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분들과 연대하다

전세사기 6화_ 연대

by 세라

모든 방법이 실패로 돌아갔다. 가짜중개사 프랭크에게 따지고 부탁하기, 행정 기관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합법적인 조치를 요구하기 등. 나를 도와주었던 중개사 브라더 씨는 구청의 답변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일을 안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혹시 사기꾼들과 뭔가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했다. 프랭크가 자신 있게 구청에 가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싶었다. 프랭크의 태도는 부탁에서 협박으로, 협박에서 회유로, 이 논리에서 저 논리로, 수시로 바뀌었다.





그 무렵 나는 전세사기 피해자 카페에 들어가서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혹시 공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분들이 있다면 신상이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 카페에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기꾼들도 많이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새벽 3시쯤 글을 올리자마자 한 분이 쪽지로 글을 지우라고 알려주시고 카톡방에 따로 받아주셨다. 나와 임대인은 다르지만 같은 동네에서 사기를 당한 분들이었다. 그 방에서 대출 거절 특약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특약사항]

임대인은 임차인이 전세대출 미발생시 계약은 해제하고 계약금은 전액 반환하기로 한다. 단, 임차인의 개인 사정, 단순변심이나 신용하락 및 대출 미협조로 인한 대출불가는 반환하지 않는다.


대출이 안 되면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한 번도 억 단위의 금액을 대출해 본 적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에 계약 시 이 항목을 거듭 확인했지만, 내 신용 점수는 높은 편이었고 프랭크는 무조건 된다고만 했었다. 전세 사기에 관해서는 부동산 업자나 금융, 법률 관계자보다 오히려, 현재 싸우고 계신 분들이 더 전문가였다. 동네와 시세, 평수와 방수 등을 보더니 시중 은행에서 대출을 시도하면 절대 안 해주는 집이라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대출 거절' 증거를 모으러 돌아다녔다.




증거를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심사에 들어가야 대출이 승인나든 거부되든 하는 건데, 대부분의 시중 은행에서 아예 심사조차 넣어주지 않았다. 내 신용 조건 때문이 아니라, 신축 빌라의 '높은 보증금'과 '근저당권' 때문이라고 했다. (근저당권 말소 조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 된다고 함.) 그러나 대출을 거절한다는 내용의 '공식 문서'가 없어서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불친절한 직원, 방어적인 직원, 대출에 대해 잘(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연차를 써가며 온 동네 은행 투어를 해야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에 이런 어려움을 이야기하니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은행 직원 명함을 받든, 직접 통화를 해달라고 하든, 녹음을 하든, 아님 사정을 얘기하고 심사라도 넣어달라고 매달리라고 했다. 대출을 거절했던 은행들을 처음부터 다시 돌았다. 하지만 직접 통화는 어림도 없었고, 대출이 안 된다는 대화 내용을 녹음하려고 양해를 구했지만 나를 수상하게 여기고 쫓아내다시피 하는 곳도 있었다. 같은 은행 지점에 세 번이나 다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정사정하다 그나마 친절한 직원을 만났을 때는 거기가 은행인 줄 알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진상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중에 가서는 그냥 동의를 구하지 않고 거절 내용의 대화를 녹음했다. (내 목소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법적 문제는 없다.) 그렇게 극기 같은 노력으로 하나씩 하나씩 증거를 만들었다. 그 증거들을 모두 자막 처리하고 영상으로 제작해서 날짜별 시간별로 정리해 두었다.



프랭크와는 싸우면 할수록 미궁 속에 빠졌다. 상황에 대한 내용은 모두 전달했다. 일단 '정상적인' 1금융권 시중 은행에서는 모두 대출을 거절했다.




깡통 전세가 무조건 전세 사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있다. 만기 이후 다른 세입자를 구해서 돌려 막기에 성공하거나 전세보증보험(HUG)에 가입되어 있다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깡통 전세인 걸 알고도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어떻게 들어가겠는가. 4억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2년을 살 수는 없었다. 그리고 HUG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그들만의 블랙리스트(임대인, 특정 빌라 등)가 있다. 꼬투리를 잡자면 방법은 무한하며, 빠져나갈 구멍은 수없이 많다. HUG에 가입된다고 해서 100% 믿으면 절대 안 된다.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에서 많은 정보와 큰 힘을 얻었다. 나에게 도움을 주신 피해자 분들은 지금도 치열하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름, 지명, 금액 등의 세부적인 정보는 특정을 피하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카톡 이미지 또한 캡처본이 아니며, 실제로 오고 간 대화를 토대로 재구성해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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