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위의 그대들, 누구신가

퇴사, 그 후

by 세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늦은 밤, 클리셰 같은 한 장면이 핑 뇌리를 스쳤다.


#Scene

도시 한복판,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 신호가 바뀌자 다들 앞만 보고 바삐 건너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바람 같은 잔상이 남고, 도시의 색깔들이 어지러이 뒤섞인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을 60초라고 치자. 60초의 신호 안에 들어온 랜덤의 도시인들, 그대들 누구신가. 한 번도 인사한 적 없는 옆집 사람처럼 가깝고도 먼 '남'이신가. 아니면 비슷한 고민으로 이 도시를 살아가는 또 다른 '나'이신가. 허공을 가로긋는 저 잔상은 무엇인가. 들켜버린 바람의 기다란 몸인가. 저마다의 답답한 한숨이 합해져 만들어진 거대한 무풍의 한숨인가.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허은실,「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가 아니다—mute」 中


지구 반대편에서 지진이 났든 전쟁이 났든 우리는 뉴스를 보며 당장 점심으로 뭘 먹을까 따위를 고민하며 산다. 지구 반대편까지 갈 것도 없다. 바로 옆에 있는 타인에게도 그렇다. 타인의 고통은 먼바다의 풍랑주의보. 나 하나 살아남기도 벅찬 세상에서 남 걱정 하게 생겼나. 그것이 아마도 하루에도 여러 번 랜덤의 60초를 공유하는 우리들이 서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일 테다.


최근 퇴사 일기를 쓰고 여러 독자분들과 소통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랜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다른 업계 사람들의 다양한 퇴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의 이야기가 너무도 닮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비정규직과 저임금, 사내 정치와 구조 조정의 총알받이, '을'의 서러움, 인간 관계의 어려움, 입사 전후가 다른 취업 사기, 이쪽 지옥에서 저쪽 지옥으로의 이직, 직업의 귀천과 명예에 대한 집착, 견디다 못해 어느 순간 가슴속 사표를 만지작거리는 자신의 모습…… 사람들은 과거에 선택하지 않은 미지의 길을 걸어가는 또 다른 '나'에 다름없었다. 내가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이 험로만큼이나 타인이 걷는 길 또한, 또 다른 종류의 험로일 뿐.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가지 않은 길'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Scene

초록불이 깜빡거리는 어느 순간, 예기 서린 바람이 사람들의 뒷목을 스친다. 길 끝에서 누군가 먼저 뒤돌아본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가 뒤돌아본다. 눈과 눈이, 눈과 눈과 눈이, 끝없이 마주친다. 아는 얼굴, 익숙한 얼굴, 소름 끼치도록 같은 얼굴…… 아, 그것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다.




나는 언젠가 이렇게 메모해 둔 적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안하길 나는 이기적인 방식으로 기도한다. 그들로부터 지속적인 기쁨을 얻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즐거운 공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결국 나를 위해서다. 또한 나의 고통을 복기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고통을 헤아린다. 혹독했던 시절의 나처럼, 그들이 나를 놓아버릴까 봐 조바심 내며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한없이 한없이 이기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돌이켜보면 고통의 연대든 사랑의 연대든 모든 건 애초에 이기적인 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공감이란 '나'에서 출발해 '너'에게 도착하는 일방통행이므로. 전혀 모르던 사람인 '나'와 '너'가 '우리'가 되어 눈을 마주치고 속내를 터놓고 서로를 걱정하는 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살아봐도 살아봐도 확신할 수가 없어서 답도 없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삶을 고민해 보는 일, 그냥 한번 씨익 웃고 손 마주 흔들며 헤어지는 것만으로 이상하게 기꺼운 일. 그렇게 간신한 순간들이 유효한 삶을 실시간으로 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혹시 당신도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60초라는 유한한 신호 안에 함께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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