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그 얼마나 밀어냈던 단어인가요. 여름을 싫어한다고, 저는 얼마나 자주 썼던가요. 뙤약볕 아래에서 매일 발악하듯 '싫음'을 고백했지요. 그런데 가을에오고서야 알게 되는 거예요, 저는 여름을 싫어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거예요. 그만 쓰고 싶다면서, '그만 쓰고 싶다'고 자꾸 '썼던' 것처럼요. 여름이 지나간 자리는 처연하기만 합니다. 싫음 다음에 좋음이 오는 사랑도 있음을, 여름은 가르쳐 줍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는 반대로 말이죠. 그러나 싫음의 입장에서 좋음을 추억하든, 좋음의 입장에서 싫음을 추억하든 매한가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쓰다가 영감을 얻든 영감을 얻어서 쓰게 되든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쓰는 것도 쓰지 못하는 것도 지독한 것이에요. 좋음도 싫음도 혹독한 것이에요.
아직 반팔 티셔츠를 넣지 못했습니다. 10월에 반팔은 조금 추운 것 같아요. 제가 말예요, 남들보다 먼저 가을에 가 있으려 했는데요,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 기다렸던 사람들이 오지 않네요.길을 잃은탓에 마중도 나가지 못합니다. 여기가 여름의 뒤안길인지,겨울의에움길인지 헷갈립니다. 저는 왜 그리 서둘렀던 걸까요. 어디 갈 곳이라도 있을 성싶었을까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저는 여름이 싫을 텐데요. 왜 여즉 여름옷을 넣지 못하는 걸까요. 왜 지난 시간을 정리할 줄 모르는 건가요. 시간은 속절없이도 지나가는데…….
여름의 기억을 향해 걸었습니다. 매미 소리 쨍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그랬는데, 이제 없네요. 천지사방 적요합니다. 기억 속에 모든 것이 있고, 기억 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돌아갈 곳도 없고, 나아갈 곳도 없는데.영원과 찰나 사이의 자유란 도대체어디 있는 건지!