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최종 결판(2)

전세사기 12화_결판

by 세라

앞의 내용에서 이어집니다.


스티븐: 나는 계약자 봤을 때 딱 거짓말하는 거 알았어. 우리는 일을 오래 해서 보면 다 알아. 지금도 이 자리에 와서 절대 죄송하다고 안 하잖아. 법적 대응? 그쪽에서 100% 져. 그럼 이 집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은 다 바보야?


친구2: 저희도 못 믿는 게 아니라, 요즘 전세사기 한 두 개가 아니잖아요. 당장 사기 당하면 어떡해요?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이 다 바보는 아니잖아요. 저희도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스티븐: 전세 사기는 내가 설명을 해드릴게. 그거 잘 모르잖아요. 우리도 그거 피해자야. 방송에서 떠드는 게 백 프로가 아니에요. 들어보세요. 정부에서 청년들한테 허그 대출을 해줬어. 그러니까 이사 갈 때 자기들이 알아서 허그에 신청해서 보증금을 다 빼가는 거야. 집주인한테 몇 개월 미리 말하고 집주인이 빼줄 때까지 좀 기다려줘야 하는 건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면이 없잖아. 근데 이렇게 되면 허그에서 이 집주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거야.


친구2: 저희도 알지만 집주인이 돈을 못 돌려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스티븐: 아니지, 이 집주인이 피해자야. 나중에 블랙리스트 때문에 보증 보험도 가입이 안 돼. 그래놓고 이게 사기분양이라고 하는 거야.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지. 그걸 가지고 사기라고 말하면 안 돼. 지금도 마찬가지야!


친구2: 네네, 그래도 저희는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잖아요.


스티븐: 그러니까 처음부터 와서 사과를 하고 마음 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수고비 좀 드릴 테니 계약금을 돌려주시면 안 돼요 하는 게 맞다는 거지. 그러면 우리가 안 돌려주겠어? 세상을 인간적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거야. 그렇게 정 없이 살면 안 돼.


친구2: 근데 세상이 무섭다는 얘기도 많이 들으니까


스티븐: 방송 보면 사기다 뭐다 하는데, 부동산 하는 사람들 입장은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 정부에서 이렇게 문제를 만들어 놓으니, 우리처럼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너무 많이 보고 있어요. 내가 원래 이렇게 성질을 잘 안 내는데, 이건 그럴 만하잖아.


스티븐의 말에 따르면 컨설팅 업체와 부동산은 전세 사기 보도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스티븐은 계속해서 사과와 수고비를 요구했고, 프랭크는 그 말을 등에 업고 아주 억울하다는 듯이 서 있었다.


스티븐: 그래서 프랭크 씨한테 죄송합니다 했어? 프랭크 씨가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데. 본인이 경솔해서 이런 일이 다 생긴 거잖아.


나: 네네, 그래서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왔잖아요. 이사 안 들어갈 거니까 계약금 반환해 주세요.


스티븐: 그래서 계약서 원본은 갖고 왔어요?


나: 네.


스티븐: 복비는 줘야 되는 거야. 알겠어요? 계약서 주세요, 그럼 복비 300만 원은 빼고 입금해 주면 되죠?


나: 아니요. 계약금 전액 입금해 주세요. 복비는 지금 다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스티븐: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살지 마세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뭐다 그렇게 하는 거 갑질이야. 우리도 젊은 사람들이 힘들게 모은 돈 안 갖고 싶어. 우리도 다 옛날에 전세 살아봤는데 그런 걸 모르겠어?


지금 당신들이 갑질하는 거다, 계약이 파기됐는데 복비는 왜 받냐,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더 큰돈을 돌려받기 위해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한 복비 또한 법정 수수료와 상관없는 큰 액수였고, 사실상 수고비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프랭크에게 다시 한번 문제를 제기했는데 다행히 약간 협상이 이루어졌다.


나: 네, 근데 300만 원이라는 액수는 어디서 나온 거죠?


프랭크: 법정 수수료입니다. 부동산에서 계약했으면 수수료는 내야 돼요.


나: 금액은 임의로 정하신 거 아닌가요?


프랭크: 그럼 0.4프로 해서 보내줄래요?


나: 네, 그러죠.


프랭크: 나이 몇 살이나 먹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하세요.


스티븐2: 본인들이 알아서 하겠죠 뭐.



위의 내용은 당일 녹음본을 요약해 재구성했습니다. 이름, 지명, 금액 등의 세부적인 모든 정보는 특정을 피하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계약금을 돌려받았다. 현장에서 나온 우리는 다 같이 끌어안고 울면서 서로를 토닥였다. 끈질기게 뒷조사를 하고 싸우고 항의한 보람이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식당에 들어갔지만, 그동안 마음 고생한 시간들 때문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중개사 브라더 씨와 변호사 님께도 승전보를 전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분들 역시 몇 백만 원으로 몇 억 원을 지킨 거라고 축하해 주셨다. 나는 시민 단체(민달팽이유니온)에서 함께 싸운 전세사기 피해자 중 첫 성공 사례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물론 이것은 우리가 매달리고 싸우면서 얻어낸 아주 사적인 결과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글에서 요약한 것보다 더 수위 높은 공격과 비아냥, 훈계를 들어야 했다. 자신들이 전세 사기 방송 보도의 피해자라는 적반하장의 주장, 돈 받고 싶으면 당장 여기서 '죄송하다'고 빌라는 모욕적인 협박, 나이와 예의를 운운하는 인신공격, 그 와중에 몇 백만 원이라도 챙겨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기가 막히고 치가 떨렸지만, 우리는 계약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즘 개념 없는 젊은 사람들'이 되어 수모를 감당했다.




큰돈을 돌려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괘씸했다. 파기된 계약에 복비를 지급하는 건 당연히 부당한 것이었다. 300만 원에서 깎아준 0.4프로 역시 초과 수수료였으며, 싸움 중 그 빌라의 다른 호수는 다 들어왔다고 했는데, 등기부를 떼 보니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회사 연차는 이미 상당수 날린데다 투 트랙으로 다음 집을 구하는 것도 머리 아팠고, 싸우는 동안 못 먹고 못 자서 몸도 마음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 숨을 고른 뒤 현장 싸움 녹음본을 정리했고, 다시 한번 총알을 쐈다.


1. 구청에 고발했다. (하도 반복적으로 신고해서 이제 담당 직원도 나를 알아봤다.) 이번에는 공인중개사도 아닌 '중개보조원'의 통장으로, 그것도 '계약서에는 없는 엉뚱한 부동산'에서, '초과 수수료'를 받아갔다는 내용이었고, 송금 내역까지 함께 첨부했다. 현장에서 "따로 입금하겠다"고 한 건 후속 신고를 위한 사전 계획이었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정확히 '법정수수료'에 의한 '중개보수료'를 언급한 카톡 역시 증거 확보를 위함이었다.


2. 국세청에 현금영수증 미발급 건으로 신고했다. 이는 현장 경험이 많은 브라더 씨이기에 알려줄 수 있는 정보였는데, 중개보수료 현금영수증은 통상적으로 그냥 넘어갈 때가 많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이것도 신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3. 시민 단체의 요청으로 전세사기 국회 토론회에 피해자로서 참석하고 발언문을 발표했다. 토론회 현장 이외에도 기자 인터뷰를 통해 몇몇 기사를 내보냈고,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을 소개받아 사기꾼들의 수법과 작태, 법 제도의 허점, 가슴 무너지는 피해자의 심경을 전달했다.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다.


https://hankookilbo.com/News/Read/A2022081016440003643?did=kk


4. 이후 우연히 같은 일당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속아 똑같은 빌라에 계약한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에서 나에게 제보해 준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부동산은 달랐지만 임대인과 계좌번호, 보증금 금액, 계약서 내용 등이 모두 똑같았다. 그분을 시민 단체에 연결해 주었고 사기꾼 일당은 배후를 눈치채고 다시 한번 도망갔다고 한다. 그분이 두 번째 성공 사례이며 아직까지도 그게 마지막 성공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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