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냥 계약금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깟 돈, 그냥 인생 수업 비용이라 여기라 했다. 물론 나를 위해서 해 주는 말이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결국 가장 힘든 건 나고, 그렇다고 소송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싸움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요구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은 그것을 고집이자 치기라고 불렀다.
이게 인생 수업이라고? 삶을 이런 식으로 배워야 한다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정함은 공짜였지만, 세상의 더러움과 비정함은 수억 원이라 한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라 한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사기꾼들한테 배우고 싶은 인생 따위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인생 수업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배우는 인생의 진실 따윈 필요 없었다. 싸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
그때의 나는 정상이었을까. 밤이 되면 내 인생 전체가 불구가 된 것 같아서 콱 죽고 싶다가도 아침이 되면 이 나쁜 새끼들 가만히 안 둘 거야, 절대로, 인생 왜 그렇게 살아? 하고 전의를 불태웠다. 죽고 싶다와 죽이고 싶다로 이분된 세상.그 사이에서 내내 가슴에 구멍이 난 기분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고 일하고 야근했다. 인생은 이어졌다.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우울도 절망도 조절되는 것이었다. 경악스러웠다. 나는 정상이었다.
어른들이 살다 보면 사기 한 번씩은 다 당해보는 거라고, 괜찮다고, 그렇게 잃을 때도 있는 거라고 했다. 결국 다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씩은 당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기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거잖아요! 바로 그 생각이 사기꾼들의 자양분이라고요! 그 말을 사기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나는 '그렇게 잃을 때도 있다'가 아니라, '그렇게 잃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르고 달래고 두드려 패도 안 괜찮은 걸 괜찮다고 말하기 싫었다.
피해자들을 따돌린 사기꾼들이 어디선가 순진한 세상을 비웃으며 의기양양하게 살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 치가 떨렸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참을 수 있는 거지? 단 한 푼도 양보할 수 없어서 나는 차라리 인생을 다 걸어버려야만 했다. 내 안에 그토록 섬뜩하리만큼 극단적인 아이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이였는지, 아니면 어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인생 수업 비용이라고 토닥여주는 말을 흘려들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청나게 꽉 막혀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포기하는 건 더 어렵다. 싸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 건 더 어렵다. 짊어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내려놓는 건 더 어렵다.나는 더 쉬운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순진해 빠진 고지식함, 뼛속 깊은 환멸, 불나방 같은 무모함 뿐이었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비정함으로, 내 삶의 선의에 다정해져야만 했다. 그것은 삶의 위기를 버텨온 순간순간의 결기라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그게 내 삶의 태도가 되어버린 것 같다.
국가행정기관은 알아야 한다. 당신이 피해자를 포기했을 때도, 피해자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더없이 확실한 불신으로 끝없이 문을 두드렸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동시에 그들의 도움 따윈 필요 없는 방법을 찾기 위해 또 하루를 살았다. 파이팅이라는 평범한 말로 또 하루를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