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지지부진하게 쓰고 지우기만 하는 날들이 지나갔다. 아무것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쓰겠다고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 직업 작가들도 이렇게 괴로울까. 그저 신변잡기에 대한 글만 조각조각 쓸 뿐인데, 이토록 포악하게 신음하는 나는 대체 뭘까. 나는 왜 쓰는 걸까, 하고 묻는 것만이 내 글쓰기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일 뿐이다. 사는 게 뭘까, 하는 치열한 질문이 늘 멀리 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자주 가는 정원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두가 일하는 평일 오후에 방향도 잃고 의지도 잃은 채 햇살을 탕진하는 자가 거기에 있었다. 쓴다는 일에 대한, 그리고 산다는 일에 대한 아무 사명도 없이.
바람이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올올이 훑고 지나갔다.햇살이 풀결 따라 차르르르 흘러갔다. 흘러간다.지금여기, 흐르는 세상은 바다다. 올해 처음 만난 바다다. 안녕, 나의 금빛 바다.가르쳐 줘, 흐르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넘어지고 추락하는 방식으로만 흐를 수 있는데.
팔을 내밀어 내 앞에 펼쳐진 생생한 순간들을 더듬었다. 빛이, 내 생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것만 같았다. 짧고 단순한 직광이었다. 거기에는 질문도 대답도 없었다. 다만 이렇게 속삭일 뿐이었다. "난 널 떠날 예정이야."
너무도 많은 간절함으로 범벅된 날들이다. 마음을 끊는 일에 언제 노련해질까. 나는 그런 걸 잘 못한다. 흐르고 싶다. 넘어지지 않고 흐르고 싶다. 햇살처럼, 바람처럼, 그리고 저 찬란한 금빛 바다처럼. 그러려면 매 순간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데, 무엇을 너무는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게 되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같은 것에서 지옥도 볼 줄 아는 사람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