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 원의 뒷돈이 걸린 집이었다

전세사기 8화_뒷돈

by 세라

계약 한 건당 '5000만 원'


내가 계약한 집은 5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뒷돈이 걸린 집이었다. 이 사실을 안 것은 중개사 브라더 씨 및 도움을 주신 부동산 업계 분들의 크로스 체크를 통해서였다.


50만 원도 아니고 500만 원도 아니고 5000만 원이라니, 아찔하다. 나는 전재산을 다 털리고 천 원짜리도 들었다 놨다 하며 사는데, 사기꾼들은 수천만 원을 나눠먹고 놀고 있었다. 그러니 싸구려 소고기쯤 뭐 대수였을까, 잠시만 양심 갖다 버리고 어리숙한 애들 현혹시키면 되는데. 당일날 기를 쓰고 계약을 시키려고 하던 프랭크의 작태를 생각하면 지금도 혈압이 오른다. 아등바등 사는 애들이 만만해 보였겠지. 내가 절망과 자학 속에서 익사해갈 때, 너희들은 드디어 제대로 된 수도꼭지를 골라서 황금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겠지. 이러니 돈 없고 집 없는 사람이 피해는 다 떠안고, 가진 사람과 사기꾼만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들키면 불법, 안 들키면 합법


이 뒷돈을 '리베이트'라고 부른다.


리베이트는 건축주가 건물을 분양할 때, "내 집 잘 팔아줘서 고맙다"는 차원에서 얹어주는 일종의 '수고비' 개념에서 출발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관행처럼 흔한 것이고, 그래서 이 돈을 주고받는 일은 죄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베이트의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전세 사기에 악용되기까지, 법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매매 계약과 달리 전세 계약에는 '중개보수료'라는 정해진 법정 수수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들키면 불법, 안 들키면 합법인 실정이다. (딱히 불법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리베이트는 전세 사기의 악성 순환 고리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구심력이다.


건축주(임대인)가 집을 짓고 팔 때 일일이 팔 수는 없으므로 컨설팅 업체(분양 대행사)를 경유한다. 이 단계에서 업체는 감정평가사를 통해 전세가를 부풀려 주고, 거짓 전세가를 보증 보험에 가입시켜 준다. 또 프랭크 같은 가짜 중개사부동산에 매물을 홍보하고, 뤼팽 같은 대출상담사은행을 통해 대출이 가능하도록 연결해 주며, 빈털터리 바지 사장에게 푼돈을 주고 소유권을 매도해 준다. 이 과정에서 '빌라 가격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말 그대로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가격을 '맞춰' 준다.


완벽한 사기극에 한번 걸려든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연히 걸려들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대출을 실행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기꾼들에게 리베이트를 기부하고 산 채로 전셋집에 인생을 매장당하게 된다.



당신이 모르는 R의 세계


Rebate, 즉 R이라는 기호로 통용된다. R 1개는 리베이트 100만 원을 뜻한다. 보통 1개, 5개, 10개 이런 식으로 개수로 불린다.


위 이미지는 실제 캡처본을 토대로 가상의 정보로 편집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 전용 어플(유료)에서 내가 계약한 집을 뒤져보니 엄청난 리베이트가 걸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보이시는가, [R50]. R이 50개면 5000만 원이라는 뜻.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는 브라더 씨도 50개는 처음 본다고 했다. 평균적으로는 10개 이하고, 적게는 3개, 많게는 20~25개, 잘 안 나가는 집일수록 빨리 팔아달라는 차원에서 높게 주는 임대인도 있다고 한다.


위와 비슷하게 분양 정보가 적혀있는 '분양 속지'를 들춰 보면 R 대신 문서 곳곳에 숨어 있는 별(★)이나 하트(♥) 기호의 개수를 합해서 리베이트 금액을 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표기법은 불법 사이트의 도메인 주소처럼 그때그때 바뀐다고 한다. 일반인인 나에게는 마치 암호처럼 느껴졌다. 저런 어플이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그 뒤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방법들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계약 당일에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에 우연히 얻어걸린 분양표 사진을 확대해 보니 끝 부분에 R50이라고 적어놓은 흔적이 보였다. 소름이 쫙 돋았다.



피해자의 세상은 텅 빈 깡통


전세 사기의 세계에는 양심을 버린 수많은 브로커들이 유기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초기 단계에 깡통 전세를 발견한 덕분에 이 브로커들이 얼마나 뻔뻔하고 염치없는 인간들인지 두 눈으로, 몸소, 싸워가며 확인했다. 나는 사기 예방 정보도, 피해보상 정책도 중요하지만 강력한 처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중범죄를 저지르는 건지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들은 그저 계약을 시켜주고 수고비를 좀 많이 받았을 뿐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삶에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사기꾼들을 저지할 법도 정책도 없었고, 신이나 하늘은 더더욱 없었다.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다. 누가 이런 집더러 깡통 전세라 불렀나. 참 잘도 지었다. 잘 살아보려는 희망이, 부조리한 현실이 더 깡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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