


수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중남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수는 한국어를 공부했다. 내 스페인어 실력이 그녀의 한국어 실력보다 쬐끔 더 나았지만 나보다 수의 영어 실력이 훨씬 좋아서, 여러 모로 우리 사이에는 통로가 많았다.


Su의 한국어 연습장


멕시코를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는 내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길 찾는 법이나 버스 타는 법, 말 거는 법, 물건 사는 법 등 사소한 생활 팁부터 여행 팁, 언어 팁, 뿐만 아니라 단출내기 여행자를 품어준 그녀의 가족들까지. 여행 초기에 그녀와 함께한 것은 행운이었다.


¡Bienvenida a México!
(멕시코에 온 걸 환영해!)


그녀는 내게 좋은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특히 뿌에블라는 그녀의 구역인 만큼, 번화가뿐만 아니라 근교의 소도시들까지 소개해 주었다. 아마 수가 아니었다면 작은 근교 마을들을 혼자 찾아갈 생각까지는 못 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저렴한 맛집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 얼마나 편리한가! 덕분에 뿌에블라에 있는 동안에는 비싼 레스토랑에 간 일이 거의 없고, 동네 곳곳의 맛집들을 찾아가 맛있는 따꼬들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내게 빈 방을 내어준 그녀는, 공짜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게 된 나보다 정작 본인이 더 기뻐했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 오히려 나중에 내가 호스텔에 머무른 날에는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거 알잖아, 왜 호스텔로 갔어" 하며 더 섭섭해했다.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하숙, 고시원, 원룸을 전전하며 마음속 어딘가에 공간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 나는, 누군가 집을 내어준다는 것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마지막에 살았던 단칸방도 여행 결정과 동시에 직장과 함께 시원하게 처분하고 왔기 때문이다.


Mi casa, tu casa. 나의 집은 너의 집. 이전에 이미 세르단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그녀는 또 한 번의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아마도 이것은 가장 멕시코다운 환대가 아닐까. 그녀의 집에 머무르며 우리는 친구를 넘어 '자매'가 되었고, 그녀의 집은 더 이상 '남의 집'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들의 엄마


집을 공유하는 것은 곧 가족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수는 사 남매 중 넷째였는데, 수의 엄마는 수를 '우리 집의 아기'라고 했다. 나와 수는 동갑이었는데 나는 첫째였다. 하여 내 삶에서 '귀염둥이' 역할은 꿈의 배역(?)이었으며, 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갑에 귀여운 막내 취급을 받는 그녀를 보니, 왠지 좀 부럽기도 했다.


국적도 문화도 다르지만, 수에게서는 사랑받고 자란 막내 특유의 긍정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집에 있는 동안에는 나도 '아기 친구, 아기'였다. 그녀의 가족들은 나를 딸처럼, 동생처럼, 입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일찌감찌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나에게 막상 막내 역할은 생소한 것이었지만, 낯선 곳에서의 따뜻한 보살핌은 나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Chula! ¡Chido!


수 덕분에 또 한 명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언니와 오빠는 이미 독립했기 때문에 집에 빈 방이 몇 있었던 것인데, 그중 하나에는 수의 친구 데닌세(Denninse)가 살고 있었다. 수네와 데닌세네 가족들은 서로 친한 사이였다.


데닌세는 와하까(Oaxaca)의 고향 집에서 떠나와 이곳 수의 집에서 지내며 막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여성스럽고 수줍은 편인 수와는 달리, 데닌세는 작은 몸짓 하나에도 스웩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쿨한 매력이 묻어났다. 그리고 내게 출라!(Chula), 치도!(Chido) (출라다, 칭곤, 칭고나 등등 이런 종류의 변형형이 끝도 없다) 같은 멕시코 슬랭들을 잔뜩 가르쳐 주었다. 모두 영어로는 'Cool', 'Nice' 같은, 우리 말로는 '짱이다', '쩐다' 랑 비슷한데, 데닌세의 발음과 억양은 정말 맛깔났다. 그 뒤부터 그녀들과 다니면서 음식이 맛있을 때도, '치도!' 사진을 찍고 나서도 '치도!' 하며 멕시칸 스페니쉬를 체득해 갔는데, 초기에 말을 뗀(?) 덕분에 이후 멕시코 친구들과 더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굉장히 쉬웠다. 우와! 쩔어!를 말하고 싶은 순간 치도, 칭곤, 출라, 출로, 칭고나 등등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외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곳한 성향의 수는 이런 종류의 말들을 잘 쓰지 않았다. 슬랭을 아무렇게나 남발하는 건 무례해 보일 수 있으므로 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fucking처럼 강조의 뜻이 있어서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같이 사용되는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멕시코 친구들을 알게 될 때마다 슬랭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는데, 이는 멕시코 여행의 묘미 중 하나였다. 스페인어를 접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친구들이 나올 때마다 소개하도록 하겠다.)


No nos olvides cuando vuelvas a Corea
(한국에 돌아갔을 때 우리들을 잊지 마)


수와 데닌세는 내게 말했다. "멕시코는 너의 집이야(México es tu casa), 한국에 돌아갔을 때 우리들을 잊지 마(No nos olvides cuando vuelvas a Corea)"라고.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이었다. 친구들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나를 잊지 마!


데닌세와 수는 서로 좋은 친구였고, 또 내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녀들이 보여준 우정은 잊으려야 잊힐 수 없는 것이었다.


데닌세의 꿈은 옷을 직접 디자인해서 자기의 가게를 차리는 거라고 한다. 수도 이를 돕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녀들의 옷가게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 데닌세가 디자인한 예쁜 멕시코 옷을 입고 '치도!'를 외쳐줄 날이 오기를.



집도, 가족도, 친구도 아낌없이 나누어 준 멕시코 친구, Suhai. 그녀는 한글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한국 노래, 한국 화장품에도 무척 관심이 많다. 이런 그녀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녀가 얼른 진짜로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따꼬 대신 떡볶이를 앞에 두고 끝이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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