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전부였을 세상의 작은 절망을 헤아리며

Prolog_ 쓰자, 쓰지 말자, 쓰자

by 세라

쓰기로 결심하다


몸이 으슬으슬한 밤이었다.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졌다. 나도 모르게 멈춰버리면 다시는 못 걷게 될 것만 같던 그 밤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가 느닷없이 덮쳐온 슬픔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보통 걸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육중한 슬픔. 머리카락이 자라고 또 자라서 세상 모든 웅덩이들을 적셔버릴 것만 같았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나 혼자 빗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새카맣고 눅눅한 수초처럼…… 휘휘…….


왜, 라는 의문사를 적자마자 알았다. 그것은 내가 한때 '울었다'라고 쓴 문장이, 글이 아니라 정말로 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글, 물, 끝나지 않고 입안에 계속 머금게 되는 글자들. 머금어진 채 엉켜 있는 것들…… 왜?


지난 2월 28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로 고통받던 30대 청년이 '최근 직장을 잃은 데다 전세보증금 7000만 원까지 대출 연장이 거부되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어둠 속에서 마른 근육질의 문장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시가 아니라 보도 기사인데도, 자꾸만 시처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나 내 앞으로 밀려왔다.


누구세요, 누구신가요? 거기 누구 있나요?


어떤 영혼이, 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봄밤 그윽한데 혼자 빗속에서 떨고 있는 존재. 어렴풋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 역시 무수한 밤을 머리카락이 길어진 채로 걸었을 것이다. 걷다가 걷다가 어둡고 깊은 웅덩이 앞에서 문득 멈춰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못 걷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였다……


친구였다……


나였다……


순간 결심했다. 써야겠다. 누가 아무리 써보라고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던 글을, 이런 식으로 써보기로 한다. 나는 내가 겪은 전세사기에 대해서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쓸 수 없었다


전세사기를 해결하고 한숨을 돌린 지 겨우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회사에서 구조 조정을 당했다. 계획에 없던 퇴사를 앞두고 2배로 폭등한 대출 금리를 감당하며 하루하루 맨 정신으로 버티는 게 고문 같았다. 그러던 중 이 무거운 소식을 접했다. 만약 내가 전세사기를 운 좋게 해결하지 못했다면, 기사 속 청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한 끗 차이였다.


어떤 이는 겨우 7천만 원 때문에 목숨을 끊냐고 말한다. 참으로 잔인하다. 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누군가의 '전재산'은 그에게 '전부'다. '전부를 잃었다'는 점에서 금액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그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도 죽고 싶었다. 전세사기를 당해본 사람이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주제를 한사코 길게 쓰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나는 운 좋게 해결된 케이스여서 소위 '본게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수 억의 거금을 대출받기 전에 전조 증상들을 눈치챘고, 계약금을 포기하고서라도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이후 계약금을 받아내는 지난한 싸움을 수개월동안 겪었다. (일반적으로 겪는 소송과 경매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특정의 위험은 물론이며,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가 꺼려졌다. (해서 이름, 지명 등의 개인적이고 세부적인 정보는 바꿔서 쓰기로 한다.) 세 번째는 혹시 사기 업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될 경우를 염려해서다. 그러나 전세사기는 심각하게 흔한 데다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어서, 나의 해결 과정은 사기 수법을 발전시키는 데는 무방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 시기를 되돌아보는 일이 정신적으로 괴롭기 때문이다. 당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가면을 쓴 채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면서, 하루하루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까마득한 절망 속에서 살았다. 스스로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한 가열한 비난과, 미흡하고 엉성한 대처와, 싸우면 싸울수록 나약하고 무력해지는 이 모든 깡통 같은 현실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순전히 슬픔 때문이다. 전세사기에 대한 정책 정보나 예방 팁은 기자나 부동산 전문가가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한 슬픔과 절망의 힘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내 슬픔의 힘으로 누군가에게는 전부였을 세상의 작은 절망과, 너무해도 한참 너무한 세상을 견디지 못한 무고한 슬픔을 기리고자,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 일천한 경험을 풀어 보고자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떤 세계에 발을 잘못 디딘 새로운 피해자들이 깡통 매물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쓰기로 했다가 쓰지 않기로 했던 글을,

쓰다


여기까지 써 놓고도 나는 한참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여전히 내면 깊은 곳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나의 슬픔으로 타인의 슬픔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너무도 터무니없고 주제넘고 부질없는 것 같았다. 지나간 일을 잊고 소박한 자연을 노래하고자 했다. 구김 없는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어젯밤 잠들기 전, 또 하나의 기사를 접하고 말았다.


지난 15일, 전세사기 피해자 20대 청년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 이후 최근까지 너무나도 괴로워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오늘, 용기 내서 서랍 속에 묵혀뒀던 이 글을 올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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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na.co.kr/view/AKR2023041503860006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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