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chimilco#3 Perry, Miguel
(이어서)
소치밀코의 시장에서 만난 Miguel은 사실 한국식으로는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아니 그 중간쯤 되는 할저씨(?)였는데, 우린 모두 서로 친구라 칭했으므로, 우리는 친구였다.
멕시코 여행 중에 수많은 우연을 만났지만, Miguel과 Perry와의 하루는 그중에서도 좀 더 특별하다. 우연히 그날의 일정을 취소하고 떠난 소치밀코에서, 우연히 같은 기차를 탔던 Perry를 만났고, 친구가 되었고, 또 우연히 시장에서 알게 된 Miguel은 우리를 자신의 특별한 공간에 초대해 주었다.
이렇게 충동적으로 소치밀코에 간 날, 하루 종일 우연이 또 다른 우연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날 그 우연의 끝에 미겔이 있었고, 미겔의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Miguel과 Perry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치밀코의 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겔은 그 자리에서 바로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는데, 배도 타고 시장도 둘러본 뒤 딱히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그의 제안에 응했다.
그는 쿨하게 장사를 접고 자신의 소치밀코 라이프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시장에서 가까운 그의 집에는 대문부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겔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었는데, 얼마나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던지. 미겔이 데리고 온 낯선 외국인 두 명을 반겨주시고 안아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데, 평생 말과 행동에 사랑을 물들여온 분 같았다. 헤어질 때 나와 페리는 그녀의 따뜻함 때문에 이유 없이 울컥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때로는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려우면서도, 때로는 이토록 나이도, 국경도, 얼마나 오래 봤는지도 상관없는 직관적인 일인가 보다.
미겔의 강아지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우리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처럼 귀엽고 명랑한 느낌이었다.
This picture says that you have a warm heart
내 친구 Perry에게
사진은 이미 말하고 있어
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강아지에게 한없이 사랑의 눈빛을 보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달콤한 영어 단어들을 뱉어내는 Perry의 모습. 강아지도 그의 마음을 알아챈 듯하다. 비스듬히 비치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강아지를 안아주는 그의 옆모습은, 내 소치밀코 여행의 명장면 중 하나다.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직접 찍은 사진을 선물하곤 했는데, 여기서도 이 사진을 즉석으로 뽑아서 Perry에게 선물했다. Perry 또한 소치밀코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것 또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여행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미겔은 우리에게 소치밀코의 시장, 그의 집과 가족, 또 동네의 한 체육관과 그곳에 있는 미술 작품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신의 방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곳은 정말이지……
박물관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평생 동안 여행기념품들을 모아서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쩐지, 미겔은 여러 나라에 대해 해박했고 영어도 스페인어도 능했다. 하지만 기념품만으로 이 정도라니! 너무나 놀라웠다.
No es un cuarto, ¡es casi un museo!
이건 방이 아니고, 거의 박물관이잖아! 바닥부터 천장까지, 눈여겨보면 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감격한 우리는 정신없이 미겔의 공간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고, 나는 기회가 된다면 미겔의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미겔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며 덩달아 즐거워 보였다. 그는 지구 상의 모든 대륙을 정복한 신비한 여행자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에게 소치밀코라는 도시에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은둔 중인 여행 고수가 마지막으로 제 나라에서 선택한 도시가 멕시코시티 언저리의 조그만 강의 도시라니.
아쉽게도 한국은 이중에 없었지만, 일본 기념품들을 보여주며 신나 하는 걸 보니,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초대하고 싶다.
맥주 한잔 할래?
미겔은 우리에게 맥주를 권했고, 나는 "좋아!"를 외쳤다. 그러자 정말 5분도 안 돼서 미겔의 또 다른 친구가 생맥주를 들고 나타났다. 상상 속의 나라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마법 같았다.
나, 미겔의 친구, 미겔.
즐거운 우리 셋, 미겔의 특별한 공간에서.
미겔이 특별히 좋아한 내 사진. "와우, 어떻게 이렇게 찍었냐"고 감탄하며 사진을 받고 싶다고 메일 주소까지 적어주었다.
미겔은 가끔 이렇게 길 위의 여행자들을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모양이었다. 공간의 역할은 그게 다였다. 이곳은 진정 여행자들만의 세계다.
나는 지구본과 조그만 비행기 장식들이 좋아서 이 근처를 맴돌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여행 후 여전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나도 지구본과 비행기 세트 하나쯤 방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파란 담벼락의 테라스에서는 소치밀코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온 세상을 품을 듯 두 팔을 벌린 이 예수 사진 역시, 미겔이 몹시 만족해했다.(사실은 예수상도, 비행기도 아주 작은 피규어이다.)
그외에도 미겔이 좋아했던 내 사진들은 대부분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들이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게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들의 꿈은 같은 것이었으리라. 돈도, 명예도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마음 가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자유를 추앙하는 삶.
우리는 그의 공간에 그야말로 흠뻑 빠져들었다. Miguel은 나의 사진들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었고, 멕시코 Chiapas 지역 스타일의 작은 천가방도 하나 선물해 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정말 즐거웠던 것 같다. 덕분에 소치밀코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나는 이때 소치밀코에 다시 돌아가기 힘든 일정이었지만, Perry는 곧 Miguel을 만나러 다시 오겠노라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나도 언젠가 멕시코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을 다시 보러 갈 여행을 생각 중이다. 그때 다시 만나요, 미겔 아저씨.
이날, 소치밀코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놀랍다. 그들 모두를 만나게 된 것, 흔쾌히 집에 초대해 준 것, 마치 상상같은 공간을 만들어놓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길 위에서 친구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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