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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거리 #Atlixco

내게 이유를 묻지 마세요

by 세라

나는 자꾸만 뒤돌아 보았다. 친구들이 저만치 멀어져 가면 그제야 종종걸음으로 따라 잡기를 여러 번, 마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되어 기어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거리에 더 머무르고 싶어


Avenida Hidalgo, Atlixco, Puebla, México.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ㅡ 왜 멕시코로 골랐어요?


그럼 나는 면접에 임하듯 대답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ㅡ 라틴 문화도 경험해보고 싶었고요, 멕시코 음식도 좋아하고요, 콜로니얼 거리도 가보고 싶었고요, 평소에 공부하던 스페인어도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러고 나면 의례 면접이 끝난다. 나무랄 것 없는 모범 답안이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엔 이유 모를 답답함이 남아 있다.


그냥요


실은 '그냥'이라는 대답이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대화가 끊기는 같아 매번 그러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그냥 그랬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이 거리에 머물고 싶었던, 그 직관적인 충동처럼 말이다.



풍경 한 장으로 '그냥'이라는 말을 대신 전하고 싶다.


더 머물고 싶음에 이유는 없었다.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고, 나는 이에 끌리는 것. 다만 그것뿐.



그러니 이유를 묻지 마시라. 왜 그 거리에 더 머무르고 싶었는지, 왜 그곳을 선택했는지, 묻지 마시라.


우리말에는 있는 표현이 다른 언어에는 없어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이, 몇몇 '마음'의 언어는 '말'로 번역할 수 없다.


나는 대화의 면접을 망치기도, 흐름을 끊는 사람이기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진짜 이유를 묻는다면, 아무래도 '그냥'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냥'이라는 말은 너무나 홀가분하다. '빈 단어'다.

없음을 표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존재다.

어쩌면 말보다 마음에 더 가까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Atlixco라는 마을은 순전히 Puebla에 살고 있는 Su와 Xochitl 덕분에 알게 된 곳이었다. 이날 버스 터미널에서는 줄이 무척 길었는데, 한 택시 아저씨가 만족스러운 딜을 제안해서, 함께 Atlixco까지 훌훌 달려갔다. 이런 식으로 택시를 타는 건 좀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동네 주민들과 함께였기에 걱정 없이 따라갔다.



자그마한 도시답게 calo도 아담했다. 초록 풀밭 위로 딱 좋은 온도의 이 내려앉았다. 대도시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딱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여유롭게 쏘깔로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 거리로 이어지는 시장을 발견하고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여자들만의 쇼핑의 즐거움이었다. 셋이 돌아다니면서 주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이것저것 체험해 보기도 했다. 소치뜰은 이곳에서 나에게 조그만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



Puebla 근처에는 Zacatlán(사까뜰란)이라는 사과 마을이 있다. 근교 여행으로 Chignahuapan(치그나우아빤)과 함께 꽤 인기 있는 곳인데, 가기 전 조사를 했을 때 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결국 일정이 바뀌어 그곳들에 가지 못했다.


Puebla에서는 원래의 계획이 가장 많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됐고, 가장 다채로운 들을 보았다. 잃어버린 자리에는 더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그것은 여행의 과정이자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 마을 대신 이곳 Atlixco에 오게 되었는데, 가까운 사과 마을의 특산품도 오리지널 그대로 맛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근교 도시로 나들이를 나온 수와 소치뜰도 즐거워했다. 우린 사과 주스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맛보며 당일 여행을 만끽했다. 가판대에는 반쯤은 악기, 반쯤은 장난감 같은 아기자기한 토속 악기들을 팔고 있었는데, 평소 워낙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나는 한참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마침 수명을 다한 머리띠를 하나 샀다. 멕시코 자매의 만장 일치로 기념품 셈 치고 기분좋게 구매했다.





쏘깔로에선 퍼레이드가 한창이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알록달록한 인형들을 따라다니며 꺄르르 웃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졌다. 우리는 저렴하고 풍성한 멕시코 스타일의 저녁 식사와 광장에 펼쳐지는 마리아치의 공연을 즐기고 Puebla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메뉴(Menú del día)로 시키면 50페소(3000원)정도에 충분한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이 작은 도시의 아름다운 거리들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혼자 있었다면 아마 한참이고 마음을 빼앗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 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전망대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이런 분위기가 더욱 평화롭게 이어진다고 했다. 채 다 보고 오지 못한 꽃의 거리(Calle de las flores)와 산 미겔 언덕(Cerro de San Miguel)은, 내 마음속에 Atlixco라는 이름의 메모를 남겼다.


또한 실제로 Atlixco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꽃이고 이 축제 시기에 맞추어가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멕시코 Puebla 근처에서 시간이 여유롭다면 이 소도시를 추천하고 싶다. Puebla보다 훨씬 작은 도시지만,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Pueblo Mágico'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다녀 가기에 불편함은 없다. 이곳의 꽃 내음 가득한 거리 속에서 두세 걸음쯤 마음을 빼앗겨 보는 것은 결코 아깝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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