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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프리카요!" "땡!"

멕시코 어린이들과의 만남

by 세라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일정이 생겼다. 멕시코의 초등학교에서 각자 나라의 문화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당일에 학교 앞에 내려서야 알게 됐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의 홈스테이 가족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인 탓이었다. 그때 한국인 나, 스페인 친구, 멕시코의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 이렇게 3명이 있었다.


부담 없이 간단하게 소개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평소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말문이 막히는 나로서는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Estoy muy nerviosa
(=I'm so nervous)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지만, 구태여 물러날 수 있는 데까지 물러나 맨 마지막 순서로 발표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의 산물(?)으로서 준비에 준비를 철저히 거듭해도 반도 말 못하고 괴로워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의외로 내가 가장 선전했다!


우선 가장 쉬운 것부터, 나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를 그린 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그렸는데, 그들에겐 아시아 기준의 지도조차 생소했던 것 같다. 반면 나는 유럽 및 아메리카를 너무 못 그려서 그냥 동그라미로 그렸는데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이 나서서 아메리카 부분을 다시 그려주셨다.


"Dónde está Corea?"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이 어디 있냐고 물어봤을 때, 아이들이 여기저기 손을 들었다. "아프리카!" "유럽!" 등을 마구잡이로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사실 그전에 만났던 멕시코 사람들은 의외로 한류 덕분에 한국을 잘 알고 있었는데, 역시 꼬마 아이들은 잘 몰랐다.


이에 자극받은 나는 중국과 일본을 언급하며 더욱 자세히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너무 열중해서 그리다 보니 중국, 일본보다 한국을 훨씬 더 크게 그리는 내셔널리즘(?)을 범하고 말았..) 아이들에게 한국이 '아시아'에 있다는 것부터 설명해야 했을 때, 외국에 온 느낌을 넘어 마치 외계에 온 듯했다.


나는 무슨 용기가 생겨서인지 아리랑 노래도 한 소절 선보였고(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는 아니었지만 대신 선생님이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해줬다 ㅎㅎ), 의미 없이 폰에 쌓여만 있던 음식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Woa, muy diferente"
(와아, 정말 달라..!)


음식 사진을 보여줄 때 아이들이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니, 결국 모두 앞쪽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우리에게 쌀이 주식이라면 멕시코에서는 옥수수가 주식인데, 아이들이 치즈볶음밥 사진을 보면서 밥(Arroz)이 정말 다르다며 신기해했다. 그 외에 하나 둘 셋 같은 숫자를 알려주기도 하고, 안녕 같은 간단한 한국어 발음을 함께 해보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Hola(=안녕, 만날 때 하는 인사)를 물어본 뒤 Adiós(=안녕, 헤어질 때 하는 인사)도 같이 물어봤는데, 우리는 늘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이었다. 둘 다 똑같이 '안녕'이라고 설명해주면 '오, 정말 그렇냐'며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나중에는 가족사진을 보여달라며 적극적인 요청이 쇄도했는데, 시간 관계상 담임선생님이 통제해 주셨다.



예상치 못했지만, 뿌듯했던 시간.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그럴 일이 있다면 더 많이 준비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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