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독자와 함께한 봄밤

#독자이벤트 후기

by 세라

[독자와의 만남] 무사히 잘 치렀습니다. (짝짝짝)


무턱대고 독자와의 만남을 주최해 놓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모임이란 모임은 다 피해 다니는 의뭉스러운 은둔자인 제가, 회식 자리면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홀짝이며 은근히 즐기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제가, mbti 검사에서 i가 95% 이상 나오는 완벽한 내향인간인 제가, 이런 걸 하리라고는……

i 97%...


나가서 한 마디도 못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에 온통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하필 만남 3일 전부터 감기 기운이 몰려오는 데다, 장소 예약부터 모임 내용까지 '아, 이벤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일을 벌인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죠. 모임 날짜와 장소가 성큼성큼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서 내는 목소리마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습니다.(으엉엉)


뜬금 절 사진. 모임 장소 가는 길에 조계사가 있더라고요? 잠시 불자 모드(!)로 변신. 부처님, 제발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에 이런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작가는, 쓰는 인간은 독자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말하는 인간으로 대면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어쩌면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과 다른 존재인 걸까?


제가 영웅이란 건 당연히 아니고요, '글쓰기'와 '말하기' 간에 크나큰 괴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글쓰는 세라'로 남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와 자책이 물밀듯이 몰려왔단 겁니다. '말하는 세라'는 아무래도 좀……(생략)




이 모든 걸 뒤집을 용기를 준 것은 당연하게도, 독자분들에 대한 궁금증과 유대감이었습니다. [실시간 퇴사로그]는 매일매일 써서 올린 초고 상태의 일기였기 때문에 미흡한 문장들 속에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실려 있었고, 지속적으로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진심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 달 반동안 약 61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실시간 퇴사로그]
브런치가 활력이 되어 준 덕분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용케 씩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걱정 많은 것 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느긋한(이상한) 돌연변이형 인간인 저는 일주일이 안 남은 시점까지도 장소를 못 정했고, 3일 전에 닥쳐서야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작은 꽃들과 직접 찍은 사진.


Remember,

i am me, you are you.


사진을 고르다 즉흥적으로 문구를 새겼습니다. 내가 나이듯, '너는 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몇 해 전 직장과 집을 잃고 심하게 방황할 때 "무엇을 잃었든 상관없어. 너는 그냥 너야. 넌 그냥 재밌는 애야. 우리 집에 놀러 와. 따뜻한 밥 해 줄게."라는, 친한 언니가 저에게 해 준 말이 떠올랐거든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때론 놓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무심코 흘렸던 것들을 주워서 건네주는 존재들이, 감사하게도 제 곁에는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주워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모르게 중요한 걸 흘린다면요, 누군가의 부모, 자식, 연인, 팀장, 팀원이 아닌, 그리고 어떤 직업명으로서의 당신이 아닌, 당신은 그냥 당신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며 괜찮다고요. 수식어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꾸밈 없이


너는 너야.


꽃 한 송이 손에 들고 봄밤을 함께 걸었던 여러분들, 왠지 다들 내면에 설탕 한 스푼씩 톡톡 뿌려놓은 사람들 같았습니다. 저는 좀 방방 들떠 있었는데요, 그럴수록 말수가 적어지는(뭐든지 반대로 하는) 짱구형 인간이라서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작고 느리고 어설픈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써 보는 독자 피드백]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게 10000000…∞배는 나은 사람인지라 이렇게라도 못다 한 말을 전합니다.


-제 글을 읽으려고 브런치를 깔았다. >흐엉, 감사합니다. 큰절 올립니다.

-글을 읽다 밤에 울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어요, 그날밤 우린 같이 울었겠네요.

-저는 이병률 감성이고 싶다고 주장했으나, 독자분이 단호하게 "No! 세라님은 최승자 감성인데요?" >몽글몽글하고 싶은데 자꾸 호전적으로 변하는 저... 이건 각박한 세상 탓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회사 직원들과 돌려봤다. >부끄럽습니다. 근데 사람 함부로 자르는 회사가 왜 이렇게 당연한 듯 만연한가요... 빡칩니다.

-매일매일 올라오던 글이 안 올라온 날,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했다. >저와 내적 유대감이 최고조에 이르신 사랑스러운 분... 그러나 저는 그 시각 한심하게 '밖술'중이었고...(사죄)

-PD인데 실제로 보니 작가처럼 생겼다. >이 말 평소에 많이 듣..

-단순히 감정을 해소하는 글이 아니라 구조조정, 동료평가제, 전세사기 등 사회적 문제가 함께 녹아 있어서 좋았다. >본의 아니게 현대 사회에서 제공(?)하는 화제의 아이템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비명)

-같은 업계의 선배로서 미안하다. >이 말 듣고 완전 울컥했어요. 처음 보는 '여자 감독' 선배님이 저를 보러 나와주셨습니다. 우와 우와.

-같은 업계의 후배로서 업계의 문제에 매우 공감하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너무 반가웠어요. 더 많이, 더 같이, 욕하고(ㅋㅋ) 고민해보고 싶어요. 또 만나요!

-한 시간 동안 고민해서 댓글을 쓴다. 하루종일 수정한다. >이 정성,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덕분에 평생 없던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겉으론 나약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단단한 사람 같다. >저는 겉도 속도 물렁물렁한 사람인데요, 앞으로는 맛있는 '겉촉속바' 스타일로 가 볼게요.

-파김치와 연어장 반찬 선물 >가끔 자취한다고 김치를 선물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 그때마다 냉장고 앞에 앉아서 찡찡 울어요. 김치는 보통 엄마가 주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더 짠하고 귀하고 애틋해요.

-책 선물 >덕분에 책 부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쌓인 새 책들 보면 제가 마치 상큼한 과일 주스라도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더 분발해서 읽고 쓰겠습니다!



남편 퀵으로 아름다운 꽃과 손편지를 보내준 친구 H에게 특별히 감사의 하트를

(제가 mbti의 J라는 걸 끝없이 의심하는 저의 27년 차 파워J 친구)


독자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도 '글의 힘'을 정말 많이 느꼈고, 글쓰기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한 태도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량으로 지내다 서울에서 쫓겨나지만 않는다면요, 각자의 자리에서 파이팅 하며 안녕히 지내시다가 some day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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